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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에 글쓰다 Feb 06. 2024

나를 사랑하지 않은 댓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말을 믿게 돼요.

내가 나에 대해서 모를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의존하게 돼요"


얼마 전 앤 해서웨이의 인터뷰 쇼츠를 본 적이 있다. 오래전 인터뷰였다. 사람들이 남기는 댓글에 상처받아 힘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언젠가는 앤 해서웨이가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화장도 하지 않았고 시선에 자유로워 보였다.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끌리게 되었다.


우리는 언제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해질까. 나는 언제쯤 될까. 칭찬은 나를 춤추게 했다. 그래서 칭찬 따라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바람 빠진 풍선 같다. 다시 바람을 채우는 중이다. 서서히 되어가는 과정 중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좋다. 그러다가도 가끔씩 밀려오는 걱정이 있다. 너무 아무것도 안 하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닌데. 여전히 과거의 내가 올라오면 불안해진다.


나는 현재의 나를 인정해야만 한다.

'나, 다 못해. 그만하고 싶어.'

균형을 찾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타인에게 향하며 일할 때와 내게 집중하며 일할 때 쓰는 에너지의 차이가 크다. 그러니 덜 지치기 시작했다. 그전보다 더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맛있는 것이 생기거나 좋은 것이 생기면 내가 쓰지 못하고 누구를 줄까. 누가 필요할까 생각했다. 엄마가 그러니 아이들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내게 그랬다.


"엄마가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이렇게 됐잖아!"

"엄마가 내꺼 주라고 해서 줬는데 걔는 안 그래!"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느꼈을 갈등과 상처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해진다. 아이에게 '니 생각은 어때?' 물어봐 줬으면 달랐을 것이다. 나를 존중할 줄 몰라 아이도 존중해주지 못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모두에게 상처를 준 셈이다.


결국 나는 마음이 해체되고 길을 잃었었다. 내가 누구인지 질문하기 시작할 때부터 멘붕이었고 너무 아파서 그만 알고 싶었다. 가끔 상담 종결을 하고 듣는 이야기들이 있다. '나를 안다는 게 뭐가 나올지 몰라 겁이 나더라고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충분히 안다.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꺼낸 것 같다.

그러나 그걸 시작해야 나를 찾는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때론 열심히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의 감정을 알아주며 해야 한다.

' 넌 어때? 니 생각은 어떤 거 같아?'

'애썼다. 장하다. 그 힘든걸 해 내다니! 잘 참았다. 멋지다!'


뭐부터 해야 될지 막막할지도 모른다.

마음가짐이라도

'날 찾을 거야. 날 사랑할 거야'라고 많이 해두자.

그렇게 하다 보면 나의 무의식이 움직일 것이다.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은 댓가가 이토록 크다. 그래도 나는 길을 잃기를 잘했다. 너무 지쳐 울고 있던 나를 이제 내가 돌봐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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