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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3. 2022

9. (사연)겹

: 아홉번째 사연 - 당신 마음 속 공간의 이야기

#아홉번째 사연 - 당신 마음 속 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Photography by Becca Schultz from Upsplash


# 독자님의 사연: 나의 침대 속


침대 속은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 하며, 우리 삶에 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휴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디서부터인지 모를 불안감이 시작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저의 2021년 초반 침대 속 공간은 사실 불안감이 더 큰 곳이었어요. 불면증에 잠을 못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되었는데, 실천으로 옮긴지 얼마 되지 않아 신기하게도 클럽하우스에서 우리 작업의 방 사람들을 알게 되었어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분들의 모습에 많은 응원을 받았어요. 덕분에 저의 공간은 불안보다는 새로운 계획과 기대를 더 많이 품게 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한 해 동안 이전의 나였다면 생각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도전해봤던 것 같아요.

2022년 초입, 이 공간에서 저는 작년의 이맘때와는 다르게 앞으로 만들어갈 새로운 일들을 꿈꿔봅니다. 저에게 좋은 변화를 일으켜 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또 각자의 공간에서 설레는 출발을 함께 그려 나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 수진의 답변: 공간과 공간


가장 처음 사연을 남겨주시고.. 또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S님.

S님의 이야기를 듣고 휴식과 불안이 함께 하는 공간이란 표현이 와닿았어요. 오롯이 혼자이게 되는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침대. 그 곳이 편함과 동시에 불안했다면, 그건 내가 나 자신에게 위로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불안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봐요. 저도 오랫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제 방에는 작은 침대와 창문 앞에 놓여있는 오래된 책상이 있어요. 하루의 끝, 몸도 마음도 추울 때, 책상으로 갈까 침대로 갈까 고민하다가 저도 늘 침대 속으로 도망가곤 했어요.

침대에 누워서도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어요.

오늘 하지 못한 일에 대해 걱정하면서 내일로 넘기고, 내일 할 일을 모레로 넘기면서 계속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면서 더 계획을 세우고,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래서 더 불안해지고, 결국 점점 더 잠이 안 오는..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 떼를 세고 세어도 끝나지 않는 제자리걸음. 그 끝에 마침표처럼 따라오는 자학. 초조. 열등감. 후회. 그리고 슬픔.

위안과 불안 사이에서 밤새 씨름하다 새벽에야 지쳐서 잠이 드는 날이 계속되었어요. 그러다 이 ‘숨어있기 좋은 방’을 발견했지요.


‘우리’ 작업의 방이라고 그러니까 마음에 작고 따뜻한 촛불이 하나 반짝. 켜지는 것 같아요.

클럽하우스에서 작업의 방 사람들을 만나고..매일 학교에 가듯 서로의 하루를 챙기고 끼니를 챙기면서 건네는 소소한 대화들이 저를 침대에서 책상으로 이끌었고, 책상에서 또 방 바깥으로 이끌었어요.

작업의 방, 미술의 마음방, 글쓰는 방, 클래식 음악방, 조용하게 큭큭거렸던 인프제 방까지. 가상의 공간에 모여 얼굴도 모르면서도 다정하게 도란거리던 모임들이 마치 집단 심리 치료처럼 깊이 가라앉던 제 마음에 위로와 자극을 던졌어요.


코로나 때문에 모두 갇혀 있을 때, 각자의 방 안에서, 침대 안에서, 자신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때, 우리에게 서로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각자 서로 다양한 일들을 하던 사람들이 담 없이, 이름 없이, 욕심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면서 손을 잡아줬지요.

없지만 있는 공간. 흘러가지만 남은 시간.. 그건 우리의 마음과 마음이 만나서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이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그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공간, 이 세계에 숨어있는 이(異)세계의 공간이 있어서 우리를 품어주었다가 다시 밀어주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주고, 등을 밀어준 시간이 쌓일수록 우리 모두 단단해졌을거에요. 여전히 불안의 파도는 찾아오지만, 그 파도를 타고 먼바다까지 나아가고 싶어졌으니까요.


한동안 제 방 책상 옆에는 라벤더와 수국, 단풍이 계절에 따라 자리를 비켜주며 놓여 있었어요.

예쁜 꽃을 보면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작고 어여쁜 꽃들이 더 자주 눈에 들어왔어요.

사람들이 서서히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고…지난 시간 동안 우리가 웃으면서 함께 놀고, 배우고, 만들고, 때론 같이 고민하면서 빚었던 구슬들. 그때는 두서없는,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했던 미생의 것들이 서서히 하나로 꿰어지는 걸 바라봐요.

각자의 자리가 저마다의 환한 빛으로 점점 반짝거리는걸. 날이 밝고 있다는걸.


0+12개의 공간 이야기

(아홉번째 공간|공감 이야기, “겹, 공간과 공간”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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