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은 언제 필까?
이런 빌어먹을. 6월인데 벌써 푹푹 찐다. 올해는 진달래도, 벚꽃도 제대로 펴 보지 못하고 졌다. 빌어먹을 더위 때문이다. 삶은 고단했지만, 활짝 핀 진달래꽃을 보며 위안을 삼았는데.
창을 활짝 열어도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 허긴 인심은 찬물에 말아 먹은 지 오래된 세상, 엘리베이터도 없는 꼭대기 빌라 셋방까지 넉넉히 불어줄 바람이 있을까. 시체처럼 숨죽이며 벽에 기대어 있지만, 정수리부터 흘러내린 땀 줄기가 뒷목을 지나 날갯죽지를 타고 흐른다.
꼬리뼈는 어쩔지 몰라도 날갯죽지에 붙어있어야 했던 날개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확실하다. 인간이 비행기를 발명한 것은 하늘을 향한 동경 때문이었겠지만, 그 갈망도 원래 머물렀던 고향으로 귀향하고자하는 마음은 아니었을 테니까. 내가 빌라 꼭대기 층에서 사는 이유도 하늘을 향한 동경 때문이 아니었다. 이십 대 초반 엄마 아빠의 불장난이 만든 나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 빌라 또한 회사에서 정해준 집이었다. 좀 덥긴 했지만, 그래도 눅눅한 지하실 방보다 괜찮은 편이라 생각했다. 지하실 방은 장마철엔 아무래도 불안하다.
사타구니에 손을 집어넣고 자는 놈은 K다. 저 놈도 이방에 머문 지 한 일 년쯤 됐을 것이다. 저 놈의 꿈은 다이아몬드 등급이 되는 것이다. 깨알만 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뺏지. 겨우 여섯 단계만 거치면 한 달에 수억 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이 직업의 매력은 쉬워 보인다는 것이다. 겨우 다섯 명만 모으면 브론즈 등급, 과장이 된다. 그리고 그 다섯 명이 다섯 명씩만 더 모아오면 바로 실버 등급이 된다. 명함에 적힌 직함은 차장이다. 그렇게 다섯 명이 다시 다섯 명만 더 모아오면 골드 등급, 부장이다. 그다음은 루비등급, 수석부장이라 불리며, 바로 그다음 등급이 우리의 꿈과 희망 다이아몬드, 이사다.
교육장에선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선 사소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오는 날 수십억씩 버는 CEO들도 과거엔 한 번씩 사업부도로 신용불량자도 되고 심지어 교도소를 다녀왔다 하지 않던가. 우리 회사 수석이사도 지금은 잘 나가는 사업가지만, 자신도 부도 이후 카드도 정지되고 쌀 팔 돈이 없어 삼일까지 굶은 적이 있다고 했다. 수석이사는 교육장에서 삼일을 굶은 사람의 심정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한 손에는 수억 원이 찍힌 통장을 들고서.
“제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던 것은 오직 성공이라는 한 단어뿐이었어요.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서 성공하자.”
다른 사람들은 이사의 말에 열중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말속에서 진달래꽃을 떠올렸다. 영화 남부군에서 수일을 굶은 안성기와 최진실이 진달래꽃을 얼마나 맛있게 따먹었던지, 배가 고플 때면 어김없이 진달래꽃이 떠오른다.
“여러분 우리사업이 사기라고 하는데, 속지 마십시오. 왜 우리 사업을 구박하는지 아십니까. 대기업이 낄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기업이 가져가는 유통마진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 돈이 다 어디로 갈까요. 우리는 그 돈을 다 우리가 다 나눠 갖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법이라 찍어버린 겁니다.”
그는 분개했다. 일본 제국주의 전승기념 축하연에 도시락 폭탄을 던졌던 독립투사처럼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리기까지 했다.
“여러분, 우리 동지들. 예수와 석가모니도 알고 보면 다 다단곕니다. 예수가 거둔 제자가 모두 몇 명입니까. 딱 열두 명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얼마나 커졌습니까. 어디 한번 손들어보세요. 교회 다니시는 분들. 이게 다단계의 힘입니다.”
또다시 박수가 터졌다. 그는 응원 단장처럼 두 손을 들어 박수를 잠재웠다.
“전 여러분들이 예수처럼 다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모두 다 성공할 수는 없겠죠. 우리 사업의 특성상 먼저 시작한 분들의 성공 확률이 더 높습니다. 여러분은 행운아입니다. 우리 사업 블루오션이에요. 여러분 아시죠. 블루 오션이라는 말. 얼마든지 개척 가능한 신세계라는 뜻입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다 여러분을 위해서 움직이는 돈입니다. 친척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누구든 다 좋습니다. 그 사람들, 다 우리 돈입니다. 밥입니다. 돈 버는 방법 참 쉽습니다.”
다단계는 다양한 말로 불린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도 하고 일대일(man to man) 마케팅, 다이렉트(direct)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다단계는 지구상 가장 완벽한 유통구조다. 제조업자와 중소도매업자 소비자에게 이르는 유통경로를 최소화하고, 소비자가 판매자가 되는 독특한 마켓구조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소비하면서 이익을 볼 수 있는. 그러나 이 이론은 말짱 개소리다. 다단계에 뛰어든 지 한 달 만에, 알아챘다.
세상에 완벽한 이론이 어디 있는가. 어쩌면 단순 수식으로 이루어진 수학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1+1은 2가 되니까. 하지만 1+1이 2가 되는 수식은 인간 세상에선 통하지 않는다. 1+1이 2가 되는 수식이라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1+1은 적어도 3이 되어야 관심을 둔다. 혹 이런 경우는 가능하다. 1+1의 답이 2가 아니고 1이 돼도 좋다. 누군가 1+1에서의 1을 가로채는 경우다. 답은 확실히 2가 아니라 1이 되겠지만 0.5를 투자한 내가 1을 중간에서 가로챌 가능성 때문에 참여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단순 수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이 투기적 숫자 놀음에 열광한다. 물론 나도 그 사람 중의 하나다.
“야. K 일어나.”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K는 미동이 없다. 죽어도 상관없는 놈이지만, 죽지는 않았다. 가슴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면.
“이 씨발 새끼야. 안 일어나.”
그를 걷어찼다.
“어떤 개새끼야.”
그가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떡이 진 우스꽝스러운 얼굴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방장님 웃지 마세요. 어제 얼마나 힘들었는데.”
지가 뭐한 것이 있다고. 사촌한테 전화해 오십만 원 뜯어낸 것이 전부였다. 호주머니 속에 그 돈이 있을 것이다.
“너 돈 있지. 다 알아 새끼야. 내가 위에다 니 얘기 잘해 줄 테니까 오늘 밥 좀 사라.”
K의 입이 실룩거리는 것을 보니 속으로 내 욕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참았다. 오늘은 저놈의 돈이 꼭 필요하다.
“내가 저번에 얘기한 것 알아봤어.”
“뭐 말씀하시는 거죠.”
K는 눈을 껌벅거렸다.
“이 개새끼가. 귓구멍을 물 말아 처먹었나.”
“괜찮은 기집애 있냐고 물었잖아.”
“그것은 방장님이 더 잘 알면서, 왜 나한테 그러세요.”
“방장 체면이 있지. 개 있잖아. 가서 A 좀 꼬셔봐.”
K는 난처한 모습이다.
“그년 남친 있데요. 그래서 말도 안 해 봤어요.”
“이 개새끼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숙소까지 흘러들어왔을 정도면 걔도 갈 때까지 다 간 거야. 돈에 눈이 뒤집혔을 거라고. 등급 올려주겠다고 하면 순순히 따라나올거야. 빨리 나가 봐.”
발로 K를 밀어내자, K는 마지못한 듯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일어섰다.
K는 순진해서 부려 먹기 좋다. 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그의 이름과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것이다. 나이는 분명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민증을 까보지 않았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다.
사실 사회생활에서 나이 같은 것이 뭐 중요하겠는가. 특히 우리 같은 회사에선 계급이 가장 중요하다. 계급이 바로 돈이고 연령이며, 권력이다. 나는 그 절대 기준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고 한다. 자본주의 시장의 룰을 이용해. 다시 말해 돈을 벌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잠시 후 K가 들어왔다. 얘기가 잘 된 것일까. 아니면 틀어진 것일까. K는 말이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년이 뺨을 때리잖아요.”
K는 뺨이 얼얼한 듯 어루만졌다.
“그년이 왜 니 뺨을 왜 때렸는데. 그년 가슴이라도 주물렀냐.”
“아니요. 아니요. 사실을, 오늘 말고……, 지난밤에.”
“잘한다. 미친놈. 왜 확 덮쳐버리지 그랬냐.”
“그년 남자 친구 있다고 그래서……, 그래서 그냥 가슴만.”
“미친놈. 그년은 니가 그년 가슴 만진 것 어떻게 알았냐. 소심한 니놈이 막, 이렇게 가슴을 주무르지는 않았을 거고.”
“아주 조심스럽게 만졌어요. 풍선 만지듯 조심스럽게. 솔직히 만진 것도 아니에요. 브라자 속으로 손도 못 너 봤으니까. 정확히 말해 전 그년 옷밖에 못 만졌어요. 그런데 그걸 누가 봤나 봐요.”
“알았다 알았어. 너한테 시킨 내가 개새끼지.”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우리가 사는 빌라는 24평형이다. 거실 한 개에 화장실 한 개 방이 두 개다. 방 하나를 남자들이 쓰고 또 하나의 방은 여자들이 쓴다. 방 하나에 여섯 명씩 총 열두 명이 이 집에 산다. 많을 때는 열다섯 명까지 살았다. 이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방장은 방마다 한 명씩 있다. 나 같은 방장의 등급은 브론즈, 직함은 과장이다. 여자방의 방장은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만 뒀다기보다 잠적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 년의 문제는 사채였다. 실적을 올리려 무리하게 사채를 쓴 것이다. 지방 어느 술집으로 팔려 갔을 수도 있다. 잠적한 그년 대신 내가 임시로 여자방과 남자 방의 방장을 동시에 맞고 있다.
“야 A. 나와 봐.”
내가 부르자 A가 거실로 나왔다.
A는 여자 방에서 가장 반반한 여자다. 나이는 이십 대 초중반. 제 말로는 대학을 중태 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고등학교 중태가 딱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얼굴이나 몸매는 꽤 괜찮다. 박사 학위는 아니어도, 석사감은 될 것이다.
“왜요, 방장님.”
“할 얘기가 있어서. 너 오늘 저녁에 시간 되냐. 저녁 사 줄려고.”
“저 혼자 만요. 혹시 C 언니랑 같이 가면 안 돼요.”
C는 여자 방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키도 덩치도 큰 년이다. 그년과 맞짱 뜨면 이길 자신이 없을 정도다.
“아니 C는 사양할게. 너 혼자만 나와.”
“싫어요. 안 갈래요. 방장님한테 신세 지고 싶지도 않고요.”
“너 이방, 방장 되고 싶지. 등급도 올려주고. 왜 관심 없어.”
A는 멈칫했다. 분명 관심 있어 하는 눈치다.
“방장이 끝이 아니지. 그런데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고.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하는, 그런 얘기를…….”
A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따 여섯 시에 빌라 밑에서 보자. 절대 C에게 얘기하면 안 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잠도 안 온다. 점심에는 꽃을 띄운 시원한 냉면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꽃 냉면도, 꽃 비빔밥도 유행한다고 하지 않던가. 꽃향기 가득한 시원한 냉면 한 그릇이면 속이 다 시원할 것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점심은 라면이다. 86년을 뜨겁게 달궜던 임춘애도 아닌데 나는 매일 라면을 먹는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는 좆같은 말을 어떤 놈이 했는지 아가리를 갈겨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핸드폰이 붕붕거린다. 집에서 온 전화다. 이걸 받아 말아. 집에선 내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믿는다. 난 대학생이다. 확실히 대학생이 맞다. 단지 휴학 중일 뿐이다. 삼년 째 계속. 첫해엔 공식적으로 휴학했다. 공무원 준비가 그 이유였다. 일 년 동안 고시원에서 살았다. 이 정도면 9급 공무원 정도는 쉽게 붙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 9급 공무원 커트라인 평균이 90점이 넘었다. 평균 90점이면 고등학교 성적으론 올 ‘수’며, 대학교 성적으론 올 ‘A’다.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점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몇 년을 공부해도 그 점수를 내기란 불가능했다. 집에선 바로 복학한 줄 알지만, 나는 휴학을 연장했다.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은 생각만큼 벌리지 않았다. 대학 휴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뻔하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정도. 과외도 있지만, 그것은 날개도 없이 날아다니는 SKY대학 학생들의 전유물이다. 이름도 없는 삼류 대학생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졸업해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졸업은 백수생활의 시작일 뿐이다. 부모님은 대학 졸업만 하면 내 앞길이 창창한 줄 알지만, 그것은 군사독재 시절이나 가능한 얘기였다. 별 볼 일 없는 대학의 학생들이 다단계로 내몰리는 까닭이다. 유일하게 취업 시켜주는 회사가 다단계 뿐이니까.
휴학 이후 내 수입은 한 달에 백만도 안됐다. 하지만 씀씀이는 더 늘어났다. 번 돈만으론 카드값도 부족했다. 등록금에 손을 댔다. 무능한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식당에서 손이 무르도록 접시 닦아 가면서 번 돈이었다. 뭐하느라 그 많은 돈을 썼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반값으로 팔아치운 애플 노트북이 등록금의 절반 정도 될 것이다. 일본도 한번 다녀왔다. 사업 구상을 위한 여행이었다. 도쿄 하라쥬쿠마치를 돌아다니며 최신 유행을 살폈다. 자판기를 제외하면 일본이나 한국이나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그때 얻은 교훈이다. 얻은 교훈에 비해선 비용이 너무 컸다.
페이스북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몇몇 IT 신문사에서는 페이스북이 멀지 않아 나스닥에 상장할 것이라고 했고, 상장만 하면 젊은 경영진들은 수조 원의 자산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이 뭔가. 전형적인 다단계가 아니던가. 이용자가 또 다른 이용자를 만들고, 이용자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더 큰 힘을 만들어가는. 페이스북을 보며 나는 다단계가 돈이 되리라 생각을 했다. 아니 정확한 내 생각은, 다단계를 이용해서라도 돈을 벌고 싶었다. 아버지의 반복된 사업 실패를 경험하며 자본주의의 평등은 결국 돈에서 나온다는 것을 진즉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다단계에 접근하게 된 것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십 년 만의 연락이었다. 그 친구와는 별로 친하지도 않아서,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도 의야 할 정도였다.
“학교는 잘 다니지.”
나는 엉겁결에 그렇다고 했다. 괜히 잘못 말해서 부모님에게 말이 들어가면 큰일이었다. 놈은 말을 계속 돌렸다. 어디까지 말을 돌릴지 궁금하던 차에, 회사 얘기를 꺼냈다. 소심한 놈이었다. 만약 놈이 나였다면 그렇게까지 말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회사 소개해줄게.”
놈이 말한 회사이름은 SM이라고 했다. SM이라면 삼성의 약자이거나 이수만이 만든 SM엔터테인먼트의 약자와 닮았다. 심지어 포르노 SM물의 SM과도 같다. 놈은 그 회사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직감했다. 그 회사가 다단계라는 것을. 나는 거절할 수 있었지만, 순순히 응했다.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다단계를 경험에 보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복권을 살 때와 같은 허황된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음편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