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진달래꽃 2

by 주영헌



“방장님 저 왔어요.”

A였다. A는 올이 풀린 것 같은 짧은 청치마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머리끈 하나로 질끈 묶고 모자도 썼다. 허술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야했다.

“저 자식은 왜 왔어요.”

A는 K를 보자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

“내가 불렀어. 저 녀석도 필요하거든.”

“됐어요. 저는 가 볼게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둘이 알아서 잘해 보세요.”

제멋대로인 성격을 봐선 A는 딱 B형이다. B형의 특징은 화가 나면 불같은 면이 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불같이 집착한다. A가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여자 방 방장 아니면 브론즈 등급으로의 승급. 물론 최종 목표는 돈일 것이다.

“여자 방 방장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 나한테 있는 것을 알아야지.”

빌라로 들어가던 A가 멈칫했다.

“가서 편하게 밥이나 먹자. 어때 너도 손해 보는 것 없잖아.”

되돌아섰지만 A의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그래도 순순히 따라나설 것 같다.

“뭐 먹고 싶니. 우리 어디로 갈까.”

“난 삼겹살.”

갑자기 K가 불쑥 끼어들었다.

“이런 개새끼가.”

말이 손에 앞서 나온 것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눈치를 보던 K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방장님 드시고 싶은 것으로 하세요.”

“아니. 내가 아니지. 레이디 퍼스트잖아. A가 먹고 싶은 것으로 골라.”

나의 반응에 A는 기분이 풀린 것 같다. K에게 면박을 준 것도 한몫을 한 것일 테다.

“방장님 그냥 소주에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요. 오랜만에 고기가 당기네요.”

마음 같아선 고깃집이 아니라 여관으로 끌고 가 A의 육(肉)을 먹어버리고 싶다. 어차피 이 바닥에서는 그렇고 그런 일이 흔하다. 피 끓는 젊은 남녀들이 한 집에 머무르고 있다. 혼음(混淫)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처음 숙소로 들어왔던 날, 옆방에 널려 있는 여자들을 보고 놀랐다.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은 단순했다. 곧 익숙해질 거야, 라고.




친구는 자신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결국, 실버 등급까지 올라갔다. 멀지 않아 골드등급까지 올라갈 거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갑자기 놈이 사라졌다.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쌍팔년도에 유행했던 휴거라도 일어난 것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확실한 것은 천국행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해온 그놈의 행태를 봐선.

회사 내에서 같이 잔,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놈은 잤다는 표현을, 따먹었다는 말로 바꿔 썼다. 분명 자기 혼자만 따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놈의 행위는 시식 정도일 것이다.

놈은 어떤 때는 시큼하다고나 덜 익었다고 했고,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무르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언젠가는 물린 자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물린 자국이 꽃 달린 채 떨어진 열매를 닮았다. 놈에게 여자들은 한입 먹고 버리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나쁜 자식이다. 그렇게 수많은 여자를 만나면서 나에게 분양한 번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개자식.”

개자식이라 욕하고 있지만 나는 놈의 전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생각해보면 여자를 이용한 방법이 제일 빠르다. 어찌 되었든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방장님 하실 말씀이 뭔가요.”

A는 계속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말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그냥, 뭐. 그런데 너, 뭐하는 거야.”

“남친에게 문자 보내고 있어요. 그 자식이 요즘 계속 치근대서 귀찮아 죽겠어요.”

“잤냐?”

A가 눈을 치켜떴다. 경멸에 가까운 눈초리다.

"미안, 미안.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 아니었다. 만약 A가 헤픈 여자라면 이야기가 쉽다. 몸 한번 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테니. A의 반응으로 봐선, 아직 감을 잡을 수 없다. 말을 꺼내야 할지, 말지. 아무래도 술이 건 하게 들어가야 얘기가 통할 것 같다. 내가 K를 데리고 나온 것은 K의 돈 때문이기도 하지만, A를 취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일대일의 상대보다 이대 일의 상대가 쉽다. A는 나와 K, 이렇게 두 명의 상대를 대적해야 한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 두 명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야 마시자고, 마셔.”

나는 연신 A의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A는 홀짝홀짝 잔을 비웠다.

생각보다 A가 술을 잘 마셨다. 테이블 위 빈 소주병이 벌써 세 병이다. 각 한 병씩을 비웠다. 취기가 올라오려고 한다.

“저 병신 같은 자식.”

K는 술에 취한 듯 자신의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있다. 아직 얘기도 꺼내지 못했는데. A는 내가 K를 말릴 틈을 주지 않는다.

“방장님 생각보다 꽤 괜찮은 남자 같아요. 나 확 남친 차버리고 방장님과 연예할까 보다.”

A가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다리를 꽜다. 팬티 색깔이 분홍색 같았다.

갑자기 멍해지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보통 소주가 세 병 이상 마실 때 발생하는 증상이었다. 겨우 한 병인데 왜. 비 내리는 풍경처럼 눈앞이 흐릿하다.

“괜찮으세요. 방장님.”

A의 말에 나는 그냥 웃었다. 시야가 점차 맑아졌다. 꺼 놓았던 볼륨을 올린 것처럼 떠들썩한 소리가 들린다. 머릿속에선 분홍색이 봄꽃처럼 선명하다.

“제 잔 받으세요. 방장님”

A가 술잔을 돌린다. 속이 거북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만둘 수 없다. 아직 할 말도 못 했는데. 내가 술잔을 비우자 K에게 술잔을 권한다.

“내가 그렇게 좋냐. K. 자고 싶어. 내 가슴이 좀 예쁘기는 하지.”

A의 말에 K는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K와 나, 모두 A에게 말리고 있다. A, 보통내기가 아니다.

나와 A가 얘기를 나누는 중간 계속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A는 간간이 말을 끊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지랄, A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턱이 없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A에게 어떤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가만……, A가 빌라에 들어온 것이 언제였더라.

술 때문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두 달 전. A는 실적도 변변치 못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년인지, 회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신용불량자였다. 더는 대출을 빼지도 못했다. 반반한 얼굴을 빼놓고는 내세울 것이 없다.

“고향이 어디야.”

“고향은 왜 물어봐요.”

A는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분홍색 팬티가 확실했다.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는 분홍색. 보문산에 피어있던 진달래가 생각났다.




사실 내 계획은 이랬다. A를 꼬셔 회사 이사에게 상납하는 것이다. 브론즈에 머물고 있는 내 등급을 실버와 골드로 올리기 위한 수단이다. 이사가 여자를 밝힌다는 얘기를 믿을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 이사는 브론즈 등급 이상의 여자 회원들과 한번 이상씩 잤다는 소문도 있다. 그것도 이십 대 초반 영계들만 가려서.

너무 아까웠다. A를 늙다리 먹잇감으로 던져 주는 것이.

“고향이 멀어요. 아주.”

“방장님은 어딘데요. 고향이.”

내가 대답할 차례가 아니었지만, 순순히 대답했다.

“나. 대전.”

“대전 사람이었어요. 나 대전 잘 알아요. 엑스포 했죠. 93년에 대전에서. 제가 다섯 살 때였어요. 남들은 지랄같이 다 즐기고 웃고 떠들 때, 우리 아버지 어땠는지 아세요. 아스팔트에 개새끼처럼 쫙 깔렸데요. 입에선 피를 질질 흘리며. 엑스포 보고 집에 오다가 무단 횡단 했데요.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제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이유가 다, 그 엑스포 때문이에요.”

“미안.”

사실 내가 미안할 이유가 없다. 굳이 미안할 만한 이유를 찾는다면 내가 대전 출신이라는 것뿐이다. 더군다나 나는 대전에 살았을 때 엑스포장을 가 본 적이 없었다. 엑스포를 할 땐 너무 어렸고, 커서는 꿈돌이 동산이라고 불리는 엑스포 시설물이 흥미를 끌지 못했다. 서울에 살면서 경복궁, 서울 랜드, 남산을 다 가본 사람이 얼마나 되지 않는 것처럼.

“좆 까지마. 씨발 년아. 너 소설 쓰냐.”

잠잠히 있으면 좋았을 것을. K의 입방정이 신경 쓰인다. 생각이 필요치 않았다. 손이 앞서 나갔다.

“왜 그래요 방장님. 아프게. 이년 다 소설 쓰고 있는 거라니까요.”

“개새끼야 조용히 안 해. 숙녀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이년이 숙녀라고요. 이년이 숙녀면 숙녀 다 죽었게요.”

생각해보니 K에게 욕까지 할 이유가 없다. 사실 A가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설마, 부모 얘기를 가지고.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K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긴 싫었다. 한 줌도 안 되는 자존심 때문이다.

“고만해. 술이나 마시자.”

“풋. 방장님 지금 사투리 쓰신 거에요. 고만해가 뭐에요. 그만해라고 해야죠.”

“야. 고만해가 사투리였냐. 충청도 사투리, 맞아?”

“사투리 맞을 걸요. 방장님.”

말을 하며 A가 다리를 고쳐 앉았다. 팬티는 아까보다 더 진한 분홍색을 띠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눈길이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A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흘끔거리며 자신의 팬티를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너. 고향이 어디야.”

내가 다시 한 번 고향에 대해서 물었을 때, A는 자세를 고쳐 앉고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고향이 뭐 중요해요. 내가 사는 곳이 고향이지. 그런데요, 방장님. 방장님 참 좋은 사람 같아요.”

K가 눈짓을 했다. 어서 계획했던 말을 하라는 말일 테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K가 다시 눈짓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방장님. 이제 얘기하셔야죠.”

K가 대 놓고 얘기를 꺼냈다. A는 우리 눈치를 살피다 문자가 도착했는지,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잠깐만, 나가서 얘기하자.”

나는 K를 떠밀고 문밖으로 나갔다. A가 보이지 않게 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K. 계획을 바꾼다. 솔직히 말하면, 이사에게 A를 넘겨주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K는 놀라는 표정이다.

“방장님 이렇게 태도를 바꾸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냥. 계획한 대로 하시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틈으로 A가 보였다. A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저년 남친 있잖아요. 남친은 어떻게 하고요. 그리고 걔 신용불량자에요.”

생각해보니 K의 말도 맞다. 내가 A를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A가 거절하면 끝이다. A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얼마나 깊은 관계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 헛지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너무 아쉽다. A가 날 보고 좋은 사람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걔나 나, 처지도 비슷하잖아. 그리고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 가냐.”

“방장님.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세요. 10만 원 어치나 술을 먹었는데.”

역시 K 답다. 나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술값 10만 원 때문에 반대한 것이다. 머리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내 수중에 당장 10만 원이 없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나중에 살게. 그러면 되지. 좀 봐줘라, 내 사정 좀.”

K는 마지못해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K도 뒤를 따랐다.

“야, 식당 밖에 너무 더운데.”

A는 얘기를 끝냈는지, 휴대폰 메시지 창을 닫았다.

“방장님. 밖에 많이 더워요.”

“그래. 바깥바람 쐬었더니, 술이 확 오른다.”

“방장님 우리 나갈까요. 어디 시원한데 가서 술 한 잔 더 해요. 어때요 저 앞의 모텔.”

무슨 의미 일까 지금 A가 하는 얘기는. 짐작할 수 없다.

“어 저기……, 모텔 말하는 거 맞지.”

A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저, 방장님 무슨 상상하는지 다 알아요. 그렇고 그런 거 맞죠. 뭐 제가 좀 예쁘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씁쓸했다. 모텔이 상징하는 의미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까닭이다.

“야 K. 마트 가서 맥주하고 소주하고 사와. 우리 편하게 마셔보자.”

A는 K에게 부려 먹듯 얘기했다. 아무래도 K는 A에게 잡힌 약점 때문일 것이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모텔로 들어서자, 프런트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그 눈이 증명하고 있는 것은 세상에 변태들이 많다는 것일 테다. 돈이 부족한 두 남자의 혼음(混淫)을 예상한 것일까. 사실 오늘날 혼음이나 스와핑은 오래전 없어진 교련 과목처럼 이탈의 낡은 교과목일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K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치가 있는 인간이라면 이쯤에서 퇴장해 주는 것이 옳다. 끝까지 K와 같이 있으면, A를 내 의도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K는 방까지 따라 올라왔다. 태연하게 방바닥에 앉았다.

K가 리모컨을 들고 채널을 돌렸다. TV 채널 숫자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TV 속에서 K가 찾는 숫자는 비교적 높은, 8이나 12, 15가 아닌 18 이상의 숫자일 것이다. 이를테면 묘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자리를 파하게 할 수 있는 숫자.

K의 의도는 무엇일까. 못 먹을 감 찔러나 보자는 것인가. 자기 돈이 아까워 맥주 한 모금까지 다 마시고 가겠다는 것인가. 내가 계속 K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찼지만, K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화장실에 다녀온 A의 옷이 바꿔 있었다. 침대 위에 있던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것 같다. 가운 사이로 선명한 분홍색 팬티가 눈에 보였다. 내 머릿속엔 뭐지 라는 물음표가 번쩍거렸다. 이거 너무 쉬운 것 아니야, 라는 생각.

K의 시선은 A의 가슴을 향했다. K는 항상 그랬다. 짧은 치마나 늘씬한 몸매보다 여자의 가슴에 집착했다. 너무 풍만한 가슴도 작은 가슴도 싫어했다. 적당한 B컵 정도의 가슴을 선호했다. K가 가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성에 대한 갈망. 웃기지만 그럴 수도 있다.

A는 머리도 감았는지 수건으로 머리를 털었다. 꼭 흰 블라우스입고 비 맞은 여자를 보는 것 같은 뇌쇄적인 분위기. K가 찾아낸 방송에선 두 남녀가 뒤엉켜 헛심을 쓰고 있다.

“자 방장님. 한 잔씩 해요.”

먼저 말을 꺼낸 쪽은 A였다.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A는 개념 치 않았다. TV 속 장면을 안주 먹듯 흘끔흘끔 쳐다봤다.

뭐지, 뭐지. 너무 이상했다. 너무 쉬웠다.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주판알을 튀겼지만,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K가 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나 돌발적인 A의 행동.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모텔방의 분위기까지.

“소주와 맥주를 적당히 말아 먹어야 맛있어요. 제가 맛있게 말아 볼게요.”

A가 분위기를 이끌었다. K는 발정 난 강아지처럼 헐떡거렸다. A가 손끝으로 살짝만 찔러도 바로 사정할 것 같았다.

섞어 마신 술에 더 취했다. A는 나와 K가 취하는 것을 보고 즐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한계 주량을 넘어선 것 같다. A가 주는 술을 넙죽넙죽 다 받아 마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K의 행동이 심상치 않다. 심하게 취한 것 같다. K가 갑자기 A를 끌어안았다. K가 안으려 했던 것은 A가 아니라 분명 A의 가슴일 것이다. 나는 K를 끌어 당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K의 무게 때문에 A와 K는 바닥으로 넘어졌다. 흰 가운이 벌어졌고, 그 사이로 힐끔거렸던 분홍색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진달래꽃처럼 환한 분홍색 팬티.

나는 A에게로 기어갔다. 그 꽃을 따고 싶었다. 어릴 적 보문산 가득 피어있던 진달래 향기를 한 아름 안고 싶었다. 하지만 스륵 눈이 감기고…….

꿈속에선 진달래꽃은 펴 보지도 못하고, 앙상한 겨울나무처럼 눈꽃만 가득했다.




얼마나 잤을까. 아니다. 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잃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A가 울고 있다. A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고 있다. A의 옆엔 험상궂게 생긴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뭐지, 뭐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다. 나는 발가벗겨져 있었다. 성기는 나처럼 축 쳐져 있다. K는 발가벗은 채로 코를 골고 있다. 뭐지, 뭐지. 머릿속이 혼란했다. 혹시 K가 A를 겁탈하고, A가 남자친구를 부른 것일까. 뭐지, 뭐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귀신이라도 홀린 것일까. 혹시 꿈속의 꿈. 모르겠다.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하려고 했지만, 술에 푹 빠진 뇌는 제 기능을 못한다. A는 계속 훌쩍거렸고, K는 코를 골고 있다. A 옆에 선 두 남자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뭐지, 뭐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은 오직 이 ‘뭐지’ 라는 말뿐이다.

뭐지, 뭐지. 익숙하지 않은 이 상황은.

지난밤 활짝 폈던 진달래꽃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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