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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3. 2022

9. (공간) 공간과 공간

: 아홉번째 공간 | 공감 -이보나 흐미 엘레프스카의 그림책 속 공간



슬픔이 나를 깨운다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공손히 읍하고 온종일 나를 떠나지 않는다.
슬픔은 잠시 나를 그대로 누워 있게 하고
어제와 그제, 그끄제, 그 전날의 일들을 노래해준다.
슬픔의 나직하고 쉰 목소리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슬픔은 가볍게 한숨지며 노래를 그친다.
그리고, 오늘은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모르겠어…… 나는 중얼거린다.
 
슬픔은 나를 일으키고
창문을 열고 담요를 정리한다.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외출을 할 때도 따라나서는 슬픔이
어느 결엔가 눈에 띄지 않기도 하지만
내 방을 향하여 한발 한발 돌아갈 때
나는 그곳에서 슬픔이
방 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숨어 있기 좋은 방 (*)

(* 노트: ‘숨어 있기 좋은 방’이란 제목은 가수 이지형 씨가 보컬로 활동하던 밴드 위퍼(Weeper)의 곡 ‘숨어 있기 좋은 방’ (Our Nation 2 (compilation album)에서 따왔습니다. 알고 보니 작가 신이현 님의 1994년 데뷔작 제목이 ‘숨어 있기 좋은 방’ 이더군요. 미술 작가 최인호 씨의 동명의 연작 시리즈도 있어요. 모두 나누고 싶었지만, 저작권 상 올리지 못했습니다. )


글을 쓰기 시작하고, 얼굴을 모르는 타인들과 대화를 시작하면서 종종 그들의 이야기에서 나의 20대를, 30대를 또는 미래의 모습을 본다. 나는 우주와 내 존재가 소용돌이처럼 계속 나선을 따라 돌면서 어딘가의 지점으로 팽창, 동시에 소멸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타인과 이런 접점이 생길 때면 우주적 소용돌이의 시공간 어딘가에서 작은 웜홀이 생기고, 그 균열의 틈을 통해 우리가 서로 마주 보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한다. 어두운 공허와 끝없는 별을 넘어 마침내 서로 눈을 보고 있는, 손을 마주대는 상상.


마음 안에 들어있는 친구들과 언니들, 동생들, 가까운 곳에서 또 먼 곳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은 웜홀을 뚫고 나에게 다가온 소중한 인연의 별이다.

서로 너무 바빠 가끔씩 우주의 별이 십자로 늘어질 때만 겨우 만나게 되지만 볼 때마다 바로 어제 본 듯, 잠시도, 조금도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친구들. 한 번도 얼굴을 보고 만난 적은 없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하루의 기분을 알아차려 주는 지인들.


내 마음이 어두워질 때면 준비되어 있다가 하늘에서 내려지는 동아줄처럼, 평소에는 조용한 이 마음의 공간, 관계의 공간은 내가 너무 힘들어질 만하면 어느새 알아차리고 갑자기 복닥거린다.

마치 온 우주가 날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이, 슬픔이 나를 침대에서 일으켜 오늘은 뭐 할래.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보듯이, 아무 목적 없이 연고 없이 그저 좋은 하루를 빌어주는 관계. 무조건 괜찮아. 잘했어. 잘할 거야. 응원해주는 마음.


혼자 틀어박혀 세상 모든 궁상 다 끌어안고 웅크리고 싶은데, 숨을 테면 내 안에서 숨어. 라며 울타리가 되어주었다가. 자 이제 울 만큼 울었지? 이제 나가자. 하고 손을 잡는다.

이들과 내가 같이 손을 잡을 수 있는 건. 우리가 다 금이 간 영혼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다정한 슬픔의 연대. 우리는 이름으로, 사회적 위치로, 능력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 만났다. 숨어 있던 그 방에서 서로가 날 것일 때 만났다. 섯부른 위로를 던지지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아 서로를 기다린다. 서로가 숨어 있는 방에서 얼굴을 빼꼼이 내밀때까지.




#공간 속의 공간(nook): 옷장, 책상 밑, 커튼 뒤, 창틀(Bay Window), 다락방

 

모든 집은 공간 속의 공간을 숨기고 있다. 어릴 때 내가 자주 숨었던 공간은 책상 밑이었다.

책상 밑, 살짝 틈을 열어둔 옷장 안같이 내 뒤와 옆은 안전하게 막혀 둘러싸이고, 앞은 살짝 보여서 다가오는 것들을 파악할 수 있는 반 폐쇄 공간이 주는 묘한 안정감이 있다. 아이들과 고양이들은 귀신같이 이런 공간을 찾아낸다. 상자 안에 들어가 몸에 꼭 맞는 공간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듯, 숨어있기 좋은 방으로 들어가 내 몸의 구석구석을 맞대고 나를 가늠한다. 내가 나여도 괜찮은 곳에서 안심한다.


곡선과 나선이 만나고 포개져 만드는 커튼 뒤 살랑거리는 공간도 비슷한 공간이다.

부드러운 패브릭의 촉감은 나를 감싸주고 감춰주는 동시에 드러낸다. 숨바꼭질하는 아이가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다. 숨어 있지만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면서, 눈은 가리고 발은 빼꼼히 보이면서 기다리는 공간. 고독하지만 절망하는 곳이 아니라 조용히 기다리면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앞을 주시하는 공간이다.

출처: “주머니에 뭐가 들었을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폴란드 출신이지만 한국에서 더 많이 활동하는 동화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책  ‘주머니 속에 뭐가 있을까’는 이런 숨은 공간을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보여준다. 직접 손바느질로 아기자기하게 만든 색색의 주머니 안에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다.

기욤, 링링, 지민 등 각국의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이 아이들의 주머니에 뭐가 있을까?” 물어보고 뒷장을 열면 그 튀어나온 형체는 토끼의 귀가 되기도, 새의 부리가 되기도, 청초한 은방울꽃의 잎사귀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무엇’이라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무서운 것’, ‘슬픈 것’ ‘향기 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숨어 있는 그 보드라운 공간을 열어 보게 되는 것들은 어떨 때는 무서운 것, 슬픈 것이었다가 또 향기 나는 것으로 변한다. 이름 지어지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이름 없이도 충분한 것들. 무엇이든 나오는 보들보들하고 비뚤배뚤한 비밀의 주머니를 아이들은 하나씩 가지고 있다. 그 안에 숲에서 주운 새털이나 계곡에서 찾은 조약돌, 모자에서 떨어진 장식, 한여름의 기억이나 여린 마음 같은 것들을 고이 넣어두고 가끔 꺼내 보며 소중해한다.


Link: Iwona Chmielewska “ W kieszonce”

https://youtu.be/cFiy_BPCBUY


#공간과 공간이 손잡는 곳: 계단 (stairwell)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간의 본질은 움직임을 거쳐야만 이해될 수 있다.
‘진심의 공간’,김현진
Kairos Pavilion by Joao Quintela and Tim Simon (Resource: Dezeen.com)


숨어있는 방에서 나오면 우리는 복도를 지나 계단을 만난다. 계단은 공간과 공간이 손을 맞잡는 곳이다. 혼자 걸어온 복도를 지나 계단에 나오면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또다른 공간이 자, 이제 같이 가자. 내가 새로운 곳을 보여줄게. 하고 손을 내민다.

계단에 설 때마다 자꾸 나는 내가 발을 헛디뎌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는 아찔한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더더욱 발끝에 주의를 기울이고 손으로 난간을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오르고 내린다. 계단은 온몸으로 공간을 쓰고, 그래서 온몸으로 공간을 감각하는 곳이다.


계단이 다른 공간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수평의 공간감에서 수직의 공간감으로 변하는 운동성, 확장성에 있다. 그 이유로 계단은 미지의 공간이 된다.

보는 시선의 위치, 동선의 방향, 심지어 지나는 속도에 따라 순간순간 다른 공간을 체험한다. 어느 때엔 불안으로 어느 때엔 설렘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다른 것으로 변해간다.

안전을 위해서 가장 제약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호주에서 계단 한 칸의 폭은 300mm, 높이는 166m정도가 권장되고 한꺼번에 18개 이상의 계단을 오를 수 없다. 시작과 중간, 끝에 적어도1.2m정도의 계단참을 두어 숨을 돌리도록 한다. 난간의 크기부터 재료의 미끄러짐까지 철저히 계산하여 디자인하는 곳. 공학과 미학, 장식과 기능이 만나는 집약체가 계단이다.


계단을 걷다 보면 몸이 일정한 높이와 폭에 만들어내는 리듬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사고가 나기 쉽다.

폭의 길이, 계단칸의 높이, 계단 재료의 촉감, 빛, 계단과 단 모양의 디테일에 따라 내가 지나는 공간의 배경과 걸음의 속도, 몸의 자세가 달라진다. 계단이 가파르면 몸을 살짝 앞으로 기대면서 땅만 보고 가게 되고, 완만하면 가슴을 펴고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면 오히려 두세 칸씩 휙휙 한 번에 오르다가 더 숨이 차기도 한다.


이러한 계단의 오르내리는 경험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건 난간과 난간 손잡이이다.

계단이 방향을 바꾸는 경우 난간도 계단의 방향을 따라가면서 계속 이어진다. 난간의 손잡이를 ‘손 스침’이라고 하기도 한다. 손길, 눈길, 발길이 스쳐 가는 길. 난간은 계단과 같은 높이차로 딱 한 발짝 물러나거나 한 발짝 앞서서 따라간다. 그래야 평면상 같은 점에서 만나게 된다. 몇년전 완공한 프로젝트Hill House에서는 난간 이음에 오히려 살짝 틈을 주어서 여운을 남겼다.


Hill House by Architecture Saville Isaacs, Photography by Kata Bayer
손바닥으로 살살 벽을 쓸면서 걷는  좋아한다. 모두가 빠르게 지나쳐  , 벽은 옆에서 속살을 내주고 천천히 같이 걸어준다. 벽과 함께 걸으려면  수가 없다. 벽의 촉감이 주는 안도감이 천천히 마음에, 몸에 스며들도록  걸음,  걸음 호흡하며 걸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서서히 벽이 인도하는 공간이  발끝에서 열린다.

스케치에서 보이는 삐뚤빼뚤하고 조금  지나치는 선들을 좋아한다. 서툰 리듬에 몸을 맡기고 조금  내어주는 마음을 좋아한다. 어긋난  같지만 결국엔 기어코 만나고 마는 선들을 좋아한다. 그렇게 끝없이 연장되는 공간의 속삭임을 좋아한다.

계단을 만날  피어오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좋아한다. 수평의 공간이 위로 또는 아래로 확장, 변주될  울리는 음악, 리듬, 설레임.  설레임을 하나하나 밟아갈  옆에서 조용히 함께 걷는 난간의 춤을 좋아한다. 손끝으로 하나하나 쓸어가면서, 천천히 가라고. 넘어지지 말라고. 손잡고 가자고.

(2021.3.17 수진’s Sketch note)


#이끌어내는 손, 겹치는 공간과 공간

: ‘마음의 집’ 이보나 흐미엘레스프카 그림, 김희경 글


계단 안에 수많은 몸짓과 시선이 숨어 있듯, 마음 안에도 수많은 공간이 숨어 있다.

그림책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한 ‘마음의 집 (MAUM – House of the Mind)’ (이보나 흐미엘레스프카 그림, 김희경 작가 글)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집에 비유하고 시적인 일러스트를 통해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방, 화장실, 문, 창문, 계단, 의자 등 사물을 통해 마음의 공간성과 입체성을 생각하게 이끌어준다. 마음은 비둘기, 눈이 보이지 않는 이의 하늘을 닮은 손, 아이를 안은 할머니의 품, 오르는지 내리는지 알 수 없는 계단,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출처: https://iwonachmielewska.pl/


위에서 내려다보는 수직의 구도, 거울에 비추듯 대칭적인 구도, 여백이 넉넉한 공간에 세심하게 그려진 그림과 글은 두 페이지가 한 쌍으로 거울에 비추듯 마주 보게 놓여 있다.

나와 너의 마음처럼. 페이지가 넘겨질 때 이 마음의 공간은 살아나 움직인다. 문은 열리거나 닫히고, 거울에 비친 모습은 자신과 겹치고, 아이는 할머니에게 안기고, 손은 맞잡고, 비둘기는 날개짓한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작품 속에 여백과 대비되는 장면으로 공간을 자유롭게 꾸미고, 사물과 사물 사이 여백의 공간으로 독자가 ‘들어가면서’ 주인이 되게끔 이끌어준다. 마지막 페이지는 거울 같은 은박지로 되어 있다. 대칭으로 놓인 페이지에 반쯤 걸쳐있는 ‘MAUM’이란 글자는 거울에 비쳐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마음 위 일렁이는 자기 얼굴을 바라볼 때 독자는 이미 넉넉한 마음의 집에 있다.  



네 ‘마음의 집’이 잘 보이지 않을 때
 스러져 갈 때
 마음의 방에 혼자 있을 때
 창밖으로 비가 올 때라도
 걱정하지 마.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그 마음들이 네 마음을 도와줄 거야.
 언제나 너를 도와줄거야.
‘마음의 집’, 김희경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한때 ‘서늘한 여름밤’이란 팟캐스트를 즐겨들었다. 30대의 여자 3명이 모여앉아 심리. 상담, 문화에 대한 이야기,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였는데, 내가 그 팟캐스트에 빠져든 이유는 특별한게 아니었다. 도란도란 누군가 수다를 떨고 있으면 응. 응. 그치. 그러면서 받아주는 목소리가 자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고개 끄덕끄덕 주억거리면서 열심히 들어주는 마음. 그 마음이 예뻐서 자주 들었다.


응. 응. 맞아. 그랬구나. 그렇게 받아주는 목소리로 가득한 클럽하우스의 공간에서, 바쁜 출근길 기차 안에서 익스프레스로 친구와 나누는 안부에서, 피곤한 퇴근길 오늘 하루 어땠니? 물어보는 엄마와의 통화에서 나는 날아오르는 계단의 마음, 다정한 손 스침의 마음을 느낀다.

한 발짝 뒤에서, 한 발짝 앞에서 겹치면서 나와 손잡고 걸어주는 나직한 마음. 한 걸음 내딛는 나의 마음과 한 걸음 떼는 당신의 마음이 우리가 함께하는 마음의 집에서 겹친다.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위로, 아래로, 하늘로, 바다로 퍼져나간다.


내 마음을 바라보는 조용한 시선은 우리를 헤아리는 공감의 마음으로 번진다.

그렇게 공간은 열리고, 닫히고, 다시 손잡고 열리면서 흐른다.



#더 나누고 싶은 것:

마고할미의 책 읽어주는 밤: 김희경 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마음의 집

https://www.youtube.com/watch?v=gF6NI2UXZz8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가 마음의 집 그림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시며 읽어주시는 채널이에요. ‘걱정’를 ‘극정’으로 말씀하시는 목소리 덕에 더 정겨워요. 우리 모두, 극정하지마.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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