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한 달 살기
2023년 1월 10일 화요일
아들의 속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를 바라며
싱가포르 한 달 살기 4일차
어제저녁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던 아들이 아침에는 좀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미열이 있어 오늘은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점심 대 잠깐 오차드 로드에 나가서 'Library@Orchard'라는 도서관 구경 잠깐하고 파라곤 몰 내에 있는 Toy's r us 도 잠깐 구경하고 들어왔다. 이때까지는 괜찮은 줄 알아서 나간 거였는데 숙소에 들어와서 열을 재보니 37.7도의 미열이 있어서 오후는 아무 데도 안 가고 그냥 쉬기로 했다. 점심은 먹어야겠는데 밖에서 먹기 싫어하는 쭈쭈 덕에 들어오는 길에 숙소 건너편 식당에서 나시르막을 포장 해왔다. 거실 창으로 내다보면 길 건너편으로 보이는 식당인데 구글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맛과 가격은 괜찮은 것 같다. 아침에 보면 아침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꽤 붐비는 곳이기도 하던데, 나중에 우리도 아침 먹으러 와보자고 했다.
어젯밤에 아들 열 보처 서느라 잠을 설쳤더니 점심 먹고 나서부터는 졸음이 몰려왔다. 아들은 컨디션이 안 좋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흔한 남매 유튜브'와 '혜안 유튜브'를 무아지경 상태로 보기 시작했다. (흠...)
그 사이 나는 GRAB으로 먹거리 쇼핑을 했다. 싱가포르도 우리나라만큼이나 배달 문화가 잘 잡혀 있고 배달 서비스가 잘 구축되어 있어서 편리하게 쇼핑을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아직은 현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은 아들을 위해 비비고 키친에서 한식 재료들을 왕창 구매했다. 가격은 서울 물가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사악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기도 했고, 저녁거리까지 포함해서 내가 배달 받고 싶어 하는 예약 시간을 선택해서 주문을 하니 편리하긴 했다.
먹거리 쇼핑을 끝내고 유튜브 삼매경에 빠진 아들 옆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깔깔깔 거리는 아들 웃음소리에 잠이 깼다. 쪽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니 한결 개운해졌다.
나의 성향상 여행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숙소에만 있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일분일초를 허투루 쓰기 싫고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혼자가 아닌 아이를 데리고 온 여행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조금 힘들긴 하다. 혼자서라도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보니 심적으로 힘들다.(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아들 컨디션이 내일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내일은 어디를 가볼지 검색하며 아들에게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무심하다.
"내일 기분 좋으면 가보고..."
뒷말을 흐리는데 엄마인 나도 사람인지라 저렇게 얘기하는 아들이 살짝 서운하다. 그래서 우리가 숙소에만 있으려고 비행기 타고 여기까지 온건 아니라는 말로 참으로 못난 엄마의 삐짐을 전달했으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 사이에서 홀로 괴로워하는 어미의 마음을 아들은 알까? (당연히 모르겠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기로 하며 시작한 한 달 살기 여행이기에 어쨌든 아이를 잘 구슬려서 데리고 다녀야 할 것이다. 내 선택이지 않은가???
그저 아이의 컨디션이 회복되기만을 바라면서..
오후 내내 숙소에 있어 답답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숙소 근처 세븐일레븐에 물이라도 사러 가자고 얘기했는데, 그마저도 귀찮아서 겨우 일어서는 아들...
편의점에서 물을 담고 탄산수를 담고,
여기 와서 제대로 현지 음식이나 '것'들을 즐기지 못한 마음을 여기서만 파는 밀크티와 초콜릿을 사면서 달래본다. 계산하려 줄 서 있는데 로블록스 게임 랜덤 박스에 시선이 꽂힌 아들... 하하.. 결국 하나를 고르고 만족해하는 아들..
오늘 하루는 이렇게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마무리한다.
덧.
일기 쓰고 있는데 갑자기 아들이 고민 상담할 게 있다고 한다. 살짝 울먹거리는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펜을 내려두고 곧바로 아들 눈을 마주 보며 얘기했다. 무슨 고민이든 엄마는 다 들어 줄 수 있다고.
어제 리버 크루즈 타러 갔다가 갑자기 토를 했던 기억 때문에 다른 걸 하기가 두렵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 내가 내일 사이언스 센터 가자고 물어봤을 때도 어제 토를 했던 느낌이 들어서 망설여졌다고 한다.
아뿔싸..
부족한 어미는 그것도 모르고 그저 아들이 귀찮아서 그러는 줄로만 알고 더 깊은 이유 진짜 이유는 듣지도 않고 여기까지 와서 숙소에만 있으려 했냐는 못난 소리를 아이에게 했던 것이다. 아.. 어쩜 이렇게 모자랄까. 아직 더 성장해야 하는 엄마다.
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며 아들의 기분을 최대한 풀어주었다. 그랬더니 나의 목덜미를 꼬옥 당겨 안으며 고민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는 아들. 오히려 엄마에게 고민을 이야기해 줘서 고맙다고 아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아들의 숨겨진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하며 판단했던 나를 반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