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잘한다 하는 아이들 틈에서 끙끙거리는 중인가 보다. 짜증이 유난히 심해졌다. 기숙사에서 오면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내 딴에는 장을 보고 아껴두었던 식재료를 꺼내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들은 '먹기 싫어' '왜' '잘 거야'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아이와 통화하다가 나도 참았던 것이 터져버렸다. 아이는 첫 시험을 아이 말로 표현하자면 '망했다' 그 다음 시험이 다가오면서 압박감을 느꼈는가 보다. 터트리고 나서 이틀간 차분함이 찾아왔다. 아이에게 몰두하다가 나도 나를 들여다볼 공간이 생겼다.
요즘엔 중학생 친구들 상담을 많이 하게 되었다. 문득 이 친구들이 얼마나 시험의 압박감과 학교 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았는지 떠올렸다. 딸아이도 그랬다는 것이 이제야 인식이 되었다. 나는 딸아이가 주말에 집에 오면 나의 위안이 되어줬으면 했는가 보다. 밥 먹으면서 이야기 듣는 것이 낙이었다. 그래서 머리로는 힘들겠다고 알았지만 마음에선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 순간에도 나는 나만 생각했다는 사실에 반성하게 되었다.
사과의 의미로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이는 이번 시험도 망했다고 전했다. 첫 시험의 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속상하고 인정하기 싫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아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한다.
'너야말로 점수가 안나오니 얼마나 속에서 힘들었겠어'
아이가 붙인 하트에 안심이 되었다. 난 상담사라면서 참 엉터리 엄마구나. 나부터가 아이와 동급으로 여기는 것을 그만둬야겠다. 마음이 되어야 진짜인데 나의 민낯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고 이제 자라가 보도록 하자. 친구같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엄마가 되자. 품이 넉넉한 엄마 말이다. 정서적 겨리를 두는 분리는 내게도 꽤 힘든 과제다.
아이가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여겨줘도 괜찮겠다 싶다. 반가운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