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쉬 2

올핌픽대로에 갖힌 구급대원의 에피소드

by 주영헌



진동으로 바꿔 논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은 김경식, 동생이었다. 이 자식 이번에는 또 뭘까. 나는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형 난데. 돈 좀 해줘.”

동생에게서 걸려온 대부분의 전화엔 ‘용건만 간단히’라는 표어처럼 안부인사가 생략되어 있었다. 필요한 것은 내 돈일 뿐, 안부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의도일 테다.

“니가 뭐, 돈 맡겨 놓은 것이 있냐.”

“형 그러지 말고 해줘. 나 급하단 말이야.”

백만 원을 빌려 준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다. 동생은 두 달 전에도 50만 원을 빌려갔다.

동생은 수금하듯 한 달에 한 번 꼴로 전화해 왔다. 동생에게 한결같은 것이 있다면 급하다고 하는 다급한 목소리뿐일 것이다.

동생은 이자는 고사하고 빌려 간 돈의 원금도 한번을 갚은 적이 없다. 빌려달라는 얘기는 결국 그냥 달라는 얘기였다. 이렇게 몇 해 동안 빌려간 돈이 이천만 원이 넘었다. 빌려준 돈은 고스란히 빛이 됐다. 당연히 아내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 돈 없다. 너도 잘 알잖아. 지금까지 빌려 간 돈이 얼만데.”

“형 마지막이야. 이번이.”

“됐다. 전화 끊어.”

폴더를 닫았다.

“왜 그래.”

노인이었다. 엄살을 떨던 와중에도 동생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다 들은 모양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웬만하면 빌려주지 그래. 그래도 동생인데.”

“어르신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녀석이 빌려 간 돈이 얼마인데요.”

“그래도 형제밖에 없다네. 살다 보면…….”

노인네가 뭘 안다고. 구겨진 기분과 상관없이 휴대폰은 바쁜 벌처럼 연신 붕붕거렸다.

“이 자식이.”

휴대폰 통화버튼을 눌렀다. 수화기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경식아. 돈 때문이라면 다시는 전화하지 마.”

“형 제발.”

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항상 이런 식이다. 동생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뭔데.”

“임신을 시켰어. 여자친구를. 그래서 돈이 필요해.”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동생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 내 삶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솔직히 네 말 못 믿겠다. 내가 너에게 속은 것이 한두 번이냐.”

“형 내 여친 바꿔줄까. 지금 내 옆에 있는데.”

“이, 씨발놈.”

어떻게 형한테 임신한 지 여자 친구를 바꿔줄 수 있는가. 부끄러움도 모르는.

“거 조용히 좀 하지. 아파죽겠는데. 근무 중에 전화하면 쓰겠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경우가 없어 경우가.”

노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잔뜩 묻어있었다. 나는 전화 수화기를 가리고 노인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노인이 소방서에 민원이라도 넣으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저 죄송한데요. 아주버님.”

휴대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처음 듣는 여자의 것이었다. 동생 여자 친구와는 몇 번 대면한 적이 있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여자의 목소리가 내가 아는 목소리와 달랐다.

“저 이거 알려지면 집에서 죽어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울먹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통해 구급차에 울려 퍼졌다.

“돈을 해줘야 하겠구먼. 남 일도 아니고 동생 일인데.”

노인이 다시 끼어들었다. 타박하는 시어머니 보다 끼어드는 시누이가 더 미운법이다.

“소변 마려우신 것은 괜찮으신가 봐요. 어르신”

이 노인 정말 아픈 사람이 맞을까. 일일이 참견할 정신이 있는 것을 보면 꼭 엄살을 부리는 것 같다.




구급차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5m에서 10m씩 움직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이렌을 울리고 경적을 울려 봐도 막혀버린 차량행렬은 요지부동이었다. 구급차가 정차할 때마다 노인의 몸이 앞뒤로 흔들렸다. 노인의 인상이 찌그러졌고, 불만이 불같이 쏟아졌다.

“운전 좀 살살해.”

“죄송합니다. 어르신. 차가 많이 막혀서 어쩔 수 없네요.”

잠시 멈춰있던 휴대폰이 울린다. 노인이 힐끔 쳐다보며 볼을 씰룩거렸다. 어서 전화를 받으라는 눈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받고 싶지 않다. 받으면 시끄럽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

“받지 않으려면 전화를 꺼.”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차라리 휴대폰을 꺼 놓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며칠 전 장모가 병원에 입원했다. 소화가 안 된다는 말을 평소에도 입에 달고 살던 장모였다. 노인치고 잦은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와 아내는 처음에 단순한 소화불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름 전부터 장모는 명치끝에 뭔가가 걸린 같다고 했다. 나는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빨리 아내에게 장모를 모시고 병원에 가 보라고 했고, 그날 장모는 위내시경을 통해 작은 종양 조각을 떼어냈다. 오늘 그 결과를 듣기로 한 것이다. 분명 내 예감에 장모는 암이 확실했다.

처음 본 노인에게 시시콜콜 집안 사정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노인의 짓궂은 얼굴 표정으로 볼 때 얘기해 봤자 이해해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속도 모르는 휴대폰만 계속 붕붕거렸다.

연신 울리던 휴대폰에선 모르는 번호가 떴다. 동생이 여자 친구의 휴대폰을 빌려서 전화한 것일 테다. 동생은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이었다. 예전에 동생과 사귀었던 여자 친구는 어떻게 된 것일까. 동생과 어울리지 않게 싹싹하고 착한 아가씨였는데. 동생은 그 아가씨도 한번 임신을 시킨적이 있다. 결혼할 여력이 되지 못했던 동생은 그 때도 돈을 빌려갔다.

“너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

나는 휴대폰을 손으로 가리고 소리쳤다.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동생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이제 됐다. 기선을 잡은 이상 계속 밀어붙이면 된다. 휴대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송재환입니다.”

머릿속에선 열심히 인명록을 뒤졌다. 생각나지 않는다. 동창이나 친구 중에서 송재환이란 이름은 없다.

“식당에서 전화해도 된다고 해서요.”

아, 사직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얼굴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있던 친구. 이 친구 왜 내게 전화를 했을까. 오늘 송 소방사에게 한 말도, 사실 인사치레에 불과했다.

“제가 연락할 분이 딱히 없어서요.”

전화를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도로는 막히고, 아이처럼 칭얼대는 노인에 돈 달라는 동생, 암 진단을 기다리는 장모 생각까지 머리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저 오늘 사표를 내려고요.”

어이없는 송 소방사의 말 한마디에 탁, 말문이 막혔다. 만약 내가 출동하지 않았다면, 아니 이송환자가 평범했다거나 동생이 전화만 하지 않았더라도.

“이봐, 송 소방사.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봐. 저녁에 소주나 한 잔 하면서 편하게 얘기하자고. 그리고 미안한데 내가 급한 출동 중이라서 전화 못 받거든. 출동 끝나면 바로, 바로 연락할게. 사표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둬. 꼭.”

내 말에 송 소방사는 짧고 침울한 외마디 답변을 했다. 딱 한강다리로 달려가 몸이라도 던질 목소리였다.

“아 죽겠네. 어떻게 좀 해보란 말이야.”

잠잠하던 노인이 소리를 꽥, 질렀다. 발로 침대를 차며 다시 육두문자를 뱉어냈다.

“그렇게 힘드시면 제가 오줌 줄을 꼽아 볼까요.”

말도 끝나기 전에 노인이 손을 저었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송 소방사 전화 길게 못해. 끊어.”

나도 아랫배가 싸했다. 잊고 있었던 것이 있다. 바로 오줌보. 노인과 여러 전화에 정신 팔려 소변에 신경 쓰지 못했을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당에서 마신 국과 물이 식도와 위를 지나 방광을 엄습할 시간이 됐다.




아내는 어떻게 됐을까. 장모의 진료 시간은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다. 아무리 진료가 늦어졌어도 지금쯤이면 결과를 들었을 것이다.

1번 버튼을 꾹 눌렀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 불쌍한 사람 같으니라고. 반찬을 넣어 썩썩 비벼먹던 무표정한 아내 얼굴이 떠오른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무슨 일일까. 아무리 바빠도 내 전화는 즉시 받았던 아내였다. 다시 한 번 1번 버튼을 눌렀지만, 아내의 전화기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설마 장모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니겠지.

아내는 유년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했다. 아내는 시집을 가면 인생이 좀 바뀔 줄 알았는데,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저질렀던 것인지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아내는 꼭 자기 같은 사람을 골랐다고 했다. 전생의 저주 때문이었을까. 사십이 넘었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없었다.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유산이 문제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자 안 그래도 심하던 시어머니의 구박은 정도를 넘어섰다.

“이번 태몽이 아들이었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해. 그 귀한 고추를.”

다섯 번째 유산을 한날, 어머니가 아내의 뒤통수에 대고 한 말이었다. 유산도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서 산후조리를 잘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내는 그날 바로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사람의 감정은 자기 자신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법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내에게 축복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을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장기 하나가 빠져나간 듯 허전하다고 했다. 악연의 밑바닥에도 정(情)이라는 감정 하나 강처럼 흐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내는 허전함을 고스란히 식탐으로 달랬다. 매운맛과 짠맛에 빠졌다. 아내는 꽉 마른 나뭇가지 같이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나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버드나무 뭉치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아내를 생각하던 나는, 습관적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동생이었다.

“형. 왜 전화 안 받는데. 나 급하다니까. 빨리 돈 좀 부쳐줘.”

동생은 지긋지긋한 돈 얘기가 신물도 나지 않는지, 앵무새처럼 재잘거린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 송 소방사는 아닐까 전화번호를 살폈지만, 전에 받았던 전화번호와 다르다. 동생 여자 친구 전화번호이리라. 모른척하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혹시 아내가 누군가의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상 아내로부터 전화가 올 때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혹시나 했던 기대도 사라져 버렸다.

“형, 왜 내 전화 끊어. 형이 어떻게 네게 그럴 수 있어. 돈은 그렇다 치자. 전화를 왜 끊는데. 형 잘 들어. 나, 이대로 형 집으로 쳐들어가서 형수한테 다 불어 버릴 거야. 형이 나한테 얼마나 돈 해 줬는지.”

절반쯤 듣다가 끊어버렸다. 더 들어볼 가치도 없다.




답답한 마음처럼 구급차는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옆의 차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올림픽대로에서 꿈지럭거렸다. 노인은 이제 말할 힘도 없어 보였다.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전부였다. 오한이 나는 듯 팔짱을 끼고 몸을 떨고 있었다.

“어르신 몸에 긴장을 푸세요. 긴장하면 더 소변이 마렵습니다.”

사실이었다. 긴장하면 방광이 수축해 소변이 더 마려워진다. 소변을 덜 마렵게 하려면 몸의 긴장을, 특히 하복부의 긴장을 풀어야 한다.

“나… 죽겠어. 오줌보가… 터질 것…….”

노인의 목소리는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의 그것이었다. 마지막 몇 마디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운전기사에게 갓길 쪽으로 차를 빼라고 했다. 갓길 비집고 들어가면 뭔가 방법이 생길 것 같다. 차가 움찔거리며 움직였다. 움찔거릴 때마다 노인의 입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고, 육두문자가 연이어 쏟아졌다. 확성기로 길을 열라고 소리쳤다. 길이 조금씩 열리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길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막혀버렸다. 승용차는 몰라도 덩치가 큰 버스를 피해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는지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 동생이 보낸 문자였다.

“형 나, 형 집으로 출발하고 있어. 마음의 준비 하는 것이 좋을 거야.”

어떻게 저런 녀석이 한 어머니 배에서 태어날 수 있을까.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소리라도 한번 크게 질러버리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다. 그때 누군가 다리를 툭툭 건드리는 것 같다. 노인이었다. 노인은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노인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자신도 죽을 것처럼 힘든데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는 노인을.

“어르신 고맙습니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감사 인사가 흘러나왔다.

“감사는 빌어먹을 무슨… 빨리 가기나 해. 이 씨.발.놈.아…….”

이건 무슨 얼어 죽을 시추에이션인가. 씨발 놈이라니. 눌러왔던 짜증이 울컥거리며 밀려 올라온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앞 입술을 꽉 깨물었다.




휴대폰 1번 버튼을 다시 눌렀다. 혹시 아내가 전화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의 휴대폰에선 녹음된 여자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장모가, 아니 아내는 어떻게 된 것일까. 휴대폰이 아니면 아내와 연락할 방도가 없다. 만약 동생이 도와 줄 수만 있다면. 노인도 궁할 때는 형제밖에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잘 버티고 있지만, 나도 결국 동생의 성화에 못 이겨 돈을 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생이 애를 낳는다고 해도, 키울 여력이 될까. 잘못하면 조카 하나를 떠 앉을 수도 있다. 동생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형 나 형 집에 도착했어. 초인종 누른다. 그러면 끝인 걸 알지.”

“씨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동생 목소리에 가다듬었던 마음이 움찔거리며 흔들렸다. 저런 놈에게 돈을 줘야 하는지, 돈 100만 원이 너무 아까워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100만 원보다 아내의 행방이 더 궁금하다.

“야, 지금……”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금 형수가 어떤 상황이며 어느 병원에 있는데 빨리 찾아가봐 달라고. 꼭 내게 연락해 주고. 동생의 목소리가 밝다. 자신도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대견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때 노인이 나의 다리를 툭툭 쳤다.

“아직… 멀었어. 나… 죽어.”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지금 이런 상황이면 언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아요.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씨발 놈이라는 말을 생각하면 좀 더 애를 먹이고 싶었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만 했다. 나는 앞자리로 옮겨가 경관 등을 들었다. 창을 열고 손짓을 해 가며 앞차에 비키라고 소리쳤다. 느리지만 차들이 움직였다. 작은 틈이 보였다. 구급차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도로는 여전히 막혔지만, 구급차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10km, 20km 속도도 조금씩 붙었다. 병원으로 빠져나가는 진입로가 보였다. 저 진입로만 지나면 올림픽 대로를 빠져나가 병원에 도착할 수 있다. 그 길 끝의 병원에 노인을 내려주기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임무도 끝이 난다.




올림픽 대로를 벗어난 구급차는 열심히 달린다. 몇 개의 교차로를 신호를 무시한 채 통과했다. 멀리 푸른색 십자가가 보인다. 구원의 신호였다. 빵빵 해진 오줌보처럼 꽉 막힌 도로를 뚫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신속히 노인을 구급차에서 내렸다. 얼굴이 창백했다. 요단강을 반쯤 넘어간 얼굴이었다.

“고마워…….”

뭐지.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것일까.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분명히 고맙다는 얘기를 한 것 같다. 그만한 정신도 없을 텐데.

생각할 틈도 없이 응급실 의사와 직원들이 뛰어나왔다. 어떻게 해서 응급실에 왔는지 물었다. 나는 전립선 비대증으로 한동안 소변을 보지 못한 환자라고 설명했다. 내 얘기를 들은 의사의 표정이 시큰둥했다.

인수인계서에 의사의 사인을 받은 나는 구급차로 되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잠깐 잊고 있던 것이 있다. 소변. 소변 생각을 하니, 방광이 급작스러운 수축 활동을 시작하는지 오줌보가 터질 것만 같다.

그렇게 급하던 소변이었지만 배출은 신통치 않았다. 40년 이상을 재사용한 수도꼭지였다. 해를 넘기며 더 헐거워졌는지 물줄기는 멈췄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소변을 다 본 후 송 소방사에게 전화했다. 휴대폰이 꺼져있었다. 이 자식, 정말 바보같이 사표를 낸 것은 아니겠지. 다시 버튼을 눌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번엔 동생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동생의 휴대폰도 꺼져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해 대던 놈이 전화를 받지 않으니 더 이상했다. 동생 휴대폰도 방전된 것일까. 돈 때문에 수도 없이 전화를 해 댔으니 방전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다. 만약 장모가, 아내가 잘못 되었다면……. 아닐 거야. 동생은 어떻게든 전화를 했을 것이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게 생각 없는 놈은 아닐 테니까. 이제 내 휴대폰 전원도 한 칸밖에 남지 않았다. 두세 통화만 더 해도 방전될 것만 같다.




노인의 안부가 궁금했다. 응급실 문을 삐죽 열고 쳐다봤다. 노인은 자신의 나이만큼 색이 바란 푸른색 병원 담요를 덮고 있었다. 담요 사이로 보이는 투명한 관에선 노란색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볼 수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편안해하는 노인의 얼굴을. 그 모습은 급한 볼일을 끝내던 거울속의 내 모습이었다.

“저 노인,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 문인수 시인의 시 '쉬'에서 빌려 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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