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다. 눈이 거실로 들이닥칠듯하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소나무에 앉아있는 눈이 허공에서 맴돌다 내려앉는다. 쌓였다.
명절에 아들이 가져왔던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갈았다. 머그잔에 커피를 내려 찻잔을 들고 다시 창문 밖을 응시했다. 산미가 묵직하다. 진하게 내려서인지 커피 맛이 참 쓰다. 처마 밑에 내 허벅지만 한 고드름이 늠름하게 서 있다. 그만큼 밖의 온도는 영하, 말할 수 없이 춥다는 걸 말해준다. 어릴 적 시골집 수돗가에서 따먹었던 작은 고드름이 생각났다. 겨울이면 얼음과자처럼 먹었던 맑은 고드름이었다. 이젠 저걸 어떻게 따 먹지? 보다는 아이들 걱정이다. 객지에서 혼자 지내는 자식이 춥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늘에 달님과 별에게 바다에 파도에게 소나무에 앉아있는 참새에게 말한다. 밥은 잘 먹고 다니지?
딸은 서울에서 6년 차 혼자 지낸다. 마냥 철부지인 줄 알았다. 회사에 감원 강풍으로 호되게 아픈 흔적이 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조금 담담해진 듯하다. 말이 적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응급실 갔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혹한기 훈련을 치렀구나. 아파도 연락 없는 아이라서 마음이 아팠다.
아들은 전주에서 카페를 운영했다. 3년을. 4월에 문을 닫는단다. 아들도 그랬을 것이다. 눈처럼 쌓였다 녹았다 했을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다가 고비를 넘기고 다시 시작하고, 얼음처럼 꽁꽁 얼었을 애간장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혹한기다. 애썼겠지만 결국 선택했다.
세상살이가 강풍에 영하의 날씨처럼 추웠을 아이들, 단단해졌으리. 햇빛에 고드름이 녹아 뚝뚝 떨어진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땅밑에서 알뿌리를 단단하게 다지고 있던 수선화싹이 올라왔다. 따뜻한 봄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