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마음 편히 누워본다. 뒤늦게 시작한 조직생활? 에 긴장을 한 탓이다. 잠깐 누워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르게 내버려 둔다. 아차. 그때서야 이번주에 빨래를 한 번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집에 가면 쌓여있는 빨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장생활을 처음 겪어보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배려였다. 금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생각이 났다. 빨래 돌리고 정리하고 서랍에 넣었을 남편 모습이 그려졌다. 하루종일 해도 티 안 나는 게 집안일인데 남편이 왜 퇴근하고 오면 '내가 빨래 돌렸어' '내가 청소기 돌렸어' 했는지 알겠다. '나는 뒤늦게 조직? 에 들어가고 남편은 집안일을 하네' 피식 웃음이 난다. 서로의 입장을 겪어보는 재밌는 일주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결혼하고 경기도에서 경상도로 그리고 충청도로 여기저기 삶의 터전을 옮기며 살았다. 가야 하는 줄 알고 그렇게 단순하게 따라다녔다. 손이 제일 많이 가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남편은 새벽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고, 나는 돈을 아끼기 위해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손수 다 해 먹였다. 덕분에 김치도 장아찌도 수월하게 하는 편이다. 그때 우리 집은 산복도로에 있었다. 아이들은 수박을 좋아했고, 나는 일주일에 몇 번씩 수박을 사 와야 했다. 마트에 가면 비싸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 샀다. 버스로 1 정거장의 거리였지만 거기서부터 집에 올라가는 길은 수박을 들고는 힘든 길이다. 나는 택시비를 아끼려고 그렇게 걸어서 수박을 사다 날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일이다. 그 몇천 원을 아끼자고 그 고생을 하다니! 그렇게 나는 단무지로(단순 무식하게) 살아야 했다. 아니, 버텨냈다. 농촌으로 오면서는 남편과 24시간 붙어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가 가끔 그리워 지긴 한다. 그래도 남편이 같이 있으니 혼자 하던 일이 나눠지긴 했다. 남편이 어느 날 내게 그런다.
"당신 힘들었겠다"
음... 이제라도 알아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뭔가 짠한 마음이 든다. 남편이 철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만나 우리는 서로에게 가끔씩 '많이 컸네~'라고 말하곤 한다. 연애까지 20년을 함께 하면서 각자의 엄마를 천국에 보냈고, 새 가족들을 맞이해야 했다. '언제 크려나' 했던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쑥쑥 커서 내 키를 넘어가고 서로 의논이라는 것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에서 요셉의 고백을 좋아한다. 자신을 시기하고 버렸던 형제들을 원망하지 않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이렇게 축복해 준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창세기 49:22
고난을 통해 자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 살리는 사람이 되었다. 상담을 하면서 '기여하는 삶'에 대해 배운다. 내가 아픔 속에서 나오지 못할 때는 '왜 나만 미워해'라는 마음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런 과정은 축복이라는 것을. 나도 살고 당신도 살게 하는 것이다. 남편의 빨래하기가 여기까지 생각을 불러온 것이 놀랍다. ㅎㅎ 나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는 남편에게 오늘 저녁은 맛있는 밥을 차려줘야겠다. 여보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