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막힐 때가 있다. 속에서 뭔가가 많이 올라올 때 정리가 되지 않으니 글 쓰는 게 오히려 더 힘든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요즘 내가 선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기사에서 멍 때리기 효과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뇌를 쉬게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담이 많고 업무가 많고, 너무 여러 역할로 지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해보고 있는 중이다. 하는 일이 힘든 것보다 관계가 더 힘들 때가 많다. 역할이 많다 보니 여러 유형의 관계에서 적응을 해야 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먼저는 아이들이 학원 다니기를 거부했다.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았지만 아이의 의견을 존중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아이가 원하는 비대면 과외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결과야 어떻든지 아이가 겪고 결론까지 내려야 할 때다. 큰 아이 여름 이불을 주문했다. 내가 예쁜 것으로 사주고 싶지만 엄마가 사주는 것은 자기 취향과 맞지 않다고 거부한지 좀 되었다. '네가 주문해라'라고 하고 싶지만 기숙사 생활에 밤늦게 야자까지 하는데 내가 져줘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견을 조금 물어보고 주문해 주었다. 작은 아이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를 맞춰주는 게 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래, 너는 얼마나 힘들겠냐' 사춘기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연민'이라고 한다. 아이들과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상담에 온 아이가 '변하는 게 싫어요'라고 표현했다. 그렇구나.. 너는 변하는 게 어렵구나. 대부분 상담에 오는 내담자들이 변하는 게 어렵다는 마음을 표현된다. 실상 변화되고 싶어 왔지만 말이다. 각자의 속도에 맞게 갈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일들을 잘하려고만 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또 잠깐 멈추어야 할 때가 왔다. 멈춘다고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마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상하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라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힘에 겨워서 허덕이는 내가 있다. 그럴 때는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다. '나 힘드네!'
잠깐씩 내게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허용하자. 그리고 다시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