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밭을 가꾸는 가장 좋은 방법
트러플(송로버섯)은 세계 3대 진미라고 꼽을 만큼 뛰어난 식재료입니다. 푸아그라보다 앞서 거론되며, 가격 또한 보통버섯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트러플이 진미로 인정받는 까닭은 고유한 풍미(風味) 때문인데요, 집에서 음식을 할 때 저도 트러플 향이 들어간 올리브오일을 자주 사용합니다. 음식의 잡냄새를 없애고, 음식의 맛을 한결 더 돋아 줍니다. 그러나 트러플 오일을 볶음오리나 고기를 구울 때 사용하지, 샐러드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실 샐러드를 만들 때 트러플 오일을 사용하면, 더 향기가 진합니다, 사용하지 않는 까닭은 아내와 아이들이 싫어하기 때문이죠. 세계 3대 진미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으면, 고역일 뿐입니다.
저에게는 캐비어가 익숙하지 않은 음식입니다. 짭짜름함 이상의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왜 캐비어가 맛있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반복으로 그 맛을 본다면, 익숙해 질 것이고 그 맛을 알 수도 있겠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수입 캐비어 보다 호주산 수입 소고기가 훨씬 맛있습니다.
한눈에 빠지는 운명인 사랑처럼, 단 한 번에 맛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의 맛은 꾸준히 먹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익숙한 맛이 가장 맛있는 음식입니다. 누군가에겐 지독한 청국장 냄새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친숙한 음식이죠.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캐비어의 맛을 느끼는 것이 힘든 것처럼, 독서를 즐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왜 독서가 어려운 것일까요. 알고 보면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뇌는 게으릅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눈의 수고뿐만 아니라 텍스트를 읽어 해독하고 저장하는 수고가 뒤따라야 합니다. 독서는 뇌세포를 자극해서 강제로 운동을 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당연히 게으른 뇌가 좋아할 리 없습니다.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도 너무 많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쉴세 없이 SNS와 카톡 메시지가 계속 울립니다.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울죠. 중요한 메시지도 있을 수 있지만, 다수가 천천히 읽어도, 읽지 않아도 괜찮은 메시지입니다. 메시지에 정신이 팔리면, 독서의 흐름이 끊깁니다. 독서는 다른 행위와 다르게 예열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독서는 텍스트를 읽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나 책을 읽을 때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습니다. 정말 중요한 메시지는 텍스트보다 전화벨 소리로 울리기 때문입니다.
영상은 말과 행동으로 우리의 두뇌를 직접 자극하지만, 텍스트는 그렇지 않습니다. 텍스트를 의미화 하기 위해선 한 단계의 과정이 더 필요합니다. 이것은 마치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신호는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신호를 약속된 단어로 변환할 때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죠. 책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 진정한 독서는 시작됩니다. 그전에 읽은 텍스트는 암호일 뿐입니다.
독서를 반복하면, 예열의 과정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게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처럼 텍스트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성실한 독서자가 되어야 하는데요, 쉽지 않을 일입니다. 독서가 힘든 까닭은 내 생각이 독서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유영만 작가는 <독서의 발견>(카모마일북스)에서 독서를 ‘굳어져 가는 생각의 밭을 가는 쟁기’라고 말합니다. 묵답(畓)은 오래 경작하지 않는 밭입니다. 굳은 땅이라면, 몇 해 묵었어도 어렵지 않게 갈수 있습니다. 밭이 아무리 단단히 굳었다 해도 사람들이 오가는 길처럼 단단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쟁기질이 어려운 까닭은 풀씨들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풀씨라면 다행입니다.
잡풀과 잡목이 내 생각의 밭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꾸준히 읽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꾸준히 읽는 것입니다. 틈틈이 생각의 밭을 일구고 가꿔주는 것이죠. '내일 하자'라는 생각은 '모래'로 이어지고, 밭은 금방 황폐해집니다. 산인지 밭인지 모를 정도로 바뀌어버린 밭은 보통의 결심으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오늘 나의 독서가 힘든 까닭입니다.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한편의 짧은 산문을 씁니다. 50여편 정도의 산문을 모아서 산문집 출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