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비트윈잡스(Between Jobs)란

'퇴사하면 큰 일 날 줄 알았지' 북토크를 하고

by 달하

지난 화요일 저녁,

#퇴사하면큰일날줄알았지 북토크에서
마지막으로 받았던 질문이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지예 님께 비트윈잡스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예상 질문 리스트에도 있었던 내용이었지만,
막상 그 순간 청중 앞에서 질문을 받으니 준비해 둔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순간적으로 멈칫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느끼던 바를 솔직하게 답변드렸습니다.
그런데 북토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지막 질문이 계속 저를 따라 집까지 왔고
오늘 아침에도 가지 않고 제 옆에 맴돌고 있어 출근길에 나에게 비트윈 잡스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나에게 비트윈잡스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경험했던 일과 일 사이의 시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다 제 머릿속에 아주 선명하게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버스 환승센터"

이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제 머릿속에는 여의도 환승센터 풍경이 곧바로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노선이 오고 가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타고 내리고, 또 다른 버스로 갈아타며 다시 출발하는 곳.

그곳에서는 어디에서 출발했든 상관이 없습니다. 가는 도중에 목적지가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혹은 노선을 잘못 보고 엉뚱한 버스를 탔더라도 다시 내려서 갈아타면 됩니다. 때로는 버스 사정이나 기사님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더는 가지 못해 중도 하차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본의 아니게 버스에서 내려 다른 차를 타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저는 제 커리어의 여러 순간에서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 이 회사, 이 일이 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올라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 이 길이 아니구나’ 하고 깨달은 적도 있었습니다. 혹은 제 선택이 아니라 회사의 상황 때문에 내려야 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비트윈잡스라는 ‘환승센터’에 내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제 목적지를 바라보며 새로운 버스를 골라 타야 했습니다.

버스를 처음 탈 때는 마음속에 분명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다 보면 생각이 바뀌기도 합니다. 창밖을 보며 달리다가 ‘사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다른 곳이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때로는 실수로 잘못된 버스를 타기도 하고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시 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려서 노선도를 다시 확인하고, 내가 진짜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다시 탈 수 있습니다.

비트윈잡스도 그렇습니다. 어떤 회사에 들어갈 때는 큰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일하다 보면 그 기대와 다르게 실망하기도 하고,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구조조정 같은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내려야 하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럽고 불안감을 주지만, 저는 이제 그것을 ‘환승의 순간’으로 이해합니다.

환승센터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세 버스를 갈아타고 떠나지만, 또 어떤 사람은 한참을 앉아 쉬며 다음 길을 고민합니다.

저 역시 비트윈잡스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급함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자기 길을 가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춰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승센터는 원래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르고, 더 멀리 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 바로 그것이 비트윈잡스의 본질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시간이 마냥 편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불안은 늘 함께 했습니다. ‘내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걸까?’, ‘혹시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불안 속에서 저는 제 길을 더 깊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새로운 책을 읽기도 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다음 버스를 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비트윈잡스는 저에게 단순히 ‘일과 일 사이의 공백’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노선을 다시 확인하고, 방향을 바꾸며, 더 멀리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환승의 시간이었습니다. 잘못된 길을 바로잡을 기회이자, 새로운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이렇게 표현하고자 합니다.
“저에게 비트윈잡스란 버스 환승센터와 같습니다.”

환승센터는 누구도 오래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곳입니다. 목적지가 바뀌어도 괜찮고, 잘못 탔다가 내려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든 다시 출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트윈잡스는 저에게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었습니다. 잠시 내려서 다시 노선을 확인하고, 다시 힘을 내어 출발할 수 있게 해 준 곳.
그리고 앞으로도 저는 또 다른 여정을 위해 다시 그 환승센터에 설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곳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용기 있게 내리고 다시 탈 수 있는 힘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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