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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l 07. 2021

밀크커피를 마신 죄,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살인사건

바닷가 해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웃 동네 청년, 뫼르소가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 바로 가까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친구 C가 찾아왔다. 자신은 뫼르소를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자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것이 소름 끼친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는 총을 다섯 발이나 쐈다는 것이다. 총을 맞은 아랍인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 그런데 왜 죽였데? "



밀크커피

"세상에 밀크커피라니 말이 되니?"

"그러게......"


이야기인즉슨, 얼마 전에 뫼르소의 엄마의 장례식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뫼르소는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을뿐더러 문지기와 밀크 커피를 즐겼고 뿐만 아니라 함께 담배까지 나눠 피웠다는 것이다. 더 황당한 이야기는 뫼르소는 장례식 다음날 마리라는 여자랑 해수욕을 하고 영화를 보고 집에까지 데려와서 놀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뫼르소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모르는 파렴치한 같았다. 하나밖에 없는 엄마가 죽었다면 어찌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 밀크 커피는 고사하고 물 한 방울 넘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엄마의 시체를 앞에 두고 처음 본 문지기와 담배라니 정말 인정머리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인간 같았다. C는 그동안 뫼르소의 엄마가 얼마나 외롭게 지내다 돌아가셨을지 생각하면 너무나 가여워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엄마의 장례식과 이번 살인 사건과는 무슨 상관이 있길래 법정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간 거야?"


"뫼르소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지. 검사는 뫼르소의 살인이 계획범죄라는 걸 증명하려고 악착같이 달려들었어. 그러려면 뫼르소가 극악한 인간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필요하지 않겠어? 그는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보여준 무심한 태도에 주목했어.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지. 사람들은 그가 엄마의 시체를 앞에 두고 밀크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에 경악했어. 죽은 엄마를 앞에 두고 달짝한 커피를 즐겼다는 게 어떤 의미겠어. 난 검사의 의견이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더욱이 장례식이 끝나고 여자와 해수욕을 갔다는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뫼르소가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사회악이라고 규정하는데 모자람이 없는 근거가 되었겠지. 그렇다면 아랍인이 죽은 이유도 다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들은 바로는 사실 뫼르소는 불우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해. 학업을 계속할 형편이 되지 않아서 중단했지만 자기의 일을 하면서 소소하게 살았어. 어쩌면 밀크커피와 담배 정도가 그의 삶의 유일한 낙이었을 거야. 엄마를 부양할 만한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양로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그런 자신의 삶에 대해 뫼르소는 별 불만도 없었지.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뫼르소가 최근에 만난 마리라는 여자가 있거든 마리는 뫼르소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궁금했어. 그의 마음이 알고 싶어서 그를 찾아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지. 뫼르소 역시 그녀에게 상당히 매력을 느꼈고 함께 지내고 싶었어. 하지만 사랑하냐고 묻는 그녀에게 그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어. 실망한 마리는 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에 또다시 그에게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봐. 그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좋다고 얘기하지. 뫼르소는 자기에게 결혼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기에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대답해. 마리는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가 청혼을 해도 받아들이겠냐는 질문에 뫼르소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는 거야.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뫼르소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짓말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까?


뫼르소는 알았을 거야. 엄마가 죽어도 자신의 삶에 달라질 건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평생 자신의 개를 구박하던 이웃집 남자가 그 개가 사라진 후 혼자 숨죽여 우는 소리를 듣고 문득 엄마를 떠올리는 뫼르소를 보면서 그 마음에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의 잔해가 있다는 걸 느꼈어. 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조차 무감한 이방인이었어. 왜 그 순간 엄마가 떠올랐는지 뫼르소는 정확히 몰랐을 거야.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라는 식의 삶의 방식이 그의 이런 태도를 만들었던 거라고 생각해. 그런 그의 태도가 그를 결국 심판대에 오르게 했지만 그렇게 살지 않았다면 그가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었겠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와 관계에서도 그랬어. 그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지 않았어. 친구가 나쁜 사람이든 말든 그가 도움을 청했을 때 딱히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그 부탁을 들어주었지. 문지기가 장례식장에서 밀크커피를 권했을 때 그가 마신 이유도 그가 평소 밀크커피를 좋아했기 때문이야. 장례식에 왔기 때문에 마시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그는 찾기 어려웠어. 그래서 마셨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행동으로 뫼르소를 천하에 용서받지 못한 놈으로 만들었지. 사실 네 말이 맞아. 만약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어떨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일 거야. 장례식장에 가면 정말 다들 너무 슬퍼하잖아. 그런데 K 기억나니? 지난번 K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형제들이 곧바로 유산 분배 문제로 소송까지 갔잖아. 그들이 장례식장에서 보여주었던 눈물과 의욕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이...... 물론 진심이었겠지만, 그 슬픔은 돈 앞에서 너무나 쉽게 정리가 되었어. 비통함에 젖어 있던 그들이, 장례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로 악을 쓰면서 싸우는 모습과 전혀 슬픈 기색이 없었던 뫼르소와 누가 더 나쁠까? 나는 그 둘의 차이가 그리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런데 그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는 너무나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로서 뫼르소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인간이 되었거든. 사형을 당해도 싼 인간이 되었어. 아랍인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밀크 커피가 뫼르소를 사형대로 이끌어 가고 있을 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어. 그때 뫼르소는 재판장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보다 푹푹 찌는 더위와 얼굴에 달라붙는 큼직한 파리가 더 신경이 쓰였다고 하니 그가 스스로에 대해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천성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검사는 뫼르소가 갱생이 불가능한 사람임을 강조했어. 뫼르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규범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지. 어떻게 부모의 죽음 앞에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있냐는 말이야. 뫼르소에게 인간으로서 응당 가져야 하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어. 검사 말이 뫼르소의 영혼을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거야. 뫼르소는 마치 영혼이 없는 인간 같았고, 인간들의 마음을 지켜주는 도덕적인 원리가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거지. 이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태도와 반응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은 위험하고 갱생이 불가능하므로 사형에 쳐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어.  검사는 뫼르소가 계획적인 살인을 했다는 걸 강조하려고 노력했어,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이라는 거지."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이유를 태양 때문이라고 한 거 들었지? 그 대목에서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터트렸지. 태양 때문이라고 하니 누가 그 말에 귀를 기울였겠어. 태양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고?"



이방인

"마리에 대한 태도를 보면 뫼르소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지 않니? 뫼르소는 자신이 유리한 입장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야. 그런 그가 살인의 이유를 태양이라고 했다면 정말 태양이 이유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걸 말도 안 되는 이유라고 생각을 했지. 그는 조금만 머리를 써서 이야기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실 조차 이야기하지 않았어. 아랍인들이 뫼르소와 그의 친구에게 위협을 가했고 칼을 먼저 빼서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니야? 태양이니 뭐니 그런 얘기를 할 필요도 없었어. 그런데 실제 뫼르소는 아랍인이 겨누던 칼에 반사된 빛이 너무 강렬해서 자신을 찌르는 것 같았고 그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어. 그런데 앞뒤 다 자르고 그저 태양 때문이라고 하니...... 오히려 자신을 방어할 줄 모르는 뫼르소가 나는 정말 답답했어. 뫼르소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던 아랍인들은, 자신들과 시비가 붙었던 레몽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뫼르소에게 칼을 겨눴고, 뫼르소는 그 순간에도 그들을 해하려는 어떤 의도를 갖지 않았어. 그저 엄마의 장례식 때부터 그를 괴롭혔던 태양의 뜨거움, 도저히 피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를 향한 맹렬한 태양의 공격이 해변에서 다시 그를 찾아왔던 것뿐이었다는 것을 누가 이해하며 받아줄 수 있었을까? 타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조차 철저히 이방인이었던 뫼르소는 철저하게 사람들의 논리에 의해 갈가리 찢겼어. 어쩌면 그 누구보다 타자를 관대하게 대했던 사람이 뫼르소였는데 말이야.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관습과 규칙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타자 또한 그 잣대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었어. 마리는 마리였고 레몽은 레몽이었어. 아랍인도 그냥 아랍인이었지. 누구를 미워하지도 앙심을 품지도 않았어. 그는 자신을 난도질하는 재판장에서도 오고 가는 이야기보다 더위로 꽉 찬 공간 속 숨 막히는 더위가 그 순간 더 힘든 인간이었어."



뫼르소는 "뜨거운 햇볕에 뺨이 타는 듯했고 땀방울들이 눈썹 위에 고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그날과 똑같은 태양이었다. 그 햇볕이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특히 그날과 똑같이 머리가 아팠고, 이마의 모든 핏대가 한꺼번에 다 피부 밑에서 지끈거렸다.... 중략...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알베르 까뮈, "이방인"중에서 )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도 버티던 뫼르소는 회개를 촉구하는 신부 앞에서 오열하고 말지. 나는 뫼르소의 외침을 들으며 한 없는 슬픔을 느꼈어.  뫼르소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과 죄를 용서할 테니 회개하라고 뫼르소를 붙들고 있는 신부, 그들은 자신들이 정의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무지함과 순진함에 감춰진 잔인함은 너무나 태연하게 한 사람의 생명을 끝장내겠다는 잔혹함이었어.


뫼르소는 살인범으로 재판을 받으면서, 엄마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어. 그러니 꼭 기억해.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그들은 매우 논리적인 것 같지만 지극히 감정적이고 사람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긴다고 하지만 자신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바로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한다는 것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걸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지. 참혹한 결과가 있다면 그건 어떤 나쁜 의도에서 파생된 것이라 믿기를 좋아해. 왜냐고? 어떤 판단을 해야 할 때 그게 가장 쉬운 선택이거든 그게 희생자를 위로하는 가장 편안한 방법이기 때문이야. 그 반대편에 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 법정에서 뫼르소의 친구들이 아무리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어. 밀크커피, 담배, 해수욕, 여자, 이걸로 이미 얘기는 끝난 거야. 태양 때문이라는 말? 아무도 듣지 않아. 그게 사실이라 해도.


나는 요즘 타자에 대해 자주 생각해. 그건 타인일 수도 있고 어떤 관계일 수도 있겠지. 어떤 사상일 수도 있고 현상일 수도 있어. 타자가 나와 관계가 있다면 그건 얼마만큼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일까? 내가 타자에 대해 안다고 얘기하면 얼마만큼을 아는 걸까?  나는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얘기에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까? 사람을 죽이고 엄마에게 무심했던 뫼르소가 사형선고를 받은 사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까? 아무 설명도 하지 못하는 뫼르소를 위해 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의 고정된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그들은 여전히 뫼르소를 미워해.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 않았지. 그들을 설득할 방법은 없는  같아. 그래서 나는 한동안 아무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어. 누군가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듣고 싶지 않았어. 때로는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기를 바랐고.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았으면 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럴  없잖아.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려고 .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라고. 나도 이렇게 이방인이 되어 가는 걸까......"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은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그 까닭을 알고 있다. 그 역시 까닭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생애 동안, 내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항시 한 줄기 어두운 바람이, 아직도 오지 않은 세월을 거슬러 내게로 불어오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더 실감 난달 것도 없는 세월 속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모두 다, 그 바람이 불고 지나가면서 서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그런 것이 내게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알베르 까뮈, "이방인"중에서)




이방인... 까뮈...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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