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공원에 가서 꽃을 샀다.
이 꽃이 예쁠까 저 꽃이 예쁠까
추모공원에는 엄마가 있고 그 안에 있는 납골당에는 시어머니가 계신다. 우리 엄마들은 우리가 20대, 30대 때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는 암이었고, 시어머니는 심장 마비셨다.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 같은 추모공원에 모셨다.
나는 엄마 사랑이 늘 고픈 사람인데 두 엄마가 모두 없다. 시어머니가 계실 땐 조금 나았는데, 매번 기념일이 되면 그리움이 밀려온다. 명절인데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우리끼리 잘 지내보자며 외식도 하고 근처에 가서 바람도 쐰다. 이번엔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러 갔다. 역시나 할 말이 없다. 한참 바라보다 잔디를 만진다. 그때부터 눈물이 난다. 그래서 말이 나오지 않았나 보다. 눈물이 날까 봐. 마음속에서 '언제까지 울 거야?' 하는 마음이 있다. 울면 안된다고 자꾸만 제동을 건다. 언제쯤 '울어도 돼'가 편하게 될까.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날도 설날이었다. 그래서 설날만 돌아 되면 몸살이 오거나 기운이 없어진다. 아, 그래서 우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구나. '언제까지 그럴거야' 나무라기만 했다.
그날 나는 병원에서 엄마를 보내고 한참을 엄마품에 엎드려 울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 울지만 말고 잘 보내자.'
병원에서 입던 남색 트레이닝 복장 그대로 영정사진을 챙겨 장례식장으로 갔다. 영정사진으로 있는 엄마도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도 다 마음에 안 들었다.
왜 엄마사진이 여기 있어야 하느냐고. 낯설어. 아닐거야. 안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침을 먹는데
'병원이었으면 엄마 밥 먹을 시간인데' 하고 또 울었다. 밥이 있는데 밥 먹을 엄마는 없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모가 이제 그만 울고 밥을 먹으라고 했다.
'아 도대체 이게 뭐지?'
그때 내 나이가 26살이었다. 나는 명절 때마다 그때에 머물러 있다. 엄마의 보호자로 3년간 병원생활을 했던 나는 그때부터 내 할 일이 없어졌다고 느꼈다. 존재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만 살 수 있었다.
슬픔에서 나와 이제 엄마에게 꽃을 주기로 하자.
그리고 내 마음도 환하게 펴보자. 참기만 해서 곪았던 내 마음 하나씩 꺼내서 약 발라주자.
26살에서 내 나이만큼 자라자.
'그래, 너 참 힘들었을 텐데 잘 지나왔어.
힘들 때마다 말해 내가 들어줄게.'
상처가 아물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나의 엄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