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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eon Mar 15. 2018

릴라와 레누,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1부 <나의 눈부신 친구> 독서모임 후기

날씨가 제법 따듯해져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우리의 본격적인 첫 모임이 있었다. 출판사의 대일님은 이미 모든 분들에게 나머지 책을 다 보내서 두손 가볍게 가장 먼저 오셨고, 집이 멀어 일찍 출발하신 참여자 분도 일찌감치 도착하셨다. 언제나 그렇듯 모임 전에는 '오늘 잘 될까' 걱정이 앞서지만, 모임은 네 시간을 넘겨 끝났고 값진 이야기들이 소복소복 쌓였다.



소녀들에게 우리의 언어를


어느 참여자 분의 말처럼, 모인 이들의 나이대가 다양하다는 것은 모두에게 잘된 일이다. 릴라와 레누, 두 주인공의 어린 소녀 시절부터 60대가 되기까지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소설이기에 1권부터 4권까지 이입할 수 있는 감정들도 각기 다르다. 그 분은, 이제는 다 자라고 부모가 되어서 어린 시절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어린 시절에 기록을 해 놓았던 듯한 섬세한 감정과 심리 묘사를 읽으며 성장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떠올리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아이들이 갑자기 나를 여자로 대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느껴지던 미묘하고 불쾌하면서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감정 같은 것 말이다.


우리가 이 소설에 이렇게 열광하고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는 여자아이들의 성장기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일 테다. 한 분은 이 작품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셨는데, 그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읽었던 필독도서 목록에도, 교과서에도 어른이 되어 가는 소녀 입장에서 쓰인 문학작품은 없었다. 소녀들은 남성들의 언어로 인간과 자신에 대해 배웠다. 여자의 경험은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고, 공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짓밟힌 릴라, 움츠러든 레누


우리는 릴라와 레누 중 자신은 어떤 쪽일까 이야기했다. 레누가 많고, 릴라는 적었다. 나는 스스로가 레누의 성향에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쌍하고 안아 주고 싶은 쪽은 릴라였다. 자신이 가진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려 하고 친구와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의해 좌절하게 되는 릴라. 릴라의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처절하게 보인다고, 다른 분도 그랬다. 나는 릴라와 레누가 세상과 대적하기 위한 두 가지 역할을 각기 맡고 있다고 생각했다. 행동가와 지략가. 또다른 분은 두 사람이 계속 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여성들은 모두 릴라같은 면과 레누같은 면을 갖고 있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화되고 살아갈수록 릴라와 같은 면은 점차 제거되고 레누와 같은 성향만이 많이 남는다고. 그래서 본인과 다른 많은 여성들이 ‘짓밟힌 릴라들’ 이라고. 본인이 릴라 성향이라고 한 또다른 참여자 분은, 자매가 많은 환경이라서 자신이 자신의 색깔을 가지고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릴라와 같은 성격의 여성들은 애초에 꺾였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이 레누의 성향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다른 참여자 분도 릴라는 이상적인 존재로 느껴진다고 했다. 돈 아킬레를 죽인 범인이 여자라고 했을 때 ‘혹시…?’했을 정도로 비범하게 느껴진다고. 릴라는 이상적 존재이고 레누는 우리와 같은 범인이어서 레누의 시점에서 우리가 릴라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라고. 릴라가 그런 비범한 인물, 한 분의 말처럼 '여성 본연의 힘'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볼 때, (불행한) 결혼이라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속박이 레누가 아닌 릴라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상징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여자건 남자건,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릴라는 못된 아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레누까지도.(물론 릴라가 실제로 못된 짓도…;;) 올리비에로 선생님도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혐오를 릴라에게 행한다. 가부장제 안에서 허락되는 여자다운 행동을 벗어난다면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반면 레누는 세상에 받아들여진다. 한 분은 어린 릴라가 자신을 공격하는 남자 아이들에게 돌멩이를 던지려고 하는데 레누가 막을 때, 마음속이 콱 막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여성들 스스로 서로를 제약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좌절된 여성 연대의 모습을 보는 것같이.


한 참여자 분은 우리 주변의 남자 친구들이 실패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이 아닌데도 그들은 항상 확신있게 걸어가는데, 우리도 우리 안의 릴라를 되찾고 확신있게 걸어가 보면 어떨까 하고 말했다. 충분히 뛰어나고 빛나지만 릴라에게 계속해서 열등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레누 또한 우리 안에 있다. 나폴리 4부작은 여자들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고, 친구를 사랑하면서도 질투하듯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릴라도 레누도 질리올라도 아다도 더 지지받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누군가에게서 얻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너는 나의 눈부신 친구”라고 더 일찍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시 시작할 용기', 지금부터 새롭게 쓰일 이야기


그러나 아쉬움만으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 없고, 이야기는 이미 쓰여 있다. <나의 눈부신 친구>의 도입부는 60대인 현재의 릴라가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 사라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한 참여자 분이 그것을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했다. 그렇다. 결혼을 하고 상대에게 아무리 실망을 해도, 세상 모든 일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벌어지는 것만 같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다시 시작할 용기’가 아닐까.


지금,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고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우리의 힘을 깨닫고 있다.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릴라같은 이도 레누같은 이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더 단단하고 견고한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모임을 정리하는 이 글을 쓰며 생각해 본다. 여기 다 담지 못한, 모임에서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더 많이 있다. 시간과 능력이 허락하는 대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나가야겠다.




책방 달리봄은 한길사와 함께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읽고 나누는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홉 분의 독자들이 한 달에 한 권씩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읽고 모여 각자의 경험과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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