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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 Mar 07. 2024

학교에서 따뜻하게 살기

학교에 근무하면서 겪는 2월말 3월 초는 특별하다. 

마치 폭풍의 전야같다. 

뭔가 엄청난 일들이 몰려올 예정이지만, 

지금은 너무도 고요오 해서, 오히려 두렵다. 

이미 2월 중순이면,

 시원 섭섭한 마음과 함께 

지난 인연은 훌훌 털어리게 된다.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다시 북돋우고 세운다. 

지난 한 해 있었던 희, 노, 애, 락이 

아쉬움과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러나 나도 사람인지라 빠져나가는 

썰물사이로 남아있는 큰 조개들을 건져 올리는 어부처럼,

 지난 인연을 떠올리게 된다. 


몇 년 전, 만났던 아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단연 백승현(가명)이다. 

승현이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1학년 남자아이였다. 

전체적으로 통통한 인상의 승현이는

얼굴이 뽀얗고, 삐죽삐죽 밤송이 같은 갈색 머리가 

눈에 띄였다. 

첫 인상은 참 귀여웠지만, 

지내면서는 전혀 귀엽게 다가오지 않았다. 

승현이네 반 수업을 준비하거나, 

수업을 할 때, 나는 승현이를 가장 신경썼다. 

승현이에 의해 수업이 방해 당할까봐 걱정되어서다. 


승현이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손으로 귀옆 머리를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얼굴이 뻘게질 때까지 온 몸에 힘을 주고 

책이나 학습지를 찢다가 "이거 못해, 싫어 싫어"를 반복하며 울었다. 

그만 하라는 내 말은 소용없었다. 

자기 뜻대로 되거나 쉬는 시간이 될 때까지 그랬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한 눈길로 

승현이를 바라보거나 

내가 더 화를 낼 까봐 내 눈치를 봤다. 


내가 승현이와 수업에서 심하게 부딪힌 것은

 발표때문이었다. 

승현이는 손들고 발표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문제는 모든 발표 기회를 가지고 싶어 했다는 데 있었다. 


"추석에는 어떤 음식을 먹을까요?"

"......"

 (일어서서 한참 두리번거리자 

다른 아이들이 송편이라고 말한다)

"송평?" 

"아, 송편. 네 좋아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다시 손을 든다) 

내가 다른 아이를 지명하니 

계속 팔을 귀옆에 붙이고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시 발표기회를 주었다. 

"백승현 발표해 주세요."

"음......"

 (일어서서 가만히 있는데 짝이 떡국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떡꾸?"

아이들이 흔히 혼돈하는 내용이라 

나는 전체적으로 질문하며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잘 발표해 줬어요. 

하지만, 떡국은 추석에 먹는 음식이 아니예요. 

떡국은 언제 먹는 전통음식일까요?"

그러자 승현이는

 "떡꾸 추석에 먹는데! 추석에 먹는데!"를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했고,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결국 그 날 나는 화를 내며 큰소리로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승현이는 귀를 막듯 손으로 옆머리를 팡팡 치며 

나보다 더 크게 고함쳤다. 

 몇 몇 아이들은 귀를 막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당연히 수업은 이어가기 힘들었고, 

분위기는 뒤숭숭해졌다. 

<설날과 추석엔 무엇을 먹을까요?>라는 

짧은 동영상을 서둘러 보며 

우 국면을 전환하고, 

가까스레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을 마친 후, 

나는 승현이가 어떤 아이인지, 

담임 선생님 수업에서도 그런 모습인지, 

무엇보다 왜 그러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있었던 일을 요약해 말하며

 궁금한 내용을 속사포처럼 질문했다. 



"에고 제가 미리 말씀 안드렸구나.

 승현이는 발달장애를 갖고 있어요."



조심스레 운을 뗀 담임 선생님은 

승현이가 특수교육대상자이지만  

부모님이 특수반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아 

완전통합으로 수업하고 있으며 

담임 교사의 수업에서도 비슷하게 행동한다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1학년치고도 말할 때 발음이 부정확했고, 

문장도 뚝뚝 끊어지듯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랬구나. 


자연스레 내 눈은 승현이를 찾아 교실을 한바퀴 더듬었다. 

쉬는 시간이라 아이들은 재미있게 장난치며 놀았다. 

그런데  다들 삼삼 오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있는데 

교실 뒷편에서 승현이는 혼자 나무 블럭을 가지고  

천천히 쌓았다가 허물었다가 반복했다. 

함빡 웃으며 어눌하게 손뼉을 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담임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승현이가 발달 장애를 가지고 있고, 

담임 선생님 수업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승현이를 돕도록 

협력 교사를 신청했으니, 

곧 오실 것이란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후,

나는 되도록 승현이가 발표기회를 가지도록 

손들고 지명해서 발표하던 것에서, 

발표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일어나 발표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어쨌든 기다리면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승현이는 

조급해 하면서 기다렸다.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학습지를 받았을 때도 

협력 선생님이 바로 옆에서 

승현이가 더 쉽게 내용을 익히도록 도와주어 

전과 같이 심하게 화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승현이에게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납득은 했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뭏든 뭐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 시간 수업을 하고, 

중간에 쉬는 시간이라 나도 잠시 숨돌리던 때였다. 

주영이가 다가왔다. 

주영이는 표정이 늘 서글서글해서 

나는 평소 주영이가 성겪이 원만한 아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주영이가 평소와는 다르게 자뭇 심각한 얼굴로 

아주 길게 민원을 제기했다. 

6살 짜리의 심각한 얼굴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나도 내심 표정을 굳히고 자뭇 심각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 승현이는 좀 그렇잖아요. 

그런데 애들이 그거를 이해 안해주고, 

자꾸 놀리고, 화나게 하고, 그래요." 

"그래서?"

"그래서 조금 전에도 승현이가 블럭 가지고 쌓고 있는데 

남자애들이 장난치다가 발로 찼는데 

미안하다도 안하고. 

그래서 저랑 미진이랑 도와줬어요. 

승현이가 다시 쌓는데 걔들은 안 도와주고 

블럭을 더 멀리 보내고 

그래서 승현이가 화나서 우는데 

승현이는 화나면 말을 잘 못하니까 

똑같은 말만 하고 그러거든요. 에휴  

그런데 애들이 그냥 복도로 나갔어요. 

이건 나쁘잖아요. 혼내 주세요."

 정말 속이 상한지 중간 중간 한 숨을 쉬어 가며 

주영이는 놀라울 정도로 

전후 사정을 내가 알 수 있게 설명했다. 


교실 뒷쪽에 눈물을 닦고 있는 승현이가 보였다. 

고함을 치지도, 뭐라 말하지도 않고,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 전체로 어눌하게 

쓱쓱 문지르며 멀리 간 블럭을 

무릎으로 기어 모으고 있었다.

 나는 주영이와 함께 다가가서 

블럭을 주워주며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승현이는 "이거 이랬떠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블럭을 발로 찬 장난꾸러기들을 불러 

한바탕 훈계를 하고 서로 사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미안해" , "미안해"....내 눈치를 슬쩍 슬쩍 보는 동시에, 

승현이의 팔을 쓰다듬으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말했다. 

순간, 승현이는 활짝 웃으며 "괜탄아. 괜탄아." 했다. 

남은 쉬는 시간동안 주영이와 미진이, 승현이는 

블럭을 쌓았다가 다시 무너뜨렸다하며 놀았다. 


그 날 오손도손 같이 놀던 세 아이의

 까만 뒷통수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교실에서 만날 때가 있다. 

특수교육대상자가 되면 보통 국어나 수학같은 주지 교과는 

특수학급에서 수업하고, 통합(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교과는

 일반학급에서 함께 한다. 

되도록 통합하는 방향으로 교육은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누구나 친구들을 선천적으로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고 싶어한다. 

그리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우리는 어울려 살아간다.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를 도우며 어울리는 방법을 

학교 생활을 통해 아이들은 배운다. 

같이 놀고, 

장난치고, 

혼나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또 때로는 친구들의 편을 들어주면서. 


그날 내게 주영이는 생애 최초  

짧은 학교 생활을 통해 배운 바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주영이는 승현이를 이해했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했고,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승현이가 힘들어지자 옹호했고, 

승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방법으로 놀았다. 

그리고 다 같이 즐거워했다. 


그런데 나는? 나는 어땠나?


승현이가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거기서 멈췄다. 

되도록 전체 수업상황이 틀어지지 않도록 관리했을 뿐, 

승현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승현이가 왜 고함을 치고, 

막무가내로 화를 내며 자기 머리를 때리는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승현이가 발작적으로 패닉에 빠지는 

몇 가지 상황들을 최대한 자세히 복기했고. 

곰곰히 생각했다. 

떠오르는 한가지가 있었다. 


'두려움'


앞 서 말한 발표 상황에서도 자세히보면 

승현이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승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인 손만 열심히 들었다. 

전체 수업을 이끌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성가셨지만, 

어쩌면 승현이에게는 자신이 발표를 해야 

수업에 참여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손을 들었는데 발표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또 답을 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았던 것은, 

수업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배제의 두려움이 엄습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후 발표 방식을 바꿔 기다리면 발표할 수 있게 되자, 

승현이는 애쓰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방식의 발표에서는 

아이 한 명 한 명의 발표에 대해 옳다 그르다 

즉시 피드백하기보다 다 듣고 난 다음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협력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일정부분의 학습지를 해결할 수 있게 되자, 

학습지를 찢는 일도 줄어들었다. 


아, 승현이는 수업에 참여하고 싶었고, 공부하고 싶었구나. 


너무 어려운 과제를 받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은 지레 포기한다. 

대부분 그렇다.

 '수포자', '영포자'라는 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능가하는 

수학이나 영어 과제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하고 싶다는 마음은 싹 사라지고, 

아예 마음을 닫아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렇게 마음을 닫기 전에 

자신의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게 과제를 더 쪼개 주고, 

지겨운 것을 반복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어땠나?

 마음이 무거웠다. 


내 입장에서 변명을 하자면, 

그 반에 승현이 한 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24명이 와글거리는 교실에서 

최대한 수업이 틀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힘들었다. 

맞다 그랬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아보면, 

역시 나는 승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으로 

한 걸음 더, 한 순간 더, 

먼저 갔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승현이의 마음을 이해한 후, 

(승현이는 별 상관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승현이에게 

진심이 담긴 눈길을 보내고, 

말을 건네는 

나를 보니 

내가 편안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후 

늘 멀리서 빙빙 돌던 승현이가 

내게 다가와서 와락 안으며 "잘 가세요." 했을 때 

마음 밑바닥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와

 그 후 몇 날이 따뜻했다. 


또 새롭게 맞이한 3월 첫 출근날, 

승현이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생각한다. 


"이왕 사는 거 조금만 더 따뜻하게 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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