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 까닭
보통의 저녁은 책을 읽다가 피곤해서 잠에 듭니다. 그때는 책의 문장이나 저자가 한 얘기를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내가 나인지 책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무의식에 빠지고, 그렇게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내가 잠에 빠지는 방식은 ‘잠을 잔다’라는 말보다 ‘잠에 집중하다’라는 말이 더 적당할 수도 있습니다. 잠은 새벽이 되어 알람 소리에 깨기도 하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 때문에 깰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후자가 다수입니다. 세 딸은 10시 내외에 가장 소란합니다. 아내가 나와서 한마디를 한 이후에야 거실은 평온합니다.
생각은 또 하나의 나로부터 흘러나온 이야기입니다. 내 안에 또 한 명의 내가 웅크리고 있어 내가 그를 소환할 때만, 얘기를 시작합니다. 또 하나의 나인 까닭은 생각을 집중할 때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를 쓸 때 그러합니다. 전혀 나 같지 않은 문장, 떠올릴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이 튀어나옵니다. 시인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 중의 하나가 ‘시가 불러 주는 문장을 받아쓴다’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시란 ‘시에만 집중하는 나’를 지칭하는 것일 겁니다.
또 다른 나는 다중 인격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다중 인격이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현되는 인격입니다. 나와 완전히 구분되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아닌 타자가 됩니다. 다중 인격이란 같은 신체를 공유하는 두 사람입니다. 또 다른 나는 다중 인격처럼 적극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에 빠질 때만 나에게 다가와 필요한 문장, 생각을 제시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또 다른 나를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에게 집중할 때만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려고 노력할 때만 만날 수 있습니다. 글을 쓸 때가 그런 순간입니다. 깊이 숙고하면서 글 쓸 때, 또 다른 나는 어느새 다가와 있습니다. 내 등 뒤에서 문장을 속삭입니다. 마치 내가 아니라 누군가 나 대신 글을 써 주는 것 같습니다. 손가락이 경쾌하게 움직입니다.
시인들이 시를 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직관에 의지하여 시를 쓰는 것과 이성에 의지하여 글을 쓰는 것. 직관에 의지할 경우 시는 비교적 쉽게 써집니다. 빠른 속력으로 시 한 편이 완성됩니다. 후자의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생각에 생각을 덧대어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죠. 전자의 경우라면, 퇴고가 필요가 없거나 또는 퇴고를 하더라도 여러 차례 하지 않습니다. 후자의 경우 퇴고는 고통의 시작입니다. 퇴고를 통해 시가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관은 매번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만 작동합니다. 그래서요 보통의 시는 직관이 아닌 이성을 통해 쓰입니다. 여기서 이성은 ‘생각’을 의미합니다. 시인의 생각 노동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또 다른 나를 불러내어 시를 쓰는 과정은 힘든 노동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심장을 가지는데, 이 순간만큼은 두 개의 심장으로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다량의 에너지가 추가로 소요됩니다. 마치 최고 속도로 날아가기 위해서 부스터를 켠 비행기처럼. 그러나 몸이 소모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어, 그 한계를 넘어서면 부스터는 꺼집니다. 더 태우고 싶어도 태울 수 없습니다.
내가 원할 때 부스터를 켤 수 있다면, 시 쓰기는 한결 수월해질 것입니다. 마음만큼 쉽지 않은 까닭은, 오랜 습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습관은 마음뿐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도 한몫을 합니다. 저는 새벽 시간, 내 책상에 앉을 때 가속됩니다. 새벽 4·5시의 시간은 딸들이 일어날 수 없는 시간, 세상이 다 고요하게 느껴집니다. 새벽의 글쓰기는 나만의 방식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백색소음이 글쓰기에 집중하게 할 수 있게 한다고 하는데요, 저는 이런 방법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내 안에 나는, 나만큼이나 소중합니다. 그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내가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좋은 것만을 보고요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고 보니 태교와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작가는 글이라는 유기적 생명체를 내 몸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산문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유합니다. 브런치를 통해서는 일주일에 한두편, 재미있는 산문을 중심으로 원문을 연재합니다.
주영헌 시인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jooyoungh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