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어떻게 완성되고 해체되나?
작은 누나 덕분에 점심을 잘 먹었다. 4D 극장에서 영화도 한 편 보고, 비싼 스타벅스에서 큰 잔으로 커피를 마셨다. 돈도 있으니 친구들을 만나, 술이라도 한잔 빨면 되는데. 이런,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야. 오늘 일찍 들어와라.”
“엄마 나 빠지면 안 돼요. 누나들도 되레 좋아할 텐데.”
“누나들은 떠날 사람들이고, 넌 우리 집 장손이잖니. 백년손님이 오는데, 네가 있어야지.”
엄마의 장손이라는 말에 유전적으로 작은 어깨가 더 쪼그라든다.
“그놈의 장손 소린. 알았어요. 바로 들어갈게요.”
엄마의 말이 내 발걸음을 이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속에 장손이라는 의무감이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집에는 아직 엄마와 아버지 말고는 없다. 엄마는 음식 준비로 분주하고, 아버지는 놀러 온 이웃집 아저씨처럼 TV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몇 시에 온대요.”
“나도 모르겠다. 너도 알잖니, 네 누나들이 나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러니까 아버지가 좀 더 세게 나가셔야죠.”
“뭐 내가 해준 것도 없고.”
무능력한 남자의 어깨가 한 번 더 무너진다. 저 어깨, 몇 번만 더 무너지면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이라는 것이 참 답답하다.
아버지는 한때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공무원으로 취직하기가 쉬웠다나. 그나마 공무원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자식들에게 무시당하고 살지 않았을 것을.
아버지가 공무원을 그만둔 것은 친구의 솔깃한 제안 때문이었다. 승용차가 많이 보급되었을 때라, 아버지는 중고차 매매상이 잘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친구와 동업으로 사업을 시작해보니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중고차 수급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던 중 친구가 사기를 당했다. 중고차 열 대를 도매업자로부터 뽑아오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이중 계약이었다. 다섯 대라도 건진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일 년 만에 아버지는 빚을 지고 사업을 접었다. 아버지 친구는 자기 때문에 커진 일이라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친구라는 사람이 바로 내 외삼촌이다. 그 일로 아버지는 돈을 잃은 대신 평생의 반려자를 얻을 수 있었다. 인생 새옹지마(塞翁之馬)라. 돈도, 매력도 없는 아버지가 언감생심 어머니 같은 여자를 어찌 얻을 수 있었겠는가.
문제는 먹고 사는 일이였다. 털썩 결혼해서 애까지 생겼는데, 아버지는 변변치 못했다. 그나마 공무원이라는 책상물림을 한 가락이 있어서 무역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는데, 말이 무역회사지 소규모 오퍼상에 불과했다. 일은 고되지, 급여는 작지. 사주에 방랑기가 있었는지 아버지는 한 회사에 머무르지 못하고 유랑극단처럼 회사를 옮겨 다녔다. 일 년에 두 번이나 회사를 옮겨 다닌 적도 있었다. 소문 때문에 더는 회사를 옮기지 못하게 되자, 아버지는 그 일마저 그만두었다. 그 이후 누가 가정을 꾸려 나갔겠는가. 엄마가 집에서 살림만 한지도 채 이삼 년밖에 되지 않았다.
“뭔 반찬을 이렇게 많이 해요.”
“네 매형 될 사람인데, 흠 잡히지 말아야지.”
엄마의 말이 비장하다. 아버지만큼 변변치 못한 오빠를 둔 엄마의 경험에서 나온 말일 테다.
“야, 소갈비 너, 얼마 만이냐.”
엄마가 내 손을 탁 친다.
“비싸서 얼마 못 했어. 나중에 같이 먹자. 그런데 올 때가 다 된 것 같은데.”
엄마가 목을 쭉 빼고, 베란다 밖을 살핀다. 어둑해진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여보, 밖에 좀 나가 봐요. 애들 오나 안 오나.”
아버지는 엄마의 얘기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TV에 빠져 있다.
“아니 저이가. 안 되겠다. 네가 나가 봐라.”
못 보던 승용차가 아파트 입구에 주차되어 있다. 내가 사는 곳은 한 동밖에 되지 않는 나 홀로 아파트여서 웬만한 차들은 다 기억한다. 잘 사는 동네가 아니어서 외제 차나 고급세단이 들어오면 눈에 확 뛴다.
주차된 차는 십 년 가까이 되어 보이는 구형 아반떼다. 워낙 닳고 닳아 차 옆에 서면 차의 말이 아니라 유창한 우리말로 형님 하고 부를 것만 같다.
차 안에 젊은 남녀가 있다.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아메바처럼 가까이 붙어 있다. 모든 질량이 있는 것들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중력의 법칙에 충실한 인간들이다. 얼굴과 얼굴이, 상체와 상체가 포개져 있다. 운전석과 보조석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면, 온몸이 딱 붙었을 것이다. 어떤 연놈들일까. 나는 남녀의 모습을 힐끗힐끗 구경하며, 대로로 이어지는 골목을 살폈다.
멀리 큰 누나의 모습이 보인다. 누나 뒤로 작고, 땅딸한 남자가 세 걸음 뒤에서 누나를 뒤따른다. 가로등 빛이 비추자 머리가 반짝, 별빛으로 빛난다. 별빛이 흐르는 남자다. 만약 누나의 남자친구가 저 남자라면, 나는 누나의 결혼을 결사반대할 것이다. 내 결혼식에 저렇게 못생긴 매형을 세우고 싶지 않다.
아반떼 안은 몸 맞추기를 끝내고 싶지 않은 듯, 바쁘다. 이대로 나눈다면, 둘은 서로를 먹어치울 것만 같다. 어쩌면 입술과 얼굴이 서로의 위 속에서 소화되어야 끝날 것인지도 모른다. 열렬해 보이는 이들의 사랑이 위액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별빛이 흐르는 남자가 누나 옆을 스친다. 누나가 흘끔 옆을 바라본다. 남자는 푹, 고개를 숙인다. 이내 앞서나가는 남자. 별빛이 후드득, 땅 위로 떨어지는 것 같다. 누나가 자리에 멈춰 선다. 떨어진 별을 주우려는 것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누나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다. 내 앞에선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는데.
“누나.”
내 말소리에, 큰누나가 일어선다. 바닥에서 아무것도 줍지 않았다는 듯 툭툭 털고. 누나 혼자 걸어온다. 별빛이 흐르는 남자는 어느 골목으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바쁘대.”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살다 보면 바쁜 일이 많다.
“둘째는 왔어.”
“그보다도, 누나. 저 차안 장난이 아니다. 초강력 접착제를 붙여 놨는지, 둘이 딱 붙어서 막…….”
아반떼의 문이 열린다. ‘끽’, 제 나이를 증명하듯 금속성 마찰음을 잊지 않는다.
“바로 저 연놈들이야.”
남자가 먼저 내리고, 그다음 여자가 내린다. 그런데 뒷모습이, 익숙하다. 여자가 작은 누나 옷을 입고 있다.
“언니.”
여자가 손을 흔든다. 남자는 꾸벅 고개를 숙인다.
헉. 작은 누나의 남자에 대한 철학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누나는 남자의 입, 그 깊숙한 목구멍까지 살피려고 했던 것일까.
“언니 남자 친구는.”
“바쁘대.”
큰 누나에 앞서 내가 끼어들었다. 누구에게나 말 못할 어려운 사정이 있으니까. 엄마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뒀을 때도, 일하던 식당에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을 때도 엄마는 항상 같은 얘기를 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나는 엄마가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잘 헤아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머리가 좀 더 컸을 때, 엄마의 말은 다르게 들렸다. 엄마에게도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거란다, 라고.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파트 복도에 들어서니 음식냄새가 진동한다. 갈비 냄새도, 고소한 참기름 냄새도 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음식 주위에 모여, 웃음꽃만 피우면 된다. 완벽한 가족의 완성이다. 내가 꿈꾸던.
현관문이 열려 있다. 엄마가 우리 목소리를 들었는지, 문 앞까지 나와 있다.
“어머니, 이것 받으세요.”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오만 원쯤 되어 보이는 꽃다발을 안긴다. 여자 친구 집 첫 방문치고는 조촐하다 못해 무성의한 선물이다.
“뭘, 이런 것을 다.”
엄마는 선물보다 큰 누나의 눈치를 살핀다. 큰 누나의 남자친구가 궁금한 모양이다.
“회사에서 바쁘데요.”
어떤 사람들에게나 말 못할 사정이 있음을 잘 아는 내가, 다시 끼어들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자 들어가자.”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TV를 보고 있다. 특별하게 중요한 뉴스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흐름이 끊기는 일일드라마가 방영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때 나는, 아버지가 보고자 하는 것이 TV 드라마나 뉴스가 아니라 TV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버지의 TV 사랑은 대단했다. 아버지는 내가 일어났을 때나 학교에서 되돌아왔을 때도, 밤에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갈 때도 TV를 보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똥을 쌀 때도, 심지어 자고 있을 때도 TV를 켜 놨다.
아버지가 TV를 켜는 사람이었다면, 어머니는 TV를 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잠이 든 후 어머니는 조용히 TV를 껐다. 아버지가 깨면 큰일이라도 나는지, 조심히 딸각.
“어떻게, 거실에 큰 상을 펴야겠죠.”
“아직 상도 안 펴놓고 뭐했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타박에 엄마의 인상이 구겨진다. 아버지의 모든 사정을 다 이해하던 엄마였지만, 오늘만큼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그럼 아버지는 뭐했어요.”
작은 누나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버지가 잘못 말씀하신 것이 맞아요.”
과묵한 큰 누나도 말을 보탠다.
“이것들이, 아버지 알기를 너무 우습게 알아.”
보통 큰기침 한 번으로 끝내던 아버지였다. 어색한 목소리가 방안 가득 깔린다.
“자자, 제가 상 펼게요. 모두 화 푸시고.”
이럴 때 장손인 내가 나서야 한다. 장손이 괜히 장손이겠는가.
“너는 뭐했어. 집에서 쳐 놀면서.”
작은 누나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시팔, 작은 누나가 자동차 안에서 벌렸던 일이 어금니까지 튀어 오른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밥도 먹기 전에 분위기를 개판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상을 펴자, 어머니와 누나들이 밥과 국, 반찬을 나른다. 나와 아버지,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만 어색하게 앉아 있다. 어색한 분위기가 싫었는지, TV가 상 위에 잡다한 농담을 펼쳐 놓는다.
“자, 국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엄마도 같이 앉으세요.”
큰 누나가 엄마를 끌어당긴다.
“엄마는 천천히 먹어도 돼. 어서 먼저 먹어.”
엄마가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자, 아버지가 헛기침을 한번 한다.
“늙을수록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해.”
아버지의 말투가 저렇다. 분명 엄마를 챙긴다고 한 말이었겠지만, 엄마의 인상이 다시 구겨진다.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 있어요.”
엄마의 눈이 빨개진다. 간을 맞추듯 소갈비 위로 눈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다.
울음도 울 여유가 있어야 우는 것이다. 나는 엄마만큼은 절대로 울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몇 번 엄마의 눈이 빨개진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엄마 울어요, 라고 물어봤을 때, 엄마는 매운 고추를 먹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고추 중에서도 청양고추를 좋아하는 엄마가 울 정도의 매운맛이라니. 그땐 나는 엄마가 먹은 고추가 얼마나 매운 놈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큰 누나와 작은 누나가 엄마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에는 덩그러니 남자들만 남았다. 고요와 정적 사이로, TV속 개그맨들의 난잡한 잡담만이 흐른다.
“밥 먹자. 어서 먹어요, 어서.”
내가 수저 들기를 주저하자, 아버지는 내 손에 수저를 쥐어 준다. 마치 공범을 만들 듯.
“갈비 맛있다네. 하나 먹어 보게.”
아버지는 큼지막한 소갈비 하나를, 작은 누나 남자친구 밥 위에 얹어 놓는다. 마치 흰 모래 위에 얹어진 고인돌 같다.
“저, 먹어도 될까요?”
“그럼, 그럼. 여자들이라는 것이 다 그래. 곧 잠잠해질 거야.”
아버지의 불편한 저 소신은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오늘만큼은 아무래도 아버지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만 같다.
“아니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나한테 그래.”
아버지가 엄마가 들어간 방을 힐끗 쳐다봤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나는 잠자코 갈비를 뜯었다.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갈비인가. 집안 분위기는 무겁지만, 갈비는 달다. 내 옆에 앉은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는 젓가락을 들고 깔짝거리고 있다.
“생각해보니 통성명을 하지 않았구먼. 자네 이름이 뭔가.”
나도 뭔가 빠진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우리 집에 들어 온 지 벌써 이십 여분이 지났지만, 아직 이름을 모르고 있다.
“저는 김만복이라고 합니다.”
“만복이라, 좋은 이름이구먼. 만(萬) 가지 복(福)이라.”
“뭐, 꼭 그런 뜻은 아니지만.”
“우리 작은 아이하고는 얼마나 사귀었나.”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가 주저하는 모습이다. 결혼할 생각으로 데려왔는데 설마 일 년은 사귀었겠지.
“이제 한 달하고 이틀 됐습니다. 횟수론 두 달이죠.”
말을 하면서도 멋쩍은 듯 머리를 긁는다.
어, 어험. 아버지가 두 번 헛기침한다.
“뭐, 요즘 사람들은 다 빠르니까요. 작은 누나도 사정이 있겠죠. 사정이.”
“사정은 무슨 사정. 이름이 김 만복이라고 했나. 그냥 밥이나 맛있게 먹고 가게.”
아버지 말이 맞다. 사정은 무슨 사정. 한 달하고 이틀, 횟수로 두 달 만난 사이에 집 앞에서 대놓고 그 짓거리를 하는 인간들이라니.
정적이 다시 밥상을 감싼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두 누나를 한꺼번에, 이제는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 김 만복과도 문제를 만들었다. 다음은 누굴까.
딩동, 정적을 깨고 벨이 울린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현관문을 연다. 키가 작고 땅딸한 남자가 문 앞에 서 있다. 머리에는 노란 센서 등 불빛이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누구시죠.”
남자가 꾸뻑 인사를 한다. 머리를 타고 흐르는 노란 불빛이 바닥으로 떨어져 번들거린다. 나도 엉겁결에 같이 맞절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박, 재가라고 합니다.”
“예, 알겠는데요. 누구 신지.”
가만히 보니, 큰 누나 뒤를 따르던 남자다. 별빛이 흐르던.
“혹시 큰 누나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설마 했는데.
남자 넷이 길고 네모난 상에 앉았다. 긴장한 두 명의 남자와 인상이 찌그러진 채 보스처럼 앉아있는 아버지, 그리고 어찌할 줄 모르고 앉아 있는 나까지. 숫자로만 봐선 얼추 가족이 완성됐다.
“어떻게 초혼은 맞으신가?”
아버지의 농담이 심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 보여도 초혼은 맞겠지. 누나가 처녀인데.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농담은…….”
“그게 저, 제게 딸이 하나 있습니다만.”
별빛마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짙은 정적이 흐른다. 별빛이 흐르던 남자가 무릎을 꿇는다. 그의 얼굴은 독립투사처럼 굳은 결의가 가득하다.
탁. 아버지가 밥상 위에 수저를 내려놓는다. 아버지 얼굴의 잔 근육들이 요동을 치는 것 같다. 나는 손으로 삐죽거리는 입을 가로막는다. 아버진 두 손으로 밥상을 움켜쥐었다가, 숨을 고르고 손목에 힘을 푼다. 만약 가벼운 밥상이었다면, 뒤집어졌을 것이다.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이 이번에 나를 향한다.
“너는 데리고 올 여자 없냐. 이왕 볼 거 한꺼번에 다 보자.”
나는 매형들이라도 평범한 사람들이기를 바랬다. 누나들은 적어도 아버지와는 다른 남자들을 데려올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진심으로 평범하고, 소소한 가족의 완성을 바랬다.
우리 집 여자들, 좁디좁은 방 안에 모여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일까. 처녀와 재가를 원하는 큰 누나의 남자친구와 횟수로 두 달 된 작은 누나의 남자친구 그리고 엉겁결에 나까지,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꽉 막혀버린 우리 가족의 마음처럼, 피가 통하지 않는 다리가 저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