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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20. 2021

나는 너의 빛을 보았다

파울로 코엘료, "11분"

 

 


 고흐와 나, 그리고 빛


"평지의 풍경을 바라볼 때 난 영원한 진리를 보게 된다. 내게만 그렇게 보이는 걸까?" (빈센트 반 고흐)


나는 오늘도 언덕에 올랐다. 이미 노란 태양이 멀어지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부는 갈대발은 휘청이며 내게 쏟아져 왔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달렸다. 숨이 차올라도 바람이 나를 막아서도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 모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달려가야 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려야 했다. 나는 해 질 녘의 너를 내 안에 담기 위해 쉼 없이 벌판을 내달렸다. 휘휘 부는 갈대밭에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부는 바람이 나를 지나가도록 했다. 바람과 대지와 태양 속으로 내가 흩어져 사라지는 걸 느꼈다. 때론 언덕에 누워 저 멀리 내려앉는 태양을 응시하면서 내가 공기 중으로 녹아드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먼지처럼 사라져 소멸되기를 소망했다. 내가 저 빛과 함께 흩어져 종이 위에 흩뿌려지길 바랬다. 메마른 들판, 쉼 없이 방향을 달리하며 불어오는 바람, 타는 듯한 태양을 끝없이 응시하던 나는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생생한 들판으로 태어날 것이다. 나는 내가 붙잡고자 한 순간을 놓칠 수 없어 타는 듯 고통스러웠으나, 내 안에 네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어느새 그 열정은 나를 궁극의 희열로 이끌었다.


나는 언제나 나만의 자리를 찾는다. 바라보기 위한 자리이다. 나는 바라봄을 사랑한다. 바라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바라본다. 공원의 푸르름이 창 밖을 가득 드리우는 카페를 찾아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너의 모습, 너는 햇빛을 받아 쉼 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너의 빛이 무심히 유리창을 지나 나에게 와 닿았을 때 나는 너를 보고 웃었다. 너도 나를 보았을까?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 모습이 너로 인해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너는 내 마음에 붓질을 했다. 네 마음대로 나를 그려갔다. 나는 너울거리고 넘실거렸다. 히사이시 조의 노래가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오직 숨소리만 가득했다. 숨은 들고 나면서 움을 틔웠다. 나는 너의 손 끝에 머무는 것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At Eternity's Gate"중에서 (https://youtu.be/T77 PDm3 e1 iE)


""At Eternity's Gate"중에서 (https://youtu.be/T77 PDm3 e1 iE)


너의 그림에는 온기가 흘러. 네 방을 그린 것을 보고 나도 저런 방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너무 따스하고 생기가 흘렀거든. 어제 우연히 너의 방에 들렀을 때 나는 마음이 덜컹했어. 색을 모든 잃어버린 너의 방에는 무거움과 서늘함이 가득했어. 너의 방 한 켠에 진흙이 잔뜩 묻은 체 덩그러니 놓여있던 너의 신발이 자꾸 생각나. 나는 네가 언덕을 달려 올라갈 때마다 알 수 없는 고통을 느꼈어. 네가 그토록 달려야 했던 이유가 너를 구원할 빛을 찾기 위해서였을까? 생각해 봐. 네가 그토록 애달프게 달려야 했던 이유를...... 언덕에 누워 끝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너는 평화로워 보였어. 하늘은 쉼 없이 변화했지. 태양은 무심하게 지평선으로 떨어지는데 그 빛을 받은 공기의 입자들은 너무도 찬란했지. 그건 아무나 만들어 낼 수 없는 순간들이었어. 그 환희의 순간에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철없는 너를 보았어. 나는 그게 너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생각해. 그 빛은 너에게로 들어와서 잿빛 너의 방을 노랗게, 파랗게 물들였어. 너에게 깊숙이 들어온 빛은 색을 입고 되살아났어. 거칠고 메마른 해바라기 벌판에도 생기를 불어넣었지. 난 그 노오란 해바라기의 얼굴들을 보며 행복의 기운을 느꼈거든. 무엇이 너로 하여금 그토록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게 하였을까? 빛은 너를 통과해서 너를 통해 세상은 따뜻함과 충만함으로 변주시켰어. 난 그래서 네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건, 그걸 보게 한 빛으로 네가 가득했다는 의미일 테니.



영화 속, 고흐의 방의 모습(https://youtu.be/T77 PDm3 e1 iE)
고흐의 방, 오르세 미술관 ©boah


고흐가 바라봤던 실제의 해바라기 들판(https://youtu.be/T77 PDm3 e1 iE)
고흐의 "해바라기"(https://ko.wikipedia.org/wiki/%ED%95%B4%EB%B0%94%EB%9D%BC%EA%B8%B0_(% EA% B3% A0% ED% 9D%




마리아의 빛 ("11분" 속 마리아, 파울로 코엘료 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의 제물일 수도 있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일 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내 삶을 바라볼 것인지에 달려있다." (파울로 코엘료, "11분" 중에서)


너는 고향을 떠나기로 했지. 그런데 네 앞에 놓인 건 네가 계획한 대로의 삶이 아니었지. 삶이 자기 멋대로 너의 삶을 휘젓기 시작했을 때 너는 물러나고 싶기도 했어. 너는 삶이 너를 속였다고 생각했을 거야. 너는 배우가 꿈이었지, 그 길로 가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으니까. 너를 옭아매었던 너의 모든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의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단계에 있다고 믿었을 때 삶이 너를 부정하는 듯했어. 다시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삶이 너를 비웃었지. 너는 지고 싶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낯선 길로 가보자고 결정해 버린 너를 나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웠어.


어느 카페에 앉아 있는 너를 보았어. 아마 네 안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을 거야. 그 생각들 속에서 너는 길을 찾고 있었을까? 아니면 길을 헤매고 있는 너 자신을 찾고 있었을까? 그때 랄프라는 화가가 다가와서 너를 그리기 시작했어. 네가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지. 나도 랄프가  왜 너를 그리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어. 네가 걱정한 것처럼 그가 너의 전부를 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했지. 너는 그가 너의 영혼, 네가 느끼는 두려움, 너의 연약함,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세상과 싸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네 능력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지. 그때 그가 갑자기 너에게 소리치는 목소리에 나도 깜짝 놀랐어.


 "제발 입 좀 다물어요. 지금 당신의 빛이 보이고 있으니까" (파울로 코엘료, "11분" 중에서)  


그는 너를 보면서 빛을 그리고 있었어. 너의 빛을 말이야. 사람이 사람에게서 빛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빛을 볼 수 있을까? 랄프는 너를 하나의 대상이나 여자로서가 아니라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어.


너는 너의 운명을 겁냈지만 그 길을 걸어보기로 했고 그건 너의 의지였지. 너의 의지가 빛이 되어 너에게서 세어 나왔던 거야. 랄프는 그걸 정확히 보고 있었어. 용기가 빛이 된 거야. 사람의 빛은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걸 깨달았어. 안전한 길만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서는 결코 세어 나올 수 없는 것, 그게  빛이었어. 빛이 나는 순간이 너의 삶의 시작된 건지도 몰라.




누군가는 빛을 바라보고 누군가는 스스로 빛을 내며 산다는 생각이 들어. 결코 멈춤이 없는 빛은 늘 자신을 움직이고 자신이 비추는 대상을 변화시키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몰라. 그저 움직이고 변화하는 게 우리의 운명일지도.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봐.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잖아. 내가 용기를 가지고 움직이지 않으면, 마리아의 말처럼 삶이 나를 제멋대로 휘져어버릴지도 몰라. 삶의 제물이 아니라 모험가가 돼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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