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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13. 2022

3. (공간) 사이의 공간

: 세번째 공간 | 공감 - 한옥의 풍경



북촌. PHOTOGRAPHY BY © SOO-JIN KIM

집 안과 밖이 서로 보일 듯 말 듯 낮게 두른 담장.

손 뻗으면 닿을 듯 말듯한 은근한 처마.

그 사이, 주렁주렁 가득한 늦가을



#간(間): Inbetweenness


시간, 공간, 인간, 다 이상한 말이다.

'시' 안에, '공'안에, '인'안에 이미 그 단어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데 굳이 또 그 뒤에 ‘간’이란 말을 붙이고 있다. 시과 시의 사이, 공과 공의 사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

어쩌면 이 ‘사이(in-between-ness)가 존재를 그 존재답게 만들어주는 자리, 존재의 집이 아닐까.

숲에서 나무가 자라는 걸 보면 다 같이 햇빛을 잘 받기 위해 가지와 잎들이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라는 게 보인다. 적당한 거리감 – 가까이 있되 멀리 있고, 멀리 있되 가까이 존재하는 거리감 – 느슨한 여백의 공간이 곧, 자연의 ‘사이’, 간(間) 이다.


주체가 대상을 대할 때 적당한 거리감이 확보되면 대상은 하나의 이미지, 그림, 풍경이 된다.

주체는 속해있던 곳에서 살짝 분리되어 나옴으로 밀려오는 감정과 감각의 파고를 차분히 정리할 공간을 확보한다. 벌어진 거리로 인해서 시야는 확장된다. 부분에서 전체가 보이고, 전체 안에서 부분은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거리의 확보와 확보된 거리를 메워주는 개인의 시선 - 이로 인해서 대상과 대상이 놓여 있는 시공간이 각자에게 의미 있는 장면화, 장소화 되는 것, 이것이 풍경 작용이다.



#한옥, 바람의 집


한옥이야말로 ‘사이’가 공간의 본질이라는 철학에 충실한 건물이다. 이것은 한옥이 자기 안(실내)과 자기 밖(자연)을 다루는 방법을 통해 여실히 보인다. 한옥의 공간에서는 비움과 채움이 유동적으로 바뀌고 섞이면서 흘러간다.


마당, 즉 한옥의 밖은 비어있다.

서양의 정원은 잔디를 기본으로 깔고 크고 작은 식물을 계획적으로 심어 조형적인 자연을 꾸미지만 한국의 마당은 최소로 나무의 수를 제한하고 바닥은 흙바닥으로 둔다.

이는 마당이  집의 소우주,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품는  공간이라는 철학적인 의미도 있지만 과학적인 이유도 있다.

일단 빛을 집의 내부로 부드럽게 끌고 들어오기 위함이다. 한옥의 지붕은 긴 처마로 그늘을 만들어 한여름의 직사광선과 장마의 비를 피하도록 해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집의 내부가 어두워질 수 있다. 비어있는 흰 자갈의, 흙바닥의 마당은 하늘의 빛을 그 몸에 담고 반사된 빛을 처마에 비추어 은은한 간접 조명이 된다. 눈도 마음도 편해지는 차분한 빛이다.


열려있는 마당으로 또 흘러들어오는 것은 바람이다.

햇빛에 달궈진 흙마당 표면의 뜨거운 공기는 대류 현상을 일으켜 위로 올라가고 마당의 땅바닥은 진공상태가 된다.

보통 한옥은 배산임수의 풍수를 따라 숲이나 산을 등지고 지어진다. 뒷산, 또는 뒷마당의 대숲에 고인 서늘한 바람은 기압차를 따라 비어있는 마당으로 흐른다. 바람을 따라 소리도, 향기도 함께 돌아다니면서 집안 곳곳을 채운다.

바람을 막지 않는 낮은 담과 쉬이 열리고 닫히는 창은 자연의 흐름을 집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통로와 조리개의 역할을 한다. 한옥은 자연의 흐름을 조절하고, 자기 내부로 초대하면서 스스로 자연이 되는 공간이다.


한옥에서 창은 ‘만이 아니고 창도 되고 문도 되고, 벽도 되었다가 천장도 된다.

평면에서 공간으로, 접히는 것에서 펼치는 것으로, 닫히는 것에서 여는 것으로.. 이렇게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의 모호성, 침투성, 개방성은 한옥건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움직이는 바람의 공간은 열려있고 흐른다. 순환의 공간감. 공간의 공간인 ‘사이’.  

한옥은 창과 마당과 건물의 모든 요소들을 이용해 다양한 ‘사이 체험을 만든다. 끊임없이 변주하는 공간의 춤을 체험하게 한다.

임석재 교수는 저서 “나는 한옥에서 풍경 놀이를 즐긴다 (한길사 2009)” 통해 이를 차경, 자경, 장경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창덕궁 후원.  PHOTOGRAPHY BY © SOO-JIN KIM

종으로, 횡으로, 열며, 더 깊어진 공간에 들어선 차경


#자연을 대하는 자세: 차경(借景)


차경(빌릴 借, 경치 景)은 ‘풍경을 빌린다’란 뜻이다. 즉, 바깥의 경치를 집 안의 감상자에게 가깝게 당기고 빌린다. 이때, 창은 액자의 역할을 하여 자연의 풍경을 창 안에 머물게 한다. 보통 프레임에 잡는다. 가둔다. 포착한다라고 하는데 옛사람들은 ‘빌린다’라고 한 표현이 재미있다.

빌린다는 뜻은 내 것이 아니지만 잠시 쓰고, 즐기고, 다시 돌려준다는 뜻이다. 즉, 소유가 아닌 체험에 더 중점을 둔 말이다.


한국의 차경은 유리 뒤에서 경치를 수동적으로 관망하지 않는다. 건물의 외피에만 풍경을 그림처럼 평면적으로 가두는 것이 아니다.

이는 미닫이문과 여닫이 문이 중첩되는 한옥의 겹창에서 관찰할 수 있다. 미닫이 문을 열어 평면을 옆으로 열고, 여닫이 문을 열어 공간을 앞뒤로 확장 시킨다. 나를 내보내고 경치를 불러들이며 경치와 ‘나’는 소통한다.

꽃의 냄새와 마당에서 반사되는 빛과 바람을 끌어들이고 같이 놀고  안에 담고 다시 보내는 과정.

적극적인 관조의 자세가 바로 한국의 차경이다.


PHOTOGRAPHY BY © SOO-JIN KIM


미닫이 문을 밀고 닫으면서

공간은 수평으로 분할되고 합쳐진다.

여닫이 문이 수직으로 올려질 때,

공간은 집의 내부에서 터져나온다.

앞으로, 뒤로, 위로, 아래로, 옆으로,

풍경이 흘러 들어오고

다시 나와 함께 나아간다.



#너와 나를 바라보는 거울: 자경 (自景)


마음의 풍경을 보는 자경은 (스스로 自, 경치 景) 내가 나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집 안에서 집의 다른 부분을 보는 것을 말하지만, 집이 나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나’라는 집이 나의 연장인 집(살림)을 보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 살림을 꾸리는 다른 식구들을 살피는 것이기도 하고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통해 다시 내 자리를 되새기는 것이기도 하다.


한옥은 가장 기본적인 유닛인 ‘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증식, 분할하면서 수평으로 펼쳐 나가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중심이 되는 안채(부인의 공간), 사랑채(남편의 공간), 행랑채(손님과 일꾼들의 공간) 동선과 시선을 유기적으로 분리하면서도 은밀히 이어지게 하기 위해 한옥은 ‘자형, ‘자형, ‘자형으로 다양하게 꺾인다.  사이를 적당히 낮은 담과 공간의 켜가 조화로운 리듬을 만들면서 공간과 공간을 잇는다.

이러한 배치에선 한쪽 채에서 다른 채의 공간이 보이고   쪽도 다른 쪽에게 보일 수밖에 없다.


한옥의 배치가 현대의 오픈 플랜과 다른 이유는 바깥의 경계가 명확한 가운데 안에서 안을 보고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이 서로 걸쳐지고 교차되면서 시선과 공간이 계속 전복되기 때문이다.

(사랑채)에서 (행랑 마당) 봤다가,  안의 다른 (안채) 봤다가, 다시 거기에서  깊은 (마당) 보기도 하는 , 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하면서도 세심하게 섞인다. 더불어 마당, 주춤돌, 마루, 방으로 오르내리며 나와 대상의 위치와 시선의 고저가 점차적으로 움직이고 겹치고 비껴간다. 이에 따라 위계와 질서도 미묘하지만 변화무쌍하게 바뀐다.


내가 대상을 보면서 나도 대상에게 보일  나는 관찰자인 동시에 피사체이다.

자경은 내가 스스로 집의 풍경이 되어 나를 돌아보겠다는 자아성찰의 마음이다.

이는 스스로 자신의 몸가짐을 돌아보고 바르게 하겠다는 유교 정신, 증자의 ‘하루 세 번 내 몸을 돌이켜 살핀다’라는 가르침과도 통한다.

자기 수양은  몸을 돌아보는 것에서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하루와 , 나와 남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까지 의미한다.

나와 주변의 관계에서 나의 모습을 성찰하고 재점검하는 것이다. 나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 됨과 동시에  또한 그들의 거울이다.



창덕궁 연경당   PHOTOGRAPHY BY © SOO-JIN KIM

안과 , 안의 안과 안의 

함께 오밀조밀 머리를 맞대고

복잡하지만 은근히 조화로운

나를 만드는 자경



#바라봄이 주는 치유의 힘 - 메타 자아


묵자(墨子)에는  '무감어수 감어인(無鑒於水 鑒於人)'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은 거울이 없어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었다. 묵자의 말의 뜻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말이다.

진정한 자신을 보려면 타인의 마음에 비친  모습을 보고, 그에 따른  몸가짐과 마음을 바르게 함으로써 나를 찾아가야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쿨리는 비슷한 개념으로 ‘거울 자아(looking-glass self)’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하는 ‘거울 자아’는 3가지의 단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 다른 사람이 보는  모습을 상상하는 ,

둘째, 그러한  모습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할지, 타인의 생각을 상상하고 마음을 공감하는 ,

셋째, 타인의 평가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자각하고 자기반성과 확신을 통해 성장하는 .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 되고자 하는 자아상을 만들어간다.


사람의 풍경을 바라보며 받은 배움과,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며 받은 위로를 함께 한 폭에 담을 수 있는 넉넉한 시선. 그 메타 자아의 시선은 결국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자신과 자신이,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치유의 삶을 자아낸다.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우리가 함께 있는 . 집은 소통과 공감의 놀이터. 배움터. 쉼터가 된다.

 마음의 ‘ 만드는 .

 우주를 품은 집의 무대, 이것이 장경이다.


병산 서원. 만대루의 장경 (photography by KirbyKIM, Resource: https://a-platform.co.kr)


#열린 마당: 장경(場景)


자연의 풍경을 빌어오고(차경) 마음의 풍경을 보며 만들어진 공간(자경)  발짝 물러나  그림으로  폭에 담으면 ‘장경(場景)’ 된다.

마당 장場, 시골장터할   () 자와 경치 () 자를 써서 “경치를 하나의 무대로 만든다라는 뜻이다. ,  공간을 사이에 두고 뒤로 물러서서 전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새가 날아가듯 살짝 들린 지붕의 끝자락과  뒷산의 능선이 만나는 것을 본다. ,  아래 아담한 솟을대문으로 반가운 손님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이고. 이내 서로의 마음이 기쁨으로 번진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서 하나의 놀이판, 무대를 만드는 것을 지켜보는 삶.

우리의 빈 터에 삶이 스미고, 흐르고, 어우러지는 풍경을 본다. 그 풍경 안에 있다.

창덕궁 후원 PHOTOGRAPHY BY © SOO-JIN KIM


#인다라의 텅 빈 우주: 멀고도 가깝게 이어져 있는 우리 사이.


한옥의 공간은 서로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은근하게 바라보게끔 비스듬히 포개져있다. 정면으로 마주 봐야 하는 경우, 마루의 높낮이를 다르게 하거나 낮은 담이나 꽃나무 등으로 살짝 변주를 준다. 이는 대립과 경쟁이 아닌 조화와 소통을 강조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차경과 자경의 풍경이 장경이 될 수 있는 건 포개지고 빗겨 난 공간들의 사이, 사이에 놓인 빈 공간 때문이다.

비어있지만 뜨거운 한낮의 햇살을 부드럽게 방으로 반사해주는  자갈이 깔린 마당,

그냥 복도 같지만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실 수도 있는 툇마루,

평소엔 휑하게   같지만 중앙에 서면  집안 살림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청마루,

닫힌 벽이 었다가 착착 접어 위로 들어 올리면 천장이 되어 안에서 안을 여는 들어열개문.


이렇게 다양하게 변주되는  공간들로 바람이 들어오고 빛이 들어와 집의 넓이와 높이, 깊이를 더해준다.

익어가는 마음의 집과 함께 사람의 삶도 함께 자라고 흐른다.  다양한 공간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환되는 우주에 쉬어가는 숨구멍을 만들어준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열린 마당, 적당히 멀고도 가까운 거리로 나에게 몰입하고 남에게 공감할  있도록 해주는 ‘사이’,

아무것도 없는  보이나 모든 것이 차고 고이고 흐르는  터는 바로 무위(無爲) 자연(自然) 공간이다.  


풍경을 보려면 앉아야 한다.

급하게 달려가던 길을 멈추고, 몸을 낮춰,

앉아서 나를, 너를, 우리를 바라본다.


마음의 밑바닥에 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 있을 , 그제야  마음과 주위 사람들의 풍경이 보이고 의미를 알게 되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너의 풍경이  안으로 들어와 한번 휘감아 돌고 나의 풍경과 함께 열린 문으로 다시 나간다. 그렇게 흘러간 풍경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의미가 된다.


서로 다른 시간의 켜가 쌓여

하나로 늙어가는 자리.

북촌. PHOTOGRAPHY BY © SOO-JIN KIM


 우리를 둘러싼 공간이 비워져 있는 이유는 우리가 보살피기 위해서다.

- Seamus Heaney

 

밤바다를 마음에 담고 이곳저곳을 넘나들다 가끔 우주의 별들이 늘어섰을 때 교차했던 너와 나의 길.

너는 내 옆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이는 아직 여전하다. 너와 나의 빛이 그 텅 빈 공간을 비췄을 때,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같이 떨리고 공명할 때 우주를 가득 채웠던 맑은 종소리.

그 소리가 우리 사이, 하늘과 바다 사이, 낮과 밤 사이, 시작과 끝 사이를 가득 채운다.





# 더 나누고 싶은 것: SKETCH BY SOO JIN KIM

요새 아이패드를 장만해서 처음으로 타블렛+펜슬 그림을 그려보고 있어요.

오래된 인간이 새로운 장난감을 만나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스케치로 2006년에 방문했던 북촌을 그려봤어요.

아직도 여전히 따뜻한 곳일까요.

  속에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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