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번째 일기- 기억나는, 기억나지 않는 너에게
#열번째 일기 - 그 골목의 너.
기억나는, 기억나지 않는 너에게
골목: 큰길에서 들어가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런던에서 시드니로 막 돌아왔을 때, 답답한 마음에 자주 걸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같은 길을 걷는 기분. 재미도 없었고 위안도 되지 않았다.
런던의 기억은 늘 발끝에 있었다. 늘 어디론가 걷고 있었고, 걷다보면 볼 것도 생기고, 만날 사람도 생기고, 그러다보면 어수선해진 마음이 어느덧 개운해지곤 했다.
최근에 각 도시별로 여행했던 옛 사진을 돌아보다가 그 이유가 도로의 폭과 블록의 길이에 있었음을 깨닫고 새삼스러웠다. 도시마다 길의 볼륨에 따라 형성되는 땅의 얼굴이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폭, 한번에 걷는 길의 끝과 끝까지의 길이, 양 옆의 건물 높이에 따라 내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고, 발로 걷는 공간의 깊이와 내용이 달라진다.
시드니에서는 모든 걷는 길이 차의 주행에 맞춰져 있기에 걷기에는 불편했다. 거리는 너무 길거나 짧았고, 길의 폭은 너무 넓고 건물의 높이는 너무 낮았다. 반면 런던에는 어릴 적 내가 자란 골목의 얼굴과 비슷한 곳들이 곳곳에 많았다.
유럽의 골목은 옛날 마차의 크기에 맞게 설계되어 딱 말 두마리가 나란히 걸어가기 적당한 폭이다.
한국의 옛 골목도 비슷하다.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기엔 불편하지 않지만 차가 들어오면 살짝 불편한 거리. 양 옆으로 2-3층의 건물이 마주보고 들어서 고개를 들면 하늘이 가깝게 느껴지는 깊이.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양 팔을 벌리면 위로도, 옆으로도 서로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감.
이런 곳에선 집의 공간이 바깥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집의 사이에 놓인 길 마저 집의 연장선이 되어 섞이는 골목의 공간. 나는 그런 곳에서 나서 자랐다.
한국을 떠나 넓고 평평한 블록형으로 이어진 서구의 도로에서 잠깐 잃어버렸던 감각을 유럽의 골목에서 다시 찾았다.
골목 또는 골목길(영어: alley(way))은 건물 사이나 뒷면에 형성된 길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폭이 좁아 소수의 보행자만 통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에 많이 나타난다.
(출처: 위키백과)
건축계에서는 도시 재생이 늘 화두이다. 도시 재생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는 옛 골목의 부활이다. 그건 단순한 골목 공간을 만들고 보존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그 공간에 스민 시간, 기억, 삶의 온기를 지키고 싶은, 그리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울에서만도 이제 골목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람들이 골목을 그리워하는 건, 이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던 다양한 인간관계와 일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시공간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깝게 만든다. 그 곳에서 나는 그저 나일 뿐이거나 아니면 내가 속한 큰 그룹안에서 사라질 뿐이다.
나이지만 살짝 부풀어올라 확장된 나. 빈 곳이 있는 나, 그래서 부드러운 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히 멀지만 적당히 다정한 관계, 여유, 친절, 사람에 대한 예의….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건 휴먼 스케일의 친밀한 공간과 그 곳에서의 경험이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공간. 골목의 공간.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그런 공간이 있어야 숨 쉴 틈이 생긴다.
그렇다면 좁은 공간을 다시 만들면 그 때의 그런 관계와 일상도 회복될까?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려야할까? 우리는 애초에 왜 그런 관계를 지금 더 그리워 하는 걸까? 정말 그리운 걸까?
질문의 시작은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질문과 질문을 따라가면서 내가 마주하게 되는건 건물이 아닌 공간에 새겨진 나의, 너의, 우리의 기억들이다.
기억은 왜 기억으로 남게 또는 남지 않게 되었을까, 앞으로도 남을, 남지 않을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자꾸 질문하다보면 난 누구인가, 왜 여기 있는가를 묻게 된다. 결국. 나는 언제나 그것만이 궁금했다.
(열번째 공간|공감 이야기, "틈, 공간의 숨"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