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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원 Sep 04. 2024

영국의 문단속

저기... 방 주인인데 들여보내주세요...

flat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평평한'이라는 의미를 떠올렸다면, 물론 정답이다.

해당 단어를 검색해 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의미들을 지나쳐 그 아래에 아파트/거주지 같은 단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식 영어에서 flat은 숙소 형태들 중 하나를 뜻한다. 그리고 바로 이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첫날부터 의도치 않게 밖으로 내쫓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타지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이 거쳐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집 구하기'이다.

단기간 영국 살이를 해야 했던 과거의 나에게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의식주 가장 구하기 어렵고, 또한 앞으로의 생활 동안 고정 지출 비용 중 가장 비중을 차지할 예정인 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영국의 주거 형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만약 당신이 한국에서 집을 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어디서(지역), 어떤 형태의 집을 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집을 구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거주 형태의 선택지는 대략  아파트, 오피스텔, 빌라/주택, 원룸/투룸이다. 

물론 학생이라면 기숙사, 셰어 하우스, 하숙 등의 선택지도 추가될 수 있다.


자, 이제 영국에서 집을 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지역은 대체로 학교나 직장 등의 요인으로 정해져 있을 것이고, 그다음 단계인 'Property type'(부동산 종류/주거 형태)을 누른 당신은 아마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람?


유명 영국 부동산 사이트 'Zoopla'에서 선택 가능한 Property type


하나씩 간단히 알아보자.

Detached / Semi-detached

'Detached'의 의미인 '다른 집들과 떨어져 있는'에서 알 수 있듯이 단독주택을 의미한다. 집의 어떠한 면, 벽도 다른 집과 붙어있지 않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형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Semi-detached는 무엇일까? 분리는 되어있으나, 완벽히 분리되진 않은 형태. semi-detached는 한쪽 벽이 다른 집과 붙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옆집과 붙어있다는 것 외에는 앞에서 설명한 detached와 거의 유사하게 생겼다.

(해리포터가 구박받던 더즐리의 집, 프리빗가 4번지가 바로 이 'semi-detached' 형태의 집이다!)


Bungalows

2층 집이 대부분인데 영국 집들에 반해, 1층만 있는 주택이다. Bungalow 중에서도 detached와 semi-detached가 나뉘기도 한다.


Terraced

똑같은 집의 형태가 연이어 늘어서 있는 형태이다. 좌우 건물과 벽이 딱 붙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Flats

드디어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 flat 되시겠다. 영국의 거주 형태 중 하나인 flat은 일반적으로 아파트 형태의 거주 공간을 의미한다. 큰 건물 안에 집이 여러 개 있는 형태이다. 다만, 그렇다고 한국의 아파트 정도의 고층 건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의 빌라 형태와 유사하다.


(물론 더 알기 쉽게 'Houses, Flats/Apartments, Bungalows, Land'로 구분해 놓은 부동산 사이트도 있다.)



거주 형태까지 결정한 당신! 이제는 한국에서 집 구하듯 상황에 맞는 비용과 조건을 따져 결정하면 된다.

한 가지 팁!

비용을 보면 '1200 pcm'나 '160pw'로 나와있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 'pcm'은 'per calendar month'를, 'pw'는 'per week'을 의미한다. 즉, 각각 월세와 주 당 비용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4주 = 1 달이라고 생각해서 4 * pw = pcm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pw 가격에 4.33배 정도 해야 pcm 가격이 나온다. (무슨 수학문제 같다)




자,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앞으로 6개월 간 살 집을 구했다. 자체 House101에서 선택된 거주지는 바로 flat이다. 사실상 단기 거주를 희망하는, 돈 없는 학생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앞에서 flat은 보통 apartment 형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몸으로 겪은 flat은 여러 명이 각자 방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공간을 공유해서 사용하는 숙소 형태였다. 미국에 roommate가 있다면 영국에는 flatmate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말하는 '셰어하우스'와 비슷한 구조이다. 일부 공간을 공유해서 사용하는 만큼 가격이 저렴하고, 일반적인 대학 기숙사의 형태가 바로 이 flat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물론 flat마다 구조도 특징도 다르지만, 내가 거주했던 flat은 아래와 같은 형태였다.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는 형태

화장실과 샤워 공간까지 공용 공간인 경우도 꽤 있으나, 위와 같이 개인 화장실이 존재하는 flat도 존재한다.


숙소를 구할 때 고려한 조건은 단 두 개.


    1. 개인 화장실이 있는가

한 flat에 누구와 함께 살게 되는지는 실제로 입주하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심지어 해당 flat이 혼성 flat인지, 여성 전용 flat인지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입주할 때 요청사항으로 여성 전용 flat에 고 싶다고 요청할 수는 있으나, 어떤 방이 남아 있는지에 따라 요청사항이 100퍼센트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은 없다.) 


    2. 보안이 철저한가

소매치기는 일상이요 집까지 침입하는 도둑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는 나라에서, 2n년간 한국에서 익혀온 안전 불감증(외국 기준)을 가진 사람은 누구보다 쉬운 먹잇감일 것이다. 타지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디 도움을 요청하기도 쉽지 않고, 여행 등으로 인해 집을 종종 비울 예정인 만큼 철저한 보안을 1순위 조건으로 고려했다.


다행히 내가 찾은 사설 flat은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곳이었고, 주에 108파운드에 거주 계약을 했다.

(비싼 가격이지만 당시 영국 친구 말로는 해당 지역이 영국에서 제일 월세가 저렴한 지역 중 하나라는 것!

물론 조금 더 저렴한 flat도 있었으나 위의 조건을 따지느라 가격적인 측면에서 조금의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철저한 보안은 예상치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여기서 살펴보는 영국 대학에서 놀랐던 점 한 가지.  

모든 학교 건물, 심지어 강의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생증 카드(Student card)가 필요하다.

강의실 앞에 가면 위와 같은 안내 포스터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강의실 입장 전에 학생증을 찍는 것으로 문이 열리고, 또한 그것으로 출석을 체크하기도 한다.   

학교와 관련된 모든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카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처음에 여간 당황했던 게 아니다.


한국 대학생에게 학생증이란 본교 재학생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증명서 정도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출입증 및 열쇠 역할을 하는 학생증을 마주하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초반에는 자꾸만 학생증을 놓고 와 같이 수업 듣는 친구가 올 때까지 문 앞에서 우두커니 기다리다 친구가 오면 그제야 같이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런 당혹감을 안겨준 것은 비단 학교 건물들만은 아니었는데, 바로 기숙사도 철저한 문단속의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안이 철저한 기숙사를 찾았다고 했던가?

직접 찾았지만 이렇게나 보안이 철저할 줄은 몰랐다.



영국 도착 첫날,

14시간이 넘는 긴 비행을 마치고 개운하게 샤워까지 마친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물을 가지러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들고 다시 방에 돌아가려 방문 앞에 선 순간, 자연스럽게 돌린 문 손잡이에서 들린 소리는

    철컥


주방에 물 가지러 잠깐 나간 찰나에 방문이 잠긴 것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계속해서 애꿎은 문을 흔들어 보았으나 이미 잠긴 문이 흔든다고 열릴 리 없다.


샤워 끝나고 나와서 주방에서 물 가져오는데 외출복을 챙겨 입고 있을 리가 없었고, 1월 중순에 나시와 츄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옆방 친구를 불러본들 남의 방 문을 열어줄 수 있을 리 없기에 결국 하는 수 없이 몇 시간 전에 생활 안내서와 열쇠를 전달받았던 데스크로 향했다.


이 기숙사는 24시간 상주 직원이 있는 데스크가 있었다.(마치 호텔 프런트 같은 느낌이다.)

다만, 하필이면 이 데스크는 별도의 건물에 있어 한 겨울에 나시와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아무도 마주치지 않도록 황급히 찾아간 데스크 직원분께서는, 나처럼 방에 들어가지 못해 찾아오는 학생이 많은 구구절절 설명할 것도 없이 바로 함께 가서 문을 열어주셨다.



그렇게 첫날부터 우여곡절 끝에 겨우 다시 자신의 방에 들어오게 된 후

내 눈에 들어온 그것.

안쪽 방문에 붙여져 있던 안내지
이 문은 자동으로 잠깁니다.
방 열쇠를 항상 소지하세요.
...
안전과 보안을 위해 방 문을 항상 닫아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미 몸소 직접 깨달은 후에야 보게 된 안내지였다.

그날 알게 된 것은, 내가 앞으로 거주할 곳은 잠깐 주방에 나갈 때도 열쇠를 챙겨 나와야 하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개인 방 잠금장치가 도어록 형태도 아닌데 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겨버리는 놀라운 방범 시스템에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도어록에 익숙해진 한국인으로서 집에서 나갈 때마다 매번 문을 잠그고,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나가는 것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도어록에 익숙한 한국인은 열쇠를 들고 다니는데 익숙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 이후 열쇠를 들고 다니는 게 익숙해지는 것보다도 빨리 문고리를 조작해 문을 살짝 연 상태로 나갔다 올 수 있는 편법을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 방법을 쓰다가 막상 돌아와 보니 방문이 굳게 닫혀있는 경험을 몇 번 한 후로는 그냥 주방에 잠깐 물 가지러, 혹은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 올 때도 열쇠를 꼭꼭 챙겨 다니게 되었다.


*참고로 나중에 이사 간 학교 기숙사는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형식이 아니었다. 결국 끝까지 열쇠를 들고 다니는데 익숙해지지 못하고 그냥 문 안 잠그고 다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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