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꼬치구이집만 환할까?
거실은 죽음이 밀려 들은 것처럼 어둑했다. TV만이 주변을 삼킬 듯 강한 빛을 내 뿜고 있다.
그의 평온을 어지럽히는 것은 낄낄거리는 경옥의 웃음소리였다. 어떻게 아무런 고민 없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얼굴이 갱년기 여성처럼 화끈거렸다. 스트라이커처럼 경옥의 머리통을 차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빗맞은 축구공처럼 튀어 올랐다. 뒤통수를 쏘아 보았지만, 경옥은 아무런 살기도 느끼지 못한 듯, TV 소리에 맞춰 연신 괴기한 웃음소리를 지르고 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보름 전 부장은 시뻘건 입을 벌리고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통지를 해왔다. 부장의 별명은 맘몬이었다. 맘몬은 탐욕스러운 악마의 대명사다. 맘몬의 매일아침 한명씩 자신의 사무실로 직원을 불려 들렸다. 안에선 매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사무실 밖을 빠져나온 직원은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것처럼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부장은 날이 갈수록 통통하게 살이 올랐고 직원들은 말라갔다.
그는 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근근이 버틴다면 몇 년은 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주변의 눈총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퇴사를 종용하던 일이 그가 하던 주된 업무였다. 맘몬으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던 날 경옥과의 대화가 끊겼다.
몇 년 전 일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찌개가 맛이 없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뿐이었다. 입에 귓구멍을 대고 들어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경옥의 반응은 단호했다. 아내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던 숟가락과 젓가락이 식탁을 강타했다. 강타한 지점으로부터 시작된 흰 금은 마른하늘에 친 번개처럼 반대쪽까지 길게 이어졌다.
한 달 동안 둘은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자신들의 말을 전달해 줄 자식들도 없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말은 냉장고에 붙인 쪽지로 대신했다.
“저 죽일 놈이.”
그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꼭 그를 향한 말 같았기 때문이다.
“거 쫌, 소리 좀 지르지마. 깜짝 놀랐잖아.”
울컥한 그가 경옥에게 지른 소리였지만 목소리가 반밖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꼭 투정과 같은 말투였다.
그의 말에 경옥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힘없이 축 처진 배였다. 배 밑에 깔린 성기는 수명을 다한 듯 몇 달 채 서지 않았다. 비아그라나 씨알레스를 모두 먹어봐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짝퉁이라서 그래요. 병원서 처방전 받고 약국에서 사 먹는 건 효과가 확실합니다.”
회사의 후배인 이 대리가 그를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비록 짝퉁일지 몰라도 동료 중 한 명은 그 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고 했다. 누구는 효과를 봤는데 누구는 아니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가 약이 잘 안 받는 특이체질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한숨만 나왔다. 요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의 절반이 한숨이었다.
경옥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분명 드라마가 끝난 것일 테다. 본방송도 아닌 재방송을 저렇게 재미있게 볼 수 있다니, 경옥의 의지력은 대단하다.
“나도 마음 붙일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데.”
드라마는 도통 재미가 없었다. 창과 칼이 번쩍거리며 피가 튀는 사극을 빼고는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그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뉴스와 몇 개의 스포츠 채널뿐이었다. 그것도 경옥이 TV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하에서.
드라마가 끝난 후 몇 개의 광고를 멍청히 쳐다보던 경옥은 리모컨 채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나 화면은 바뀌지 않고 볼륨만 올라갔다. 시끄러운 소음이 스피커에서 쏟아졌다.
“리모컨이 왜 그래.”
어두워서 버튼이 잘 안보였던 것일까. 경옥은 리모컨을 거꾸로 들고 있다. 그녀는 뭉툭한 엄지손톱으로 모기물린 상처에 달 모양 무늬를 만들듯 리모컨 이곳저곳을 사정없이 눌렀다. 거꾸로 든 리모컨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 성질 급한 아내는 아예 TV 전원을 뽑아 버렸다.
경옥은 그제야 리모컨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그에게 리모컨을 곱게 넘겨 준 것은 아니었다. 경옥의 손을 떠나 공중에서 잠시 머무른 시간과 공간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보면, 건네주었다기보다 던졌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어쩌면 리모컨을 던져놓은 자리에 그가 있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경옥은 현관 신장을 열고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한 달 전 최신 모델이라며 사온 운동화였다. 천연고무재질에 새로운 기능이 첨가 되었다고 사온 날부터 떠들썩했다. 그는 그 운동화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었다. 운동화를 사온 그날 밤 경옥이 잠든 틈을 타 몰래 운동화를 신어봤다. 경옥의 흥분상태로 봐선 운동화만 신으면 치타만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발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심지어 찌릿찌릿한 느낌도 없었다. 운동화는 분명 보통 운동화였다. 트랜스포머의 변신장비나 심지어 전기장치 하나 없는, 시장에서 흔히 살 수 있는 운동화. 그는 운동화의 매끈한 허리라인을 보며 머릿속에 치타의 모습을 떠올렸다. 날렵한 몸을 가진 치타가 아닌, 경옥처럼 다리와 배에 군살이 잔뜩 붙은 뚱뚱한 치타가 얼마나 빨리 뛸 수 있을지 궁금했다. 치타의 날렵한 얼굴을 생각하니 나잇살 때문에 얼굴 살만 빠진 경옥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름 가득한 경옥의 얼굴이.
“여보 어디가. 밥 때 다 됐는데.”
그의 소리에도 경옥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현관문이 닫치고 잠시 후 현관 센서 등이 꺼졌다. 전기가 나간 것처럼 거실이, 집안 전체가 어두웠다. TV가 꺼진 거실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그는 기껏 들었던 리모컨을 던져 버렸다.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은 TV 뿐만이 아니었다. 좋아하던 낚시도 바둑도 시들해졌다. 생각해보면 성기가 힘을 쓰지 못한 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남자의 힘이 떨어지니 한참 때 좋아하던 모든 것이 싫어진 것이다.
아내처럼 외출할까,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센서가 다 되었는지 등이 켜지지 않았다. 신발을 신으려다 포기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의 동선은 집과 회사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랫동안 정리해고를 담당한 업무 탓에 동기들도 등을 돌렸다. 마음 편하게 소주한잔 기울일 사람이 없었다.
그의 눈은 자연스럽게 창 밖 길가에 있는 꼬치 집을 향했다. 가게 문을 연지 보름도 안 된 중국식 꼬치 집이었다. 그 가게는 오후 5시쯤 열었다가 새벽 3시에 문을 닫았다. 퇴근 후 가게 앞을 지날 시간은 사람들로 붐빌 9시쯤이었고, 잘 구워진 노릿한 고기꼬치 냄새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못이기는 척 엉덩이를 붙여보려고 창안을 꼼꼼히 살펴보곤 했다. 하지만 한 번도 아는 얼굴을 만나지 못했다. 그가 알 만한 사람이 근처에 살고 있을 턱이 없다.
혼자라도 먹어보려 시도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며칠 전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일행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종업원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10여 분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시끄럽게 흥청대고, 맥주를 마시고, 꼬치를 한 입 가득 떼어 물었지만, 그는 얌전히 앉아 있었다. 종업원도 손님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종업원은 꼬치도, 메뉴판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종업원이 그에게 건넨 것은 어서 돌아가라는 몇 번의 불편한 눈길뿐이었다. 어쩌면 그것도 그의 착각일 수 있었다. 가게에 들어온 지 20분쯤 되었을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업에 방해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기가 지글지글 타올랐다. 고기가 익으면서 풍기는 풍미가 식욕을 자극했다. 침 한두 방울이 입속에 모이기 시작했다. 꼬치를 뒤집었다. 잠시 전까지 핏빛으로 벌겋던 살이 노랗게 지글거렸다. 숯불 위로 연신 기름이 떨어졌다. 안개처럼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쩌면 저 연기는 한때 소들이 뛰어놀았던 풀밭에서 빨아들였던 안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허파 속으로 빨아들였던 안개가 불에 데여 녹아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침이 입속에 흥건했다. 마치 홍수라도 난 것처럼. 침을 한입 삼켰다. 꿀꺽거리는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배가 더부룩했다. 답답했다. 위스키 한 잔을 마신 것처럼 몸이 뜨거워졌다. 주변이 지옥 불처럼 새빨갛게 타올랐다. 마치 자신이 죽어 지옥 불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의 몸이 빨갛게 달궈진 쇠막대기에 꿰어 있었다. 쇠막대기는 두 손과 발을 꽤 뚫고 있었다. 지독한 통증으로 몸을 떨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꼬치구이가 떠올랐다.
“모든 것이 그 꼬치 때문이야. 꼬치를 구워 먹다 지옥 불에 떨어진 것이야. 죄 없는 생명을 잔인하게 창 같은 꼬치로 꿰어 먹은……, 그 죄로.”
그는 꼬치를 먹은 것을 후회했다. 아니다. 자신이 꼬치를 먹은 적이 있었던가? 한두 번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억울했다. 지옥에 떨어진 이유가 꼬치 때문이라면 분명 신의 실수일 것이다. 그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신은 마치 양처럼 머리엔 큰 뿔을 가지고 있었으며 양을 닮은 눈과 코에는 코를 꿰뚫고 있는……, 그것은 신이 아니라 분명 양이었다. 양처럼 메~ 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아니면 꿈. 저승사자처럼 검은 망토를 쓴 사내가 공간이동을 한 것처럼, 잠시 다른 세계를 다녀온 것인가. 꼬치에서 빠진 기름처럼 온 몸이 축축했다.
머릿속은 소란스러웠지만, 집은 조용했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모두 11을 가르치고 있다.
경옥은 가끔 늦었다. 아이 문제로 동팔 엄마는 아내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아이 문제로 조언을 구하다니. 동팔 엄마의 사정도 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팔 엄마는 아내를 제외하면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경옥의 말에 따르면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오직 자신뿐이니, 아내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것일 테다.
동팔은 중학생이라고 했다. 공부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고 스포츠나 음악 미술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관심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관심도 관심이라면 동팔에게 어울리는 관심은 오직 무관심일 것이라고 경옥은 말했었다.
그는 동팔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만난 적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아파트 앞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하게라도. 그가 동팔을 알아보지 못했던 까닭은 순전히 동팔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팔의 모습을 알았더라면 그는 적잖이 동팔을 타일렀을 것이다. 동팔 어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인 경옥을 위해서.
경옥은 지금도 동팔 엄마와 동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가. 그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 내려놓았다. 몇 달 전 들은 타박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날 경옥은 11시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가 먼저 전화를 했다. 통화음이 몇 번이나 반복됐지만 경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기를 다섯 번쯤. 경옥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버럭 화를 냈다. 사실 경옥이 걱정되었을 뿐, 버릇을 고치겠다는 마음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처음 경옥의 몇 마디는 고분고분했다. 하지만 곧 전세는 역전됐다. 자기가 애도 아닌데 조금 늦었다고 전화로 화를 내냐고. 경옥의 말투는 그의 의도를 오해하고 있는 듯 했다.
경옥의 말도 옳았다. 경옥는 애가 아니며, 심지어 아가씨도 중년의 아줌마도 아니었다. 겉모습을 보면 꼭 할머니처럼 보였다. 그는 경옥의 목소리에 기가 죽었지만 끝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경옥은 그날 꼬치 집에 있었다고 했다. 중국식 꼬치집이 아닌 투다리와 같은 간단한 안주를 파는 술집이었다. 그도 몇 번 가 본적 있었다. 꼬치구이가 간판에 적혀 있어 주문을 했다. 꼬치의 맛은 중국출장길에 맛 봤던 그 맛이 아니었다.
정리해고 담당 직원이 중국 출장을 가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중국지사는 해고대상이 되는 사무직 직원은 얼마 되지 않았고, 도리어 공장은 직원이 모자라는 판국이었다. 지난해 춘절에는 농민공이 되돌아오지 않아 인력부족으로 큰 애를 먹었다고 했다.
주위 직원들도 그의 출장을 의야 해 했다. 그 또한 영문을 몰랐다. 그의 짐작대로라면 가장 할 일이 없는 직원을 고른 것일 테다. 그는 집에서나 회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중국식 양 꼬치는 양러우촨(yángròuchuàn,羊肉串)이라고 부른다. 한국식으로 다시 풀이하면 양고기(羊肉) 꼬치(串)이다. 이 요리는 무난한 생김새에 무난한 인상을 지닌 그처럼, 무난한 요리다. 철사나 대나무 꼬챙이에 양고기를 끼워 숯불에 구우면 끝이다. 여기에 향신료를 찍어 먹으면 된다. 양 꼬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향신료인 쯔란(zīrán,孜然)이다. 매콤하면서도 입 안을 개운하게 하는 맛을 지녔다. 특유의 향은 양고기의 노린내를 잡아준다. 하지만 이 향 때문에 중국식 꼬치구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거부감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이 맛에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다. 중국 출장길에 그의 발길을 붙잡은 것이 바로 이 쯔란 향이였다. 노릿하게 구워지는 양고기에서 풍겨 나오는 쯔란 향. 배가 고팠던 그는 앉은 자리에서 양 꼬치 10개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의 먹성에 중국지사 직원도 놀란 표정이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먹성에 놀랐다. 외국인에게 쯔란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향신료였다. 직원은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고라고 추켜세웠다. 양 꼬치 열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그는 칭다오 맥주 한잔을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중국지사에 몇 번 다녀온 김 대리는 중국에 가면 꼭 한번 양 꼬치를 먹어보라고 권했다. 중국 출장은 그 맛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왜 김 대리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노점에 앉아 맥주 한잔에 꼬치구이를 먹고 있으니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허기가 가시자 주변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왔다. 노점에는 그 말고도 10여 명의 중국인이 앉아 있었다. 한여름, 날씨는 숯불을 가득 피워 놓은 것처럼 더웠다. 중국인 남자들은 하나같이 웃통을 벗고 있거나 반쯤 옷을 말아 올려 가판대 위의 붕어처럼 통통한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닭대가리와 닭발이 보였다. 붕어처럼 생긴 물고기와 다양한 민물고기도 있었다. 그는 현지직원에게 물어봤다. 저것도 꼬치로 먹는 것이냐고. 직원은 그렇다고 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꼬치재료라고. 직원은 먹어볼 테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양 꼬치를 제외하면 다른 꼬치는 도저히 먹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중국인 한 명이 붕어처럼 생긴 민물고기와 닭대가리 꼬치를 주문했다. 붕어의 통통한 배에 쇠막대기를 푹 꼽았다. 그는 꼭 자신의 불룩한 배가 꽤 뚫리는 것 같았다. 중국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낄낄거리고 입맛을 다셨다. 꼬치가 다 구워지자 닭대가리를 들고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입에서 닭의 부리가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닭대가리는 분명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중국 닭이었으니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내 대가릴 껌처럼 씹지 말라고, 닭대가리는 껌이 아니에요……, 라고
다음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