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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11. 2022

2.(공간) 시선의 공간

: 두번째 공간 | 공감 - 판테온, 로마 / 산조반니 세례당, 피렌체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세기 1:3)

Photo by Emiliano Cicero on Unsplash


# 첫번째 하늘: 눈

건물: 판테온 Pantheon (Rome), built by Trajan, Hadrian


판테온의 사전적 의미는 만신전, 즉 ‘모슨 신을 위한 신전’이다.

그리스어 ‘판테이온(Πάνθειον)’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을 뜻하는 Pan(παν- )과 ‘신’을 뜻하는 Theo( θεός )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로마의 판테온은 BC 31-27년에 아그리파 집정관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으나 기원후 80년 로마의 대화재로 불탔다. 지금의 판테온은 125년 경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로마 전역에 걸친 재건 계획을 펼치며 다시 지은 건물이다. 특정 신에게 바쳐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신을 위한 공간이었으며 실제 용도는 구체적이지 않다. 이는 다른 종교, 문화, 민족을 로마라는 이름 아래 묶으려는 혼합주의적인 로마의 정책을 보여준다.


7세기 이후부터 판테온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개축되면서 다시 살아남았다.

그리스 신들을 표현했던 조각들은 기독교 성자들의 모습으로 바뀌었고 금속 장식들은 벗겨져 타 교회와 성당의 장식품으로 쓰이도록 녹여졌다. 그나마 살아남은 청동들도 후에 교황의 군대를 위해 벗겨져 대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결국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판테온은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이탈리아 1대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등 친숙한 이름의 무덤이 다수 있다.

그 모든 산전수전을 다 겪고도 살아남아, 다시 현재에는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이용된다.


Photo by Gabriella Clareon Unsplash
"Interior of the Pantheon", painted by Giovanni Paolo Panini (Resource: Wikipedia)

판테온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돔 형태의 건축물이다.

불필요한 치장 대신 정교한 수학적, 공학적 원리가 관통하는 거대한 공간 자체로 시대를 앞서간 로마의 지성과 통치력을 보여준다.

전반부의 입구인 주랑 현관은 코린트식 기둥이 받치고 있는 직사각형의 공간이며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시킨다. 그리스 전통의 뿌리를 보여주는 현관을 지나가면 새로운 질서를 찾아낸 로마의 공간이 나온다. 직경 43.3m의 거대한 돔으로 이루어진 원형의 우주.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와 직경의 지름이 똑같아 거대한 구()를 품고 있는 모양이다.


 

(Cross section of the Pantheon+Sphere)

Resource: Wikimedia   Original: Baukunst Etrusker Römer

Modifications made by Cmglee.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C BY-SA 3.0 AU license.)


옛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 네모 안에 품으면서 하늘을 땅에 담고자 했던 고대 사람들의 생각을 엿본다.

원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계속된 현재의 도약과 공명이 있을 뿐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총체적으로 움직이고, 직조되고, 나아간다. 서로가 서로에게로.

4,535톤 중량의 콘크리트 돔.

19세기까지 판테온은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돔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같은 로마 바티칸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의 돔이 그보다 약간 작은 지름 41.47m이다.

성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지시한 바오로 3세는 기독교 신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감독을 담당한 미켈란젤로에게 판테온의 돔보다 더 큰 돔을 지어달라 요구했지만 미켈란 젤로는 판테온의 돔은 천사가 만들었기에 인간이 만드는 돔이 그보다 더 클 수 없다며 살짝 작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Geometry in the Pantheon - Plan

Resource: Flickr. Original Image by R. Blomfield  

(This file is licensed under the CC BY-SA 3.0 AU license.)

Diagrammatic lines added by Soo Jin Kim


Cupola of the Pantheon - Photo by Mathew Schwartz on Unsplash

로마 건축의 특징은 아치(Arch)와 돔(Dome)이다. 아치(Arch)는 조금씩 각이 바뀌는 벽돌을 곡면 형태로 쌓아 압축 응력 만으로 개구부를 확보하는 건축 방법이다. 각 자리에 놓인 돌조각들은 서로의 하중을 견디며 기둥이 없이도 더 넓고 높은 공간을 구축한다. 이러한 아치를 180도 회전하여 3차원으로 만들면 돔(Dome)이 된다.


거대한 원형의 하늘이 쏟아내는 육중한 콘크리트 덩어리의 무게는 벌집처럼 촘촘히 모여있는 28개의 판들(소란반자)이 서로를 지탱하면서 나누어 가진다.

달의 공전 주기, 즉 음력 한달인 28일을 의미하는 격자무늬 판이 촘촘하게 모이고 기대며 반구 모양의 큐폴라(Cupola)를 만든다.  콘크리트 거푸집 역할을 하는 이 사각형의 판들은 내부로도 움푹 파여 있다. 점점 작아지며 4번 반복되는 정방형의 홈은 상징적으로는 4계절을 의미한다. 동시에 물리적으로는 또 다른 아치의 변형이다. 내부로 들어가며 만드는 단면의 아치는 장식 효과를 낼 뿐 아니라 천장의 무게를 줄여준다. 6.4m 두께로 시작한 소란 반자의 벽들은 압력과 무게를 줄이기 위해 위쪽으로 갈수록 점차 얇아져 꼭대기 벽의 두께는 1.5m에 불과하다.


그렇게 자신을 덜어내어 서로를 버티고 지켜주며 올라간 중심에 공허가 있다.


Oculus - Photo by © Soo Jin Kim


돔의 가운데 빈 구멍. 이 구멍을 라틴어로 ‘눈’을 의미하는 오큘러스(Oculus)라고 부른다.

본래 아치 설계의 핵심은 가장 힘을 많이 받게 되는 중앙에 놓이는 키스톤(keystone)이다. 보통 키스톤을 크고 튼튼한 돌로 만들고 조각으로 장식하거나 하는데, 판테온은 오히려 키스톤이 놓여야 할 자리를 비워놓고 시선(Oculus)으로, 빛으로, 하늘로 채웠다.

한 가지의 질서 (Order). "서로가 서로를 지탱한다"라는 아치의 질서는 오큘러스로 시작한 지붕의 평면도에도, 완벽한 구를 품은 단면도에도 반복되며 소란반자의 내부구조 디테일까지 이어진다. 자연의 프랙탈처럼 오직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생각이 위치와 형태를 변이 시키면서 계속 나아간다.

우주를 품은 신의 .  한가운데,

빛이 세상을 보고 있다.




# 두번째 하늘: 질서

건물: 산조반니 세례당 

Battistero di San Giovanni (Florence)


Photo by © Soo Jin Kim

빛이란 무엇일까. 지혜를 설파하는 여러 경전에서 빛은 진리, 믿음, 성령, 깨달음의 또다른 말이다.

빛의 임재를 느꼈던 공간에서 내가 깨달은 , 빛은 시선이라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 또한 나도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

그렇게 빛은 나아간다.

나아가는 , 천장을 더듬어 가며 구석구석 어둠을 밝히는 빛을 나의 시선이 따라간다. 내게 내려 앉는 다정한 빛의 손길을 느끼며 내가  세상에 홀로 우연히 떨구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우리는 모두 시간과 공간을 너머 연결되어 있었고 약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더이상 외롭지 않아도 괜찮았다.


긴 여행을 떠나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나는 몸도 머리도 마음도 두드려 맞은 듯 피폐해 있었다. 관계는 삐걱거렸고 미래는 불투명했고 마음은 날깃날깃 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과, 나와 싸우면서 왜 가는지도 모르고 이어가던 추운 여행길.

화려한 두오모 성당도, 우아한 우피치 미술관도 주지 못한 고요한 마음의 평안을 작은 바실리카의 반짝이는 하늘에서 찾았다.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앞 광장에 있는 팔각형의 산 조반니 세례당.

1059년에서 1128년 사이에 지어진 작은 세례당으로 건물은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을, 내부장식은 13세기 비잔틴의 화려한 모자이크화를 보여준다. 원래 건물보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천국의 문’이라 불리는 황금 문이 더 유명하지만 나는 5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천정화에 마음을 뺏겼다.


기독교에서 숫자 8은 재생을 뜻하는 숫자이다. 가운데 랜턴(구멍)을 중심으로 가장 위에는 천사합창단(Choirs of Dominations, Powers, Archangels, Angels, Principalities, Virtues and Thrones)이 있고 아래로 내려오며 창세기, 요셉의 이야기, 마리아와 예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단 중심에는 심판을 내리는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 양 옆으로 오른쪽에는 구원을 받은 자들이 승천하는 모습과 왼편에는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모습이 있다. 창조부터 심판까지의 단계별로 이어지는 기독교 구원의 역사와 천계를 한눈에 들어오도록 묘사한 그림이다.


지친 나는 세례당 딱딱한 나무 벤치에 누워 오랫동안 천정을 바라보았다.

8각과 5층으로 정교하게 완성되는 하나의 이야기를 보고 또 들었다.

팔괘 ()의 모습 같기도 하고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게도 하는 이 하늘의 음악을 듣고 있자니,

모든 것이 지나갈 것이고,

모든 것은 결국 합쳐서 선을 이룰 것이고(*로마서 8:28),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 조용히 마음에 퍼져나갔다.




# 빛: 세상의 질서를 밝히는 눈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질서(Order) 디자인 (Order & Design)이라는 글에서 건축의 질서란 건축물이 스스로 되고자 원하는 어떤 이상이라고 말한다.

자연의 질서를 건축에 끌어와 반복하면서 인간이 아름다움과 위안을 느끼는  결국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건축의 구성요소들은 일정한 관계에 의해 하나의 완전한 모습으로 창조되면서 공간이 애초에  되고자 했던 질서(order), 원형, 본질, 기원(beginning) 드러낸다. 형태와 디자인은 공간의 마음이 실체로 태어나는 개인적 해석이자 결과물이다.


빛이 마음에 닿을 ,  빛은 이름을 부른다.

그제야 공간은, 생명은 침묵을 깨고 태어난다.

오큘러스의 빈 구멍을 가득 채운 그 은은한 빛은 판테온의 28개 격자무늬 판을, 신의 노래를 부르는 천사와 사람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내려왔다. 하늘의 시선은 길을 잃어 결국 하늘을 올려다본 사람의 눈에 다시 고스란히 담겼다.


Photo by Manish Tulaskar on Unsplash

The mosaic ceiling of the Baptistery San Giovanni in Florece in total view

(Resource: Wikipedia (Author: User:MatthiasKabel)


# 지나온 , 다가오는 ,

나에게 가는 가장 가까운 지금


다시 테드 창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빛이 굴절 현상을 설명한 페르마의 원리를 먼저 인과론의 관점으로 해석해본다. 빛은 물을 만났기 때문에(원인) 굴절(결과)되었다. 빛이 가는 길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과의 우주에 사는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앞에 놓인 장애물을(water), 즉 원인을 바꾸어 좀 더 나은 미래(목적지)를 꿈꿀 수 있다.


같은 원리를 목적론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 빛은 목적지를 미리 알고 출발한다. 가야 하는 곳과 과정에 놓인 장애물(water)을 예측하고, 그래서 자신이 꺾여진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가기 위해 떠나야 한다면, 빛은 출발해야 할까.

목전에  미래가 고통이라 하더라도.


나는 나의 대답을 알고 있다.

빛은 출발한다. 미래를 알고 있지만, 원형의 우주 안에서 다가오는 나의 모습을 얼핏 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해서 살아간다. 그 끝이 결국 무(無)가 된다 하더라도.

계시된 미래를 ‘현현’(顯現·Epiphany) 하기 위해 빛은, 나는, 주어진 길을 충실히 따라간다. 이름이 불리고,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나를 알아보고 내가 알아볼 존재를 만나는 순간, 찰나로 흘러가지만 영원히 가득찰 기쁨을 위해서.  


이 순간, 존재의 이유로 남는 것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다. 중요한 건 과정의 충실함과 진정성이 담긴 지금, 이 순간의 태도이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파동으로 전해지는 마음. 질서. 그 마음은 이 세상을 품고, 어루만지고, 이름 불러주고, 그렇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빛의 태도로 드러난다.

그 태도는 결국 나인 것, 내가 아닌 것에 대한, 모든 것이 혼재하고 함께 움직이는 이 거대한 우주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 빛이 비추는 곳, 빛이 고이는 곳, 빛이 퍼지는 곳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등에 대고. 나는 내가 다시 차가운 등으로 돌아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먼 훗날  다시 또 차가운 등으로 돌아갈 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는 여행을 떠난다. 오큘러스의 빛을 마음에 품고. 빛이 부르는 목소리를 내면의 궁륭에 담고 간다.


용수철이 정점에 다다를 때, 운동에너지는 소진된다. 그러나 바로 그때 포텐셜 에너지는 가득 차 결국 우주는 영원히 지속된다. 나는 원형의 우주를 돌며 삶과 죽음 사이에 물결치며 퍼지는 빛의 파동을 따라갈 것이다. 중요한 건 그 파동의 궤적이 만들어 내는 울림(resonance)이다. 빛이 깨워주는 마음과 빛이 닿았을 때, 울면서 태어나는 공간의 반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판테온 신전은 매년 성령강림 대축일에 오큘러스의 눈을 통해 장미 꽃잎을 뿌리는 축제를 연다. 예수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 사도들에게 성령이 새처럼 내린 것을 기념하는 축제다.

떨어지는 꽃비를 맞으며 빛을 본다.

그 곳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가장 정직한 길을 위해 무거운 시간들을 촘촘히 모은다.


숨은 가볍게. 눈은 위로, 위로.

고개를 든다. 바로 저기에 있다.


Resource: Article by Shawn Tribe Liturgical Arts Journal


At that moment heaven was opened,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alighting on him.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Matthew 3:16)






(처음과 끝에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어요)

"On the Nature of Daylight (Entropy)", Max Richter

https://www.youtube.com/watch?v=b_YHE4Sx-08

(Taken from ‘The Blue Notebooks’ (2018)

Resource: MaxRichterMusic https://bit.ly/2lt4TTg

Official Website: http://www.maxrichter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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