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딸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챙기는구나. 선생님들께 때때로 감사를 잘 표현하는 아이네. 친구들과의 시간이 에너지네. 점수에 너무 크게 연연하지는 않네. 등등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딸아이의 모습이 점차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인격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분석심리학에서 보는 것은 남성은 자라면서 어머니를 밀어내고 떨어져 나가면서 발달하고, 여성은 모호하고 경계 없는 모성에서 머물면서 서서히 분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감정과 결핍을 채워주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을 타자로 인식하는 반면 딸은 나와 같은 존재로 동일시한다. 그래서 나와 같은 딸에게 받아주는 작업을 잘할 수가 없다. 딸은 엄마로 먼저 산다고 한다. 본능에서 올라오는 모성에너지를 엄마에게 사용하고 엄마 또한 그걸 원한다. 그러면서 점차 소진된 딸은 엄마의 엄마 되기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점차 엄마의 말이 짜증나기 시작하는 때부터 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무의식의 움직임을 안다면 서로를 다르게 봐줄 수 있을것이다.
딸과 대화할 때 남편이 자주 긴장한다. 자신이 뭔가 해결해 줘야 할 것 같단다. 남편에게 말했다.
"엄마와 딸은 당신이 모르는 게 있어. 칼로 물 베기라고나 할까? 그러니 긴장할 필요가 없어. 그냥 이게 엄마와 딸이야."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전쟁을 치르고 오후에 해맑게 이야기하는 모녀를 보면 황당했으리라. 딸아이는 두 달간 적응 기간을 마치자 집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 올 수 있는 날엔 와도 되냐고 처음으로 허락이라는 걸 구했다. 별일이네? 밤늦게 와도 라면을 먹기보다 엄마 밥을 찾기 시작했다. 집을 나가 있다 보니 엄마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걸까?
"엄마, 친구가 오늘 아침에 엄마랑 싸워서 기숙사에 들어오고 싶대"
"그렇구나. 그 친구도 좀 나와보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나겠네"
"그럴껄?ㅋㅋㅋㅋㅋ"
딸아이가 현장학습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구입했는데 배송이 생각보다 많이 늦게 되어 입고 갈 옷이 없어 옷장을 뒤집었다. 내 옷을 빌려줬더니 마음에 들어 하며 기숙사에 갔는데 친구들이 엄마 옷 같다고 했단다.
"어떻게 알았지? 엄마 옷인 거?ㅎㅎ"
고민을 많이해서 저녁시간에 옷가게에 데리고 갔다. 유행하는 치마와 가디건을 사줬는데 친구들이 너무 나이 들어 보인다고 했단다.
'아니 엄마가 고른 거 어떻게 알았지?'
기숙사에 있는 우리 딸을 포함한 딸들은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밀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그게 참 서운하고 내 역할이 사라진 것 같아 휑한 마음이 가득했는데 딸이 적응하는 두 달간 나도 적응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다들 얼마나 예쁘게 크려고! 열심히 밀어내고 너희들의 생각을 잘 펼쳐가는 행복한 여정 되어라! 거리를 두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너와 나의 어여쁜 성장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