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다한이야기]
서비스 기획안에 대해 업체와 회의를 하고 고객들에게 제안을 할 때 미팅 말미에 꼭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 이제 로봇이 알아서 다 해주겠네요. 이러다 로봇한테 일자리를 뺏기는 거 아니에요?'
그동안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나름 정해진 대답을 해왔습니다.
'아닙니다. 로봇은 일자리를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보다 수월하게 해 주거나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보다 안전하고 가치 있는 일에 사람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역할로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최근엔 위의 질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저의 대답이 정말 '답'이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현재 로봇 관련 '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 관련되어서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오히려 업에 발을 담그는 사람으로서 좀 더 가시적인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아래와 같이 저만의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우리 삶의 변화 요인, IT 기술
IT 기술은 우리의 생활을 편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은 발전을 해왔습니다. 힘들고 귀찮았던 일들이 쉽고 빠르게 해결되면서 삶의 질을 높여 주었지요. 필요한 물건은 스마트폰의 앱으로 주문만 하면 당일 혹은 다음 날 새벽에 내 집 문 앞에 배송되어 있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은행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쉽게 금융 업무를 볼 수 있으며,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로 대면이 부담스러운 요즘 같은 때에는 모바일 체크인/모바일 티켓팅/모바일 예약 등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고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 IT 기술의 최고 장점으로 여겨집니다. 마찬가지로 로봇 기술 또한 힘들고 어려운 일을 완전히 대신하기보다는 사람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단순 반복되는 일은 로봇이 함으로써 사람은 다른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가 쉬워질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누리고자 하는 편안함 뒤에는 기존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바일 앱으로 쇼핑을 하고, 은행 일을 보고, 티켓팅을 하게 되면서 실제 오프라인에서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던 이들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며(혹은 인원을 줄이거나 다른 직군으로 이동하거나) 서비스 콜센터의 자동 응답 시스템 도입으로 콜센터 직원 고용 수가 현저히 줄었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식당이나 영화관에서 주문/발권을 대신해주는 키오스크 시스템 설치로 최소의 직원으로 효율적인 매장 운영이 가능하다는 어느 점주님의 뉴스 인터뷰를 접했을 때는 로봇을 비롯하여 인공지능, 메타버스, VR 등 IT 기술 발전을 우리 삶의 변화 요인으로서 제대로 살펴보고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로봇은 인간의 노동력을 직접적으로 대체할 기술로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 토대로 발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쉬운 것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것은 사람에게 어렵다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거냐고 질문을 받으면 저는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을 인용하여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 쉬운 것은 로봇에게 어렵고, 로봇에게 쉬운 것은 사람에게 어렵다'라고요. 제아무리 로봇이 잘나서(?) 사람의 일을 대신한 다하더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은 구분되기 때문에 일자리를 쉽게 뺏어가지 못할 거라는 뜻으로 모라벡의 역설을 하나의 답변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약 50년 전인 1970년대에 카네기멜론 대학 로봇연구소의 겸임교수인 한스 모라벡이 컴퓨터와 인간의 능력 차이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어려운 일은 쉽고, 쉬운 일은 어렵다. (Hard problems are easy and easy problems are hard.)'에서 비롯된 모라벡의 역설은 인간과 로봇의 능력을 아이러니하게 표현한 말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지능 검사나 체스에서 어른 수준의 성능을 발휘하는 컴퓨터를 만들기는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 지각이나 이동 능력 면에서 한 살짜리 아기만 한 능력을 갖춘 컴퓨터를 만드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라며 한스 모라벡은 자신의 역설을 인간의 진화론에 기반하여 정의했고, 이후 추상적이고 지각 능력이 필요한 인간의 영역에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뜻으로 여러 곳에서 통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과 샤오미의 '톄단'(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카피캣이라고 비난을 받지만)을 보면서 모라벡의 역설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인공지능이나 로봇에게 어렵다고 했던 부분들 (지각/知覺, perception이나 판단, 이동, 움직임 등)이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발전, 머신 러닝의 고도화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로봇이나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틀라스'와 '스팟'이 어우러져 저보다 더 춤을 잘 추는 영상을 본 이상, 모라벡의 역설로는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로봇과 일자리를 공유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최근 여러 대기업에서 로봇을 자체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며 더 나아가 TV 광고까지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자본과 인력을 동원하여 로봇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며, '단순 반복적인 일은 로봇이 대신해준다'라는 미명 하에 '사람은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고 합니다. 하지만 간과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생계를 위해서 힘든 일을 단순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부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건 아니며, 육체적 노동이 없는 일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딥러닝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기자, 약사, 회계사, 변호사, 판사와 같은 화이트칼라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연구와 전망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 고용 전망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귀천을 가려서 기술을 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IT기술은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우리 삶에 들어올 텐데 말이지요.)
물론 기술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은 당장 적용하기에 빠르고 쉬운 업종일 것이며, 당연한 수순으로 누군가의 일자리를 뺏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 냅니다. 문제는 없어지는 일자리와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간극을 최소화하고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만큼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을 하고 찾아나갈 수 있는지, 그 연결점을 찾고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4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개선하고 예산도 많이 확보하여 기업들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로봇서비스를 준비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얘기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산업 육성 및 활성화로 인해 소외 계층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과 제도적인 지원을 병행하여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를 뺏기는 일은 최소화될 수 있도록 기업과 정부가 챙겨주길 바라는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 '로봇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뺏겼다'가 아니라 '로봇 덕분에 이전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올 초 tvN에서 방영한 '박성실 씨의 사차 산업혁명'이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봤습니다. 예고편에서는 AI 도입으로 직업을 잃게 된 콜센터 상담원 박성실 씨의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기라고 하여 단순히 호기심반 재미반으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전개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몰입을 했었는데요.
20년간 노력해 메인 앵커에 올라간 아나운서를 AI앵커는 2주 만에 그 자리를 꿰차고,
식당 곳곳에 있는 서빙로봇과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로봇이 당연한 듯 이용하는 사람들.
자율주행 트럭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뺏아기게 된 가장과,
AI 상담원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상담으로 잠시 우월감과 기쁨을 누리지만 이마저도 AI가 학습을 하여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고,
AI 상담원 도입으로 전 직원을 내쫓았으면서도 커피는 사람이 내려야 맛있다는 회장의 이중성.
드라마가 드라마 같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 같았던 건 4차 산업 혁명이 판타지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성큼 다가왔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로봇과 사람이 공존하며 같이 살아야 할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