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Oct 14. 2022

10.(공간) 공간의 숨

: 열번째 공간 | 공감 -골목, Shadowline, 게슈탈트

#골. 골짜기의 신


북촌과 베니스. 골목의 공간. Photography by Su Jin Kim


제 6장


谷神不死,是謂玄牝。玄牝之門,是謂天地根。綿綿若存,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는다

이를 그윽한 암컷(현묘한 어미)라고 한다

그녀의 문을 일컬어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한다

아득하게 이어지고 또 이어져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6장)


우묵한 골짜기로는 무엇이든 자꾸 흘러들어간다.

물도, 바람도, 숨도 그 쪽으로 난다.

이는 골짜기가 텅 비어있어서 그렇다. 흘러들어가도 거절하지 않고 그냥 받는다는 것. 우물간 골짜기는 열려 있어서 또 그렇게 자꾸 나간다. 잠깐 고여있다가 다시 흘러나간다. 그렇게 한 없이 다시 주고 받는 것. 무언가 자꾸 들어오니 채워지지만, 다시 나가니 텅 비어있다. 살았다 죽었다 할 수도, 내 것이다 네 것이다 할 수도, 있다 없다 할 수도 없으니,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죽지 않고 마르지도 않는다. 이것이 ‘골’의 현묘함이다.


골목은 이런 현묘한 ‘골’자를 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목’자도 품고 있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목, 골짜기로 나가는 목. 동네의 큰 길(세상)과 나의 집(나)을 잇는 사이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이 골목이다. 세상과 나 사이 Buffer가  되어주는 부드러운 어미의 공간. 갈라지고 합쳐지는 경계의 지점, 숨이 통하는 길이 골목이다.


골목은 단순한 이동의 통로가 아니라 생활의 통로이다. 그래서 길의 끝에서 끝으로 가는 방향도 중요하지만 마주보는 건물 사이의 틈에서 펼쳐지는 쌍방향의 교류가 중요하다. 내 집 사람과 앞 집 사람이 함께 손을 뻗어도 넉넉하고, 함께 손을 뻗으면 닿을랑 말랑 온기가 느껴지는 정도의 거리. 그 안에서 서로 나누는 마음이 골목이다.


#틈, 넉넉한 경계

숲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 수관 기피 현상 (Crown Shyness)

울창한 숲의 안에서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종종 나무의 폭 (spread)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 ‘수관기피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나무의 윗 가지들이 서로 햇빛과 바람을 차지하기위해 맘껏 몸을 뻗어 자라다가도, 가지와 가지가 서로 닿을 것 같으면 떨어지려고 몸을 사리는 것이다. 아마도 병충해나 서로 가지고 있는 독성이 맞닿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겠지만 보기에는 마치 수줍어 몸을 움추린 것으로 보여서 이를 ‘수관의 수줍음’ (Crown Shyness) 이라고 한다.


빽빽한 숲이어도 이런 수관의 수줍음 덕택에 하늘에 길이 나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경계를 잇는 길이면서 바람과 햇빛이 들어오는 통로이다. 자신의 성장에 오롯이 집중하고, 자신을 지키면서도 다른 나무와 공존하기 위한 나무의 성질. 그 전체의 풍경이 숲의 얼굴을 만든다.


경계란 어떤 것이 거기에서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인들이 인식했듯
거기로부터 어떤 것이 자신의 본질을
펼쳐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 하이데거

 

나의 본질은 내 안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가 아닌 것과 만나는 지점, 경계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건 내 안의 생각과 기억이지만 그걸 드러내는 건 나의 태도이다. 때로 이 태도가 생각과 기억을 만들어가는 본질일 수 도 있다.


나무를 나무로 만들어주는 것이 공존의 태도이듯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건 서로를 향한 다정함이 아닐까. ‘틈’이라는 공간은 다정함이 잘 발현되는 공간이다. 적당한 틈은 공간을 빈 공간으로 보기보다 주변을 아울러 전체로 보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게슈탈트, 틈을 품은 전체, 전체를 품는 틈


디자인에는  게슈탈트 (Gestalt)라는 개념이 있다. 게슈탈트란 전체적 모양, 형태, 무늬, 모습, 형상등의 의미를 뜻하는 독일어로 우리가 대상을 지각할 때 그것들의 산만한 부분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의미있는 전체, 즉 ‘게슈탈트’로 만들어서 지각한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을 디자인에도 이용하고 심리학에도 적용하기도 하는데, 주체가 형태를 게슈탈트로 만들어 인식하는데에는 다음 법칙이 있다(7 principles of Gestalt)


-      전경과 배경(Figure Ground):

요소들은 형태 또는 배경 둘 중에 하나로 인식된다.

-      근접성(Proximity):

서로 가까이 있을 때 더 연관되어 보인다.

-      유사성(Similarity):

비슷한 특징이 있는 것들이 더 통합되어 보인다

-      연속성(Continuity):

많은 연속의 가능성이 있을 때 매끄러운 선이 생기도록 정리된다.

-      폐쇄성, 단순성 (Closure/Simplicity):

복잡하게 구성된 물체를 볼 때, 하나로 인식 될 수 있는 완성된 패턴을 보려고 한다.

-      공동 운명 (Common fate):

방향이 같은 것,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들은 한 그룹으로 분류된다.

게슈탈트의 예시


골목도 이 게슈탈트의 법칙이 공간에서 발현된 예시가 아닐까 싶다. 골목이라는 좁은 공간을 통해 우리는 집과 집을, 사이의 공간을 그 안의 사람을 아우른다. 그 안에 고여있는 기억, 사람과 공간의 마음이 한 없이 수줍고 다정하다.



#섀도우라인(Shadowline): 숨, 쉴, 틈


이런 게슈탈트 법칙을 건축에 적용한 한 예로 섀도우라인(Shadowline)을 들 수 있다. 직선의 흠을 공간의 빔으로 아우르는 건축 디테일 기법이다.


다른 두 면, 예를 들면 벽과 천장이나, 걸레받이나 벽면이라던가, 아니면 부엌 찬장의 문과 문 등, 수직 또는 수평선에서 두 물체가 만날 때 남기는 10mm, 20mm정도의 간격, 틈을 섀도우라인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 용어이기도 하다.


두가지의 다른 재질, 또는 평면이 맞닿을 때, 그 가장자리들이 항상 완벽하게 들어맞기는 힘들다. 이를 무시하고 둘이 바짝 붙이면 오히려 불균형적인 틈이 더 부각되어 전체의 만듬새가 떨어진다.

전통적 건축에서는 이를 덮고 감추기 위해 장식이 발달했다. 코니스(Cornice), 걸레받이 (Skirting)등은 이 불완점함을 감추기 위해 덧붙여진 부분이다. 현대 주택에서는 이런 불완점을 오히려 드러냄으로 보완한다. 틈을 일부러 살짝 더 남겨두어 서로 안 맞는 가장자리의 평행선을 틈의 공간으로 아울러주는 것이다. 보통 이 틈은 P50나 다루기 쉬운 무른 목재로 채워서 마감하는데 , 양옆의 면들보다 살짝 물러나게 해서 틈에 고이는 그림자로 시각적인 직선을 만든다.


안 맞는 선들을 공간으로 덮기 위해서는 공간이 생기기 전부터 미리 틈을 계획해야 한다. 즉, 미리 전체를 보고 준비해야 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부분에서 전체로 나아가는 것이 전통적 방식이라면 전체에서 부분으로 품는 치밀한 단순함이 현대 건축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Hill House by Architecture Saville Isaacs,  Photography by Kata Bayer
Hill House에는 섀도우라인을 Natural brass로 마감했다.
손가락을 넣어 찬장문을 여는 손길에 따라 산화되는 브라스의 흔적으로
생활의 기억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것이다.


선이 둘러지면 길이 난다.

그림자가 지나는 길. 때론 이 길에 조명을 숨겨서 멋진 대리석을 비추기도 하고, 손가락이 살짝 들어가는 홈을 넣어 핸들 대신 쓰기도 한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사이의 공간으로 빛과, 바람과, 손길이 지나간다. 시간이 스며들어 기억을 남긴다.


건축가라는 이름이 무거워 자신이 없어질 때, 내가 만드는 것은 면이 아닌 사이의 길이라는 생각을 한다. 날카로운 두 선이 만나 서로 다치지 않도록, 그 선들을 품을 그림자 길을 넣어주는 일.  숨, 쉴, 틈을 만들어 주는 일.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에 두께가 없는 칼날을 넣어 자유로운 장자의 포정처럼, 마음으로 보고 싶다. 그 때까지 늘 두려워하고 경계하면 천천히 천천히. 하나, 하나, 다정하게 만지며 가고 싶다.





# 더 나누고 싶은 것:

제가 건축의 길을 잃을 때마다 돌아가게 되는 마음의 닻이 몇 있는데, 승효상 선생님의 글이 그 중 하나 입니다. 원래 오늘 글에서 승효상 선생님의 건축철학을 소개 하고 싶었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기회로 나눴어요. 살짝 구경하시고 싶으시다면…


승효상 선생님의 저서: ‘빈자의 미학’


* 제가 승효상님의 책,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https://brunch.co.kr/@vhee000/57


0+12개의 공간 이야기


이전 21화 10. (일기) 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