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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Feb 02. 2024

사람이 온다는 것

수선화 여인

몇 년 전에 함께 수선화를 보았던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선생님은 수선화를 보면서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손끝에서 밭 끝까지 우아한 몸짓을 선보이셨다. 그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눈치가 보이긴 했다.(죄송해요 선생님 >0<) 선생님은 그때 춤 테라피를 배우고 계셨는데 그때만 해도 나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 내게는 너무 어렵고, 손이 오그라드는 일이었기에 모시고 와서도 조금 난감한 마음이었다. 동시에 선생님 얼굴이 참 행복해 보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몇 년 후 선생님께서 상담소에 찾아오시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선생님은 상담소 개설을 축하해 주시려고 양손 가득 무겁게 오셨다. 상담소 개설이 1년이 되었어도 나는 친한 지인들 말고는 알리지 않았다. 충전이 조금 필요했다. 엄마 품 같은 작은 공간. 거기에서 나는 상담도 하지만 책도 읽고, 상담이 없는 날에는 야전 침대를 꺼내놓고 누워 '너무 좋아' 연신 외친다. 선생님의 선물을 받으며 예전의 나였다면 받는 것이 죽도록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감사히 받았다.


선생님은 선반에 있는 각종 소품을 보시며 행복해하셨다. 따뜻한 홍차를 마시며 우리는 몇 마디 나누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여전히 선생님은 몸짓을 하시며 의자에 앉아 들썩들썩하셨다.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즐거웠다. 그간에 지나온 감정들을 술술 풀어냈다. 눈물도 짓고 다소 편안한 마음이 오고 갔다.


나의 초기 꿈에는 아줌마들이 많이 등장했다. 나보고 나물을 무칠 줄 아느냐, 남 눈치 그만 봐라. 한약을 먹어라 등등 궁중에서 일하는 수라간 여인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람이 심리적으로 너무 허기가 지고 힘이 들 때 집단 무의식에서 보내는 Self (자기) 원형상이 있다. 원형은 쉽게 말해 사람들 속에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패턴이 있는 틀이고 상은 이미지이며 이미지는 감정이다. 분석 심리학은 경험 심리학이라고도 표현하며 콤플렉스 치료이다. 콤플렉스는 신체를 동반한 감정의 핵, 감정 덩어리이다. 우리가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신체에서 나타나는 두근 거림이나 깜박 잊는 현상들은 콤플렉스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이 깨지고 차이가 나 있는 것을 가리킨다.


나의 Self(자기)상은 아줌마였다. 아줌마에 대한 나의 연상은 컨테이너가 크고, 산전수전 다 겪어 통합된 상이다. 내가 나이를 먹는 다면 그런 컨터이너가 생길 것 같지만 아직은 아니라서 날 도와주러 무의식에서 뜬 것이다. 그 장면을 계속 떠올리면 내 안에 치유가 일어난다.


중년의 여인. 수선화 선생님이 다녀가시고 나는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사람이 찾아 온다는 것은 내가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더 컸드랬다. 이제는 아니다. 잔잔하게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은 참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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