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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식당

진정한 상차림

by 남지만 작가

모처럼의 여유를 맞아, 나와 아내 그리고 친한 친구 부부, 이렇게 네 명이 함께 외식을 했다.
긴 연휴 기간 동안 기름진 명절 음식에 질려 있던 터라, 이번 만남의 메뉴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으로 느끼함을 싹 가시게 해 줄 꽃게찜으로 만장일치 결정되었다.
친구가 추천한 동네 식당에서 넉넉하게 4인분을 주문했다.
마침 밖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라 모두 허기가 극에 달해 있었다.
배고픔은 최고의 반찬이라고 했던가.
신중하게 고른 메뉴인만큼,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식당에 들어서니 예상대로 어느 정도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면 맛집이겠지' 안심하는 마음으로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착석 직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훨씬 늦게 들어온 손님들의 상차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는 동안에도, 우리 쪽으로는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시간이 십 분, 이십 분 하염없이 흘러도 테이블은 텅 비어 있었고, 배는 점점 더 요동쳤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짜증 섞인 큰 소리로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저기요! 왜 우리 테이블은 세팅을 안 해주십니까?"
그제야 종업원은 우리가 구석 자리에 앉아 있어서 깜빡했다며 연신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알았다고 돌려보내자마자 곧 기본적인 상차림이 차려졌다.
그 기본 반찬은 채소 몇 가지가 전부일 정도로 조촐했다.
그래도 '주메뉴인 꽃게찜만 괜찮으면 된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끓어오르는 불만을 다스리며 메인 요리를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꽃게찜 4인분이 나왔다.
음식을 보는 순간, 나와 일행들 모두는 동시에 침묵하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푸짐함은커녕, 그 모습은 너무나도 조촐하고 빈약해 보였다.
나는 혹시나 잘못 본 것은 아닌지 눈을 몇 번이고 의심하며 음식을 훑어보았지만, 접시 위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일행들 역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긴 푸념을 내뱉으며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곁에 있던 아내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종업원을 부르려 했다.
"이게 4인분이라는 게 말이 되냐"며 따지겠다고 했다.
나는 격해진 아내를 말리며 속삭였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도 이 집의 경영 방침일 텐데, 우리가 여기서 화낸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겠느냐"라고.
하지만 아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기어이 종업원을 불렀다.
"이게 정말 꽃게찜 4인분이 맞나요?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요."
종업원이 허리를 굽혀 “확인해 보겠다”며 사라지고, 잠시 후 사장님이 직접 우리 테이블로 왔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은 "들어간 꽃게는 좋은 품종이고 4마리나 들어갔다"면서 나름대로는 많이 제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꽃게 수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꽃게를 제외한 콩나물, 미나리, 쑥갓 그리고 새우, 미더덕, 조개 등 다른 해산물과 양념 자체에 들어간 재료의 양과 질이 너무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사장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일반적인 꽃게찜에 들어갈 만큼은 충분히 들어갔다"라고 단호하게 반문했다.
주변 손님들을 둘러보니, 그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자신들의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 듯했다.
더 이상 길게 언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알겠습니다. 가보시죠" 하고 사장님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마음에 안 들면 다음부터 이 식당에 오지 않으면 그만이지, 우리가 여기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 식당의 영업 방침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진정시켰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식당을 새로 열어 생존할 확률은 불과 몇 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극정성으로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국에, 이렇게 눈속임식으로 장사를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손님들의 표정과 반응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다음에도 또 오게 할까'라는 고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할 자영업자가, 손님의 정당한 불만에도 벽창호처럼 대응하는 태도라니.
이런 식으로 장사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손님이 끊기고, 가게 문은 닫히게 될 것이 뻔하다.
결국 식당 유리창에는 '임대문의' 딱지만 붙은 채 파리채만 휘날리게 되지 않을까.
씁쓸한 마음으로, 우리는 조촐한 꽃게찜을 마저 먹고 식당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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