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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Aug 20. 2024

빅이슈와 학생운동

24.08.20 단상

  어느날, 기묘한 경험을 했다. 이 글은 그 경험의 기록이다.

  다만 그 전에 빅이슈가 무엇인지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빅이슈는 홈리스의 경제적 재활을 돕기 위한 잡지다. 홈리스들은 잡지를 판매하여 일부를 수익으로 가지고, 남은 수익 중 또 절반은 취약계층들을 위해 쓰인다. 판매에 꾸준히 성취를 보일 경우 -비록 임대이긴 하지만- 집도 제공해준다. 이런 취지때문인지 아이유나 수지같은 유명인들의 꾸준한 재능기부를 해주고 있다.


 



 신촌역 2번 출구 층계참에서부터 한 남자가 목이 쉬도록 위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간 나왔어요!" "신간이에요!" 신촌역 2번 출구께에는 항상 붉은 조끼와 모자를 입고 빅이슈를 파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난히 열심히다. 위로 올라가보니 판매원이 바뀌어있었다. 나는 빅이슈 판매원 중에 저렇게 열심히 호객하는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이틀 전 일이 생각났다. 나는 장을 보러 갔다가 한 시식 코너 직원이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보통 마트에 가기 전에 살걸 미리 정해놓고 가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가라는 치킨을 무시했다. 반면 그녀는 물건을 팔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한참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다가와, 오늘 특가에요, 시식해보세요, 맛이 좋아요, 말을 걸었다. 물론 나한테도 그랬다. 살 걸 모두 장바구니에 담은 후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조각을 시식해보았다. 내가 이쑤시개에 음식을 꽂고 씹는 동안 그녀는 계속 말을 했다.


 "지금은 식었는데 바로해서 먹으면 더 맛있어요. 에어프라이기로 11분만 돌리면 되요. 하나에 3000원이니까 4봉지를 사도 치킨 한 마리 값이 안되죠......,"

 사실 특가로 3970원이었기 때문에 3000원이라고 하는 건 아무리 에누리를 하더라도 거짓말이긴 했다. 그래도 살도 나름 알차고 맛도 썩 좋았다. 결국 난 낸동치킨 두 봉지를 구매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충동구매였다.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행동거지가 너무 애처롭기 때문이었다. 나는 속으로 '불경기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가 돈을 많이 쓰는 거야. 나는 불경기를 이겨내기 위해 치킨을 산거야. 마침 특가에 맛도 좋으니 얼마나 좋아?'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아오 등신같으니.


 잡지를 파는 그 남자도 그 여자만큼 애처로웠다. 하지만 나 역시 금전적으로 팍팍한 상황인건 마찬가지였다. 가족일이 있어 며칠 째 생활비가 적자였다. 나는 연세대로를 걸었다. 2번출구에서 몇 발자국 더 걷자, 2인 1조로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거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그곳은 신촌 현대백화점의 출구 앞, 아마추어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는 광장이기도 했다. 나는 빠르게 주위를 스캔하고 얼굴에 힘을 잔뜩 주었다. 인상을 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잘 말을 걸지 않으니까. 잠깐의 스캔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뒤에 '생활 속에 난민'이라는 판넬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판넬에는 스티커가 징그러울 정도로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푸른 조끼를 입고 있었다. 뒤에 어렴풋이 책상과 의자, 문방구들도 보였다. 대학생들이 난민의 인권을 위해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며 맹자의 고사가 떠올랐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이 제사장에 끌려가는 소를 보고는 불쌍함을 느껴 양으로 대체하게 한 일을 칭찬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맹자에겐 사람이고 군자라면 응당 갖추어할 인륜성이라고 본 것이다. 나는 저 사람들이 빅이슈를 샀을까 궁금해졌다. 만약 저 사람들이 조금 더 불운하게 태어나 홈리스가 되었다면, 푸른 조끼를 입었을까 붉은 조끼를 입었을까? 기분이 묘해졌다.


 갑지가 비가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몇 분을 달려 편의점에 들어갔다. 와이셔츠가 축축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광장앞을 지났다. 푸른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백화점 입구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그리고 2번 출구 앞에서 빅이슈를 샀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한 손에는 검은 장우산, 반댓손에는 빅이슈를 들은 채로 생각했다.


 내가 빅이슈를 한 권 달라고 했을 때, 그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목은 이미 쉬어있었다. 그 언행이 무척 소박하고 순박했다. 그는 내게 꾸깃해진 종이를 하나 건넸다가, "이게 비를 맞아서요." 하고 웃으며 비교적 멀쩡한 종이쪼가리를 건넸다. 물론 그것 역시 젖어있었다. 종이 위에 스탬프를 다섯개 모으면 사은품을 준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게 "부자되세요."라고 말했다. 에리히 프롬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책에 사유재산은 허용되어야하나 그것이 개인의 경험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정도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커피와 책을 살 돈이면 충분하니까. 기분이 또 묘해졌다. 세상엔 참 묘한 것들 투성이다.


 



 집으로 와서도 묘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추론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있었다. 그 학생들이 빅이슈가 뭔지 모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좋은 뜻을 가진 학생들이고, 하루에 몇 시간을 학생운동에 쓸 여유도 있다. 아마 빅이슈가 어떤 취지의 잡지인지 알았다면 선뜻 구매했을 것이다. 또 어쩌면 이미 빅이슈를 구매한 후였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빅이슈를 처음 구매해보았다. 그리고 이 잡지는 단지 '선한 취지와 의도'에 의지하여 판매되는 잡지도 아니다. 나름 내용도 알차다고 한다. 수익의 상당 수가 기업유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사용되지만, 재능기부와 개인적인 후원등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불경기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돈을 다같이 많이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돈이 어딘가에서 꽉 막혀 흐르지 않는 것이 불경기이기 때문이다. 경제 대공황때 많은 국가수장들이 앞다투어 국민들에게 은행을 믿으라고 말했다. 그 호소가 통하지 않고 은행들이 연이어 도산하자 공황은 더 심화되었다.


 빅이슈는 한 권에 12000원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주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다. 그냥 기분이 좋은 날에 눈에 띈다면 한 권 정도 사주면 그것도 괜찮을 일일 것이다. 진보집단이 부르짖은 연대란 것은 생각보다 그리 거창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뭐, 필자의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말은 아니고......, -개인적으론 보수나 진보이론 모두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나, 정치집단에는 경계심이 있다- 어쨋든, 나 역시도 가끔 기분이 향할 때면 빅이슈를 한 권씩 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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