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자유형 도전기 -
여름이 오면 수영하고 싶어진다. 언제든 밖에서 수영할 수 있도록 따뜻한 남쪽 지방의 바닷가 마을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시골 학교에 다녔는데 수영반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을 따라 일주일에 몇 번씩 시내에 있는 수영장에 다녔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신경 써서 보내주신 걸 텐데, 나는 그냥 운동을 싫어하는 초딩이었다. 천성적으로 체질이 허약한 편이고 움직이는 걸 안 좋아했다.
수영을 하려다가 물을 먹는 일이 많다 보니 물은 그저 당혹스러운 존재였다. 내게 수영 연습 시간이란 물 속에 몸을 담근 채로 한쪽 귀퉁이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이야기를 조금 하거나 멍 때리는 시간이었다. 1년간 수영반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된 폼으로 자유형을 하지 못했다. 숨을 참을 수 있는 만큼만 잠깐 헤엄칠 수 있는 정도였다. 반면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몇몇 친구들은 수영대회에 나가 입상하기도 했다.
나와 같이 운동을 못 하는 아이들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열심히 해보라는 따뜻한 격려도 들은 적 없었다. 수영장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게 당연한 것 같았다. 내성적인 초등학생이었던 그 때의 나는 선생님이 상관하지 않는 것을 내심 다행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렇게 수영은 내 첫 번째 실패 경험으로 남았다.
어른이 되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부터 다시 수영하고 싶어졌다. 휴양지의 숙소는 으레 야외 수영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쁜 수영복을 입고 인어공주같이 수영하고 싶다는 거창한 생각이었다.
무슨 패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수영 강습 초급반에 등록했다. 물에 뜨는 킥판을 잡고 발장구를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할 때부터 선생님께 구박을 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너무 힘이 없고 느리게 발을 찬다는 것. 그동안 잊고 지냈던 수영과의 악연이 새록 새록 떠올랐다.
초급반 선생님은 목소리가 정말 크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온 수영장이 울릴 만큼 쩌렁 쩌렁하게 혼이 나서 어느 날은 겁을 먹고 무리하다가 다리에 쥐가 나고 말았다. 움직일 수 없어서 응급처치를 받고 다시 수업에 돌아온 나에게 선생님은 말했다.
“아파요? 아프면 그냥 집에 가세요. 누구나 다 수영을 할 필요는 없어요.”
너무 창피하고 속상하면서도,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수영은 온 국민이 다 할 수 있는 생활체육 아닌가? 수영선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취미 삼아 배우겠다는데 하면 안 되나? 게다가 수영은 물속을 이동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운동 능력 면에서 조건이 되는 사람들만 배울 수 있는 운동은 아니지 않나?
저녁에 회식하는 날이 아니면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강습에 나갔다. 강습이 없는 날도 자주 수영장에 가서 혼자 연습했다. 부끄럽지만 운동신경이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포기하고 살면서 숨이 차도록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레인이 끝나는 지점까지 쉬지 않고, 숨이 차도록 열심히 발차기를 하니까 더는 선생님한테 혼나지 않았다.
드디어 킥판을 놓았다. 이제 빠르게 발장구를 치면서 동시에 팔을 휙휙 내저어야 한다. 팔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몸통도 반듯하게 펴야 한다. 고개를 돌리면서 음-파- 호흡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선생님 말씀도 잘 들었고 유튜브로도 찾아봐서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내 저주받은 몸과 체력은 따라주지 못했다.
“입으로 대답은 잘하면서, 왜 몸으로는 내가 한 말을 안 따라해요?”
선생님이 또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나는 얼른 내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쉿, 알고 있어요.’라고 소리 없이 입 모양을 지어 보였다. 원래 수영을 하고 나면 입맛이 당겨서 야식을 먹게 된다는데, 나는 마음이 슬퍼서 입맛도 없었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다가도 눈물이 찔끔 났다.
다시 수영이 무서워졌다. 초급반을 졸업할 수 있는 테스트에서 연거푸 떨어지자, 중급반 선생님까지 내 얼굴을 알기 시작했다. “언제 중급반 올거야? 빨리 와!”라며 내 테스트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데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가 날이 추워졌다. 감기에 걸리면 안된다는 이유로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 정도면 수영 안하는 게 맞는 게 아니냐는 냉정파, 수영장을 옮겨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라는 현실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아도 스스로 느끼기에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있다면 계속 해보라는 초긍정파.
난 초긍정파의 의견이 제일 맘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이해가 안 되는 느림보 거북이지만, 난 수영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땅 위에서는 내 마음대로 천천히 걸어도 되지만, 물속에서는 평소보다 민첩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쑥 가라앉아버린다. 물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더 빨리 온몸을 움직이며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수영장에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가 시작됐다. 내가 다니던 수영 강습은 지난해 초부터 전면 중단됐다. 수영장에선 마스크를 착용할 수 없고, 여러 사람이 함께 물을 사용하다 보니 감염 우려가 있어서였다. 대신 일대일 PT를 받았다. 맨 처음 PT 선생님이 운동하는 목적을 물으셨을 때 이렇게 답했다.
“수영을 잘하고 싶어서요.”
93세의 일본 할머니가 몇십 년째 참가해오던 수영대회에 올해도 참가했다는 글로벌 뉴스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평소에 걷지 못하는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서 부축을 받고 출발선에 섰다. 가장 느렸지만 끝까지 자유형 100미터를 완주했다.
영상을 본 날부터 ‘수영하는 할머니가 되는 것’으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느림보 거북이에게는 느림보 거북이에게 어울리는 속도와 방법을 찾으면 될 게 아닌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영 강습생들은 결국 고급반에서 만난다. 빠르든 늦든 모두 수영인이 되는 것이다.
수영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혹시라도 수영장에서 나처럼 체력이 약하고 운동신경을 축복받지 못한 이를 만난다면 따뜻한 격려와 지지를 전해주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냐며, 수영선수는 못 돼도 수영하는 할머니 정도는 될 수 있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