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꼬치구이집만 환할까?
11시 30분. 전화벨도 초인종도 말이 없다. 오늘도 동팔 엄마와 작정을 하고 술을 마시는 모양이다. 동팔이가 까닭도 없이 미웠다. 속에서 열이 끓어올랐다. 그것은 분노였다. 자신의 아내를, 저녁을, 편안한 잠을 뺏어 간 동팔에 대한 분노. 동팔이 뭐 하는 자식인지 꼭 그 낯짝을 보고 싶었다. 아니 마음을 먹었으니 지금 당장 보고 싶었다. 올바르게 살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동팔에게 할 얘기들이 강박증처럼 머릿속을 둥둥 떠돌았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현관으로 갔다. 빌어먹을 현관 등이 켜지지 않았다. 어두웠다. 신발장을 열자 어둠보다 더 지독한 어둠이 튀어나왔다. 그는 두려움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어둠이 지려놓은 냄새가 지독했다. 신발장속에 쯔란을 넣어 놓으면 어떨까. 향신료가 어둠과 신발, 구두를 꼬치로 꿰어 맛있게 구울 것 같았다. 먹음직스러운 신발장이 될 것 같았다. 혓바닥이 윗입술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신발은 신발장의 윗부분에 있다. 신발장은 정확히 가운데를 기준으로 나뉘었다. 땅 따먹기 하는 것처럼 아래를 키가 작은 경옥이 쓰고 위를 그가 썼다. 신발장의 위쪽을 뒤적거렸다.
신발이 없다. 신발장에 남아있는 것은 구두 한 켤레 뿐이다. 그 많던 신발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경옥은 고린내를 역겨워했다. 아내는 그 냄새가 신발의 것이 아니라 사람의 찌꺼기라고 했다. 마치 발바닥이 벗겨놓은 때 같은. 아내는 시간이 나는 대로 신발장 안의 신발을 죄다 빨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꼴로.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신발장의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발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그는 구두를 주섬주섬 신었다. 그는 맨발에 하의는 색이 바래고 엉덩이가 축 처친 낡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구두와 운동복이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뭐 어때.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현관을 열었다. 복도 등이 들어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관리실 놈들.”
그의 혓바닥이 사정없이 욕을 뱉어냈다. 입안은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불만 때문에 텁텁했다.
“전구 관리도 못하는, 빌어먹을……. 이십 만원씩이나 받아가면서”
그는 툴툴거리며 위층으로 향했다.
그는 10층 위로 올라간 적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눌러본 적도 없었다. 10층과 11층은 비록 한층 차이고, 불과 몇 미터 높이 차이임에 불과하겠지만 지독한 고소공포증이 있던 그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높이였다. 사실 마지못해 결정한 10층도 그가 적응하는데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벽을 잡고 11층으로 올라갔다. 11층 복도 불도 켜지지 않았다. 혹시 정전일까 생각했다. 정전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18층에서 출발한 엘리베이터가 막 11층을 통과했다.
“이런 빌어먹을 아파트 같으니라고.”
채 쏟아내지 못한 불만이었다. 주저 없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동팔 집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초인종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혹시 동팔 아빠가 있을 수도 있다. 만약 동팔 아빠가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운동복에 맨발로 구두를 신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만약 동팔 아빠가 잘생긴 얼굴에 근육질 몸매의 남자라면. 그 잘생긴 동팔 아빠가 자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쓴웃음을 짓는다면, 그 모멸감을 어떻게 견디어 낼 것인가. 그 얘기가 거꾸로 흘러들어 경옥이 듣는다면, 아내의 화만 부채질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두 번을 망설이다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이젠 왜 그가 이 집 앞에 서 있었는지도 잊었다. 그의 머릿속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동팔에 아니라 동팔 아빠에 대한 열등감뿐이었다.
문뜩 궁금했다. 경옥에게 들었던 것은 빌어먹을 동팔에 대한 얘기뿐, 동팔 아빠에 관한 얘기는 없었다. 동팔은 아빠가 없을 수도 있다. 요즘 이혼이, 한 부모 자녀가 대수인가. 방음이 안 된다고 입주민들의 불만이 자자한 아파트였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위층에서 부부관계를 하는 소리나 남녀가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남자가 소변보는 소리도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동팔 엄마는 이혼녀가 맞았다. 그 얘긴 그가 초인종을 눌러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꾸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눌렀다.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두 발자국 발을 물려 현관을 쳐다봤다. 자신의 집 위층이 맞았다. 경옥이 분명히 이 집이라고 했다. 그러면 이 집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동팔 엄마는 돌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동팔은. 혹시도 있을 수 있는 근육질 동팔 아버지는.
되돌아온 집은 죽음이 가득 찬 것처럼 캄캄했다. 환한 곳은 오직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중국식 꼬치 집뿐이었다. 마치 세상은 꼬치 집을 제외하고 모든 불이 꺼진 것 같았다. 꼬치 집이 중간계라면 나머지는 마치 연옥이 된 것처럼.
하루라는 경계를 넘어선 것은 시간뿐이었다. 경옥은 아직 되돌아오지 않았다. 길거리도 한산했다. 아니, 한산한 정도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끊겼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인적은 끊어졌지만 꼬치 집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들어가는 손님도, 나가는 손님도 없었다. 창밖으로 일렁이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한 손님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꽉 닫친 알루미늄 새시가 악다문 악어의 이빨 같아 보였다.
배가 고팠다. 지난 저녁부터, 아니 하루 전, 도대체 언제부터 밥을 먹지 않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꼬치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시원한 칭다오 맥주 한잔에 쯔란을 가득 뿌린 양 꼬치 한입 빼어 먹고 싶었다. 상상만으로도 쯔란 향이 입속에 가득했다.
구두를 다시 신었다. 양말을 신지 않은 모습이 우습게 보일 것 같아, 광주리에서 하얀색 양말을 꺼내 신었다. 현관 등도 켜지지 않았고, 복도 등도 켜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아래층과 위층을 반복 운행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18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왔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길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는 15층에서 한번 멈췄다. 그리고 13층에서 한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11층. 내가 버튼을 눌러 작동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는 것은 누군가 분명 탔다는 얘기였다. 세 번 멈췄으니 세명 이상은 타고 있어야 했다. 잠시 후 그의 눈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환한 빛에 눈을 감았다. 실눈을 뜬 그의 시야엔 세 짝 이상의 신발이 보여야만 했다. 하지만 하의가 실종된 유령처럼 엘리베이터 바닥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일까. 15층에서 탄 사람이 13층에서 내리고, 13층에서 탄 사람이 11층에서 내렸다면 10층에서 내릴 사람들이 없을 수 있다. 혹시 11층에서 내린 사람이 동팔이라면. 동팔이 친구 집에서 자신의 집으로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보내고 11층으로 올라갔다. 동팔의 잘난 낯짝을 보고 싶었다.
11층 복도 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전 반짝거리는 빛이 보였지만 그 불빛은 엘리베이터가 내 뿜은 불빛일 거라 생각했다. 이제 빛보다 어둠이 편했다. 그의 집도, 10층 복도도 11층 복도도 어두웠지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진 탓이었는지 환했다. 불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거리는 초인종 소리가 크게 울렸다. 마치 온 아파트에 울려 퍼지듯. 이 정도의 소리라면 집 밖의 동팔 엄마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현관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현관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현관이 시멘트벽처럼 느껴졌다. 마치 문이 아닌 한쪽 복도 벽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음을 소거한 무성영화처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 집에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동팔 엄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동팔 아빠나 동팔과 마찬가지로 동팔 엄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동팔 엄마의 모습은 경옥이 해 준 말로 그린 몽타주에 불과했다. 그는 그들이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말 속에 떠도는 사람들이 전부 살아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경옥은 자신의 친정부모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아내가 기억하는 친정부모의 모습은 빛바랜 사진과 친정오빠에게서 들은 얘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경옥은 그에게 생시처럼 친정부모에 관해서 얘기했다. 정말이냐고 다시 물었을 때 아내는 확신에 차 있었다. 경옥의 친정 부모처럼, 어쩌면 그들도 경옥의 말 속에서만 살아있는 사람일 수 있겠다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18층에 올라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16층과 14층, 13층에 한 번씩 섰다. 역시 그가 버튼을 눌러 움직인 엘리베이터이니 세 명 이상이 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네모난 상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며 아래위로 긴 모양이, 꼭 지상과 저승을 오가는 빈 관 같았다.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궁금했다. 14층과 13층으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자신은 몇 층으로 사라지는 것일까.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자신은 이번에 8층에서나 6층에서 아니면 4층에서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불안함에 한층 한 층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0층 복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9층 복도도, 8층도, 7층도. 모든 복도 등이 나가버린 것일까. 모든 빛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혹시 엘리베이터 불빛이…….
엘리베이터 불빛이 평소보다 밝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제와 다름없는 아파트였다. 모두 관리실 때문일 것이다. 다시금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불성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불이 꺼진 계단과 복도가 환하게 보였다. 간간이 들어오는 달빛이 꼭 플래시 불빛 같았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그는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몸이 불편한 영혼을 운반하듯 아래위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6층에 도착했을 때 1층에 멈춰 섰던 엘리베이터가 위로 움직였다. 이번에도 18층으로 올라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10층에 먼저 멈춰 섰다. 경옥일 것이다. 10층에 선 엘리베이터가 이번엔 11층에 멈춰 섰다. 그는 꼬치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경옥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오늘은 동팔이 엄마가 경옥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궁금했다.
7층, 8층, 9층으로 올라갔다. 복도 등은 켜지지 않았다. 복도 창으로 밖을 내다봤다. 앞 동도 모두 불이 꺼져 있다. 분명 전기가 나간 것이리라. 정전은 가끔 있던 일이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지어진지 20여 년이나 됐다. 삐거덕거리는 그의 몸처럼 변전실 전압기의 고장이 잦았다.
현관문을 열었다. 경옥을 불렀다. 안방에서도, 건넛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경옥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베란다에 있는 것일까. 베란다를 꼼꼼히 살펴봐도 경옥은 없었다.
창밖은 어두웠다. 단 한 집만을 제외하곤 일대의 전기가 모두 나간 것 같았다. 대신 하늘의 별이 찬란했다. 윤동주의 시 한 구절 읊고 싶은 낭만적인 밤이었다. 정전도 가끔씩은 괜찮을 것 같다 생각했다.
그의 눈에 환한 불을 켜고 있는 꼬치 집이 들어왔다. 근방이 모두 정전되었다면, 어찌된 영문일까? 꼬치 집은 어쩌면 발전기를 켜고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최신식 무소음 발전기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다.
엘리베이터도 이상했다. 오래된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만 움직이는 비상 전력 장치가 되어 있을 리 없었다.
엘리베이터도 꼬치집도 그렇다 치고, 그는 경옥의 행방이 가장 궁금했다. 경옥이 아니라면 10층에서 내린 사람은 누구인가. 어쩌면 맞은 편 집 사람일 수도 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옆집 남자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진 이후, 그 집사람들은 집을 등진 사람들처럼 어디론가 뿔뿔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이 일 년 전 일이었다. 그렇다면 11층은.
현관 등은 여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10층과 11층을 이어주는 복도 또한 빛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캄캄했다. 그는 동팔집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벨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 소린 자신의 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집 안쪽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러다 아예 발로 찼다. 다섯 번째 페널티킥 선수의 발동작처럼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문이 소리를 먹어 치운 것처럼 어떤 소리도,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탈진한 선수처럼 문을 잡고 헉헉거렸다. 현관문은 벽화 속에 그려진 그림 같았다.
켜지지 않은 11층의 등과 10층 복도 등을 지나 그의 집 거실로 돌아왔다. 온 세상이 어두웠다. 꺼져있는 등들 가운데 오직 꼬치 집 등만 환한 불을 켜고 있었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엘리베이터에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경옥과 동팔 엄마, 그리고 동팔과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동팔 아빠의 행적이 궁금했다. 어쩌면 저 꼬치 집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양 꼬치에 쯔란을 뿌려 먹으며. 닭대가리를 껌처럼 씹어 먹으며, 시시덕거리고 있을 수 있다고.
시계의 두 바늘은 1이라는 숫자를 가르치고 있다. 경옥에게 전화를 할 요량으로 수화기를 들었지만, 전화가 먹통이 된 듯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귓속에서 ‘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기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이명을 앓듯 그의 귀로 옮겨간 듯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빼면 10층도 11층도 조용했다.
경옥도, 동팔 엄마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시를 가르치던 시계도 힘겨운 듯 두 시로 넘어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시계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던 세상도 다 닳고 닳아, 멈춰버린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