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사과한다.
"수치심"
나의 원동력은 창피당하지 않으려는 감정이었다. 뭐 크게 수치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랬을까.
'나는 잘 못해'라고 말하면서 시작해 놓고 꽤 괜찮게 마무리하곤 했다. 왜? 먼저 깔고 들어가면 실수해도 덜 창피해서 그랬을까.
어린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어른들의 입장에서 별거 아니더라도 소화되지 않는 감정은 멍하게 다가오고 계속 생각나며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올라올 때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되는 거야. 놀랐겠다.'
어린 시절엔 미쳐 다루어주지 못해 남겨두었던 마음을 이제 어른이 된 내가 달래주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감정을 구조화된 틀에서 다시 겪고 통과하는 것을 무의식의 의식화라고 하는데 이것을 겪기까지 저항이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그렇게 피하고 싶고, 또 되고 싶기도 하다.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들을 다스리는 것도 자아가 튼튼해야 한다.
할 말을 다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게 튼튼한 건 아니다.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정중히 거절할 수 있으며 못 하는 건 못한다고 하고 싫은 것을 해야 할 때는 견딜 수 있다.
"너의 실수까지 사랑해. 괜찮아"
말해줄 때마다 뭔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움츠러들지 않게 날 꺼내준다.
아무리 잘 안다 한들 살아낸다는 게 어찌 쉬우랴.
'그동안 널 몰아붙이고, 어떻게든 하게 만들어서 미안했어. 이제 니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봐.
거기서 진짜 네가 나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