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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5. 2022

11.(공간) 공간의 노래

: 열한 번째 공간 | 공감 - 윤동주 문학관,  이소진 

#시심(詩心)의 공간

운주사의 와불 (출처: Upsplash)

시인이신 한 친척은 일상에서 시를 쓸 소재가 동이 나면 훌쩍 운주사로 떠나셨다. 

그곳에 가셔서  ‘시를 줍는다’라고 하셨는데, 어린 나는 그곳에서 돌멩이처럼 길에 누워 있을 시는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  


굳이 운주사로 시를 주우러 가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시가 스며든 흔적을 본다. 겨울나무에 걸린  누군가의 외투라던가 아무도 쓰지 않아 쥐어짠 모양대로 바싹 마른행주 같은 흔하고 사소한  물건에도 시가 튀어나올 수 있다. 그냥 툭. 나의 우주에 던져진 우연의 물건이나 사건에서 어떤  이야기가 읽힐 때, 그냥 무심히 지나가기 힘들 때, 시를 불러일으키는 마음, 시심(詩心)이  찾아온다.  


시는 무엇일까. 시는 인식이다. 시는 발견이다. 시는 보는 것이다. 

열 번 백번을 무심히 지나친  길에서 갑자기 돌 하나가 비뚜로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올 때, 시는 거기에서 발견된다. 그  돌멩이에 자꾸 걸려 넘어지는 이의 모습이 아플 때, 시는 거기에서 쓰인다. 늘 지나치던 곳에  낯설게 놓인 돌멩이 하나. 그 안에 담긴 세계를 주워 깨끗이 씻어 선반에 올리는 것.  


공간에 스민 시도 그렇게 발견된다. 내 삶의 배경인 줄 알았던 공간의 모서리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일 때, 낡은 벽의 무늬가 누군가의 기척이었구나라고 알아차릴 때, 내가 걷는 길이 내가 걷는  모양을 남긴다는 것을 바라볼 때, 공간은 일상의 공간에서 시심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른 공간이 된다.  


결국, 공간 속의 시와 시 속의 공간이 뜻하는 것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물리적 공간이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면서, 공간에 스민 시가 발견된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의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돌이 만드는 시의 공간은 문을 연다.



#이야기의 힘

Resource from Leeon Architects (https://leeonarchitects.com/)
Resource from Wikimedia Commons, Image by Jjw
Resource from Leeon Architects (https://leeonarchitects.com/)


인왕산 끝자락,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은 사실 윤동주와 큰 연결고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자료나 연고로 따지면 연세대학교의 윤동주 기념관이 훨씬 많다. 

윤동주가 잠깐 하숙 생활을 했고 인왕산에 올라 시를 썼다는 배경으로 계획된  청운동 문학관은 그에 비하면 소박하다. 하지만 이 건물은 건축물이 지어진 과정, 스토리텔링의 힘을 통해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윤동주의 시를 떠오르게 하는 고유한 시적 정취를 품고 있다. 


시인이 자주 올라 별 헤는 밤, 자화상 같은 시를 썼다는 인왕산 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가의 버려진 창고를 문학관으로 재탄생시키려는 기획을 맡아 이소진 건축가가 설계를 시작했을 때, 건물은 지금의 최종 모습과 많이 달랐다. 순수하고 군더더기 없는  윤동주의 시를 닮은 차분한 외관, 길에서 바로 진입하던 옛 입구를 측면으로 비틀면서 길을 따라  서서히 접근하도록 설계된 수줍고 소박한 공간은 설계 도중 지면 속에서 숨겨진 물탱크가  발견되면서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도면 하나, 기록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계속 존재했던 수도가압장. 우연히 산사태가 생겨 벽의  한쪽이 노출되었고 구조안전진단을 하다가 땅 밑에 숨겨진 물탱크 두 개가 발견되었다. 

작은  철판의 구멍을 통해서 들어가 만난 공간은 깊고, 어둡고, 긴 세월 동안 웅크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고여 있던 우물. 건축가는 우물의 뚜껑을 열어 하늘을 들였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벽에  새겨진 물의 지층을 그대로 살리고, 하나의 우물(닫힌 우물)에는 어둠이, 하나의 우물(열린  우물)에는 하늘이 담기도록 설계를 바꾸었다. 닫힌 우물에는 시인이 겪어왔던 고초와 고뇌의  삶이 어둠으로 잠겨있고, 열린 우물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 구름과 별을 만난다



#우물의 이야기, 공간의 노래

Resource from Leeon Architects (https://leeonarchitects.com/)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시 속의 맑고 이상적인 세계와 혼탁한 세상의 흙탕물 사이에서 한없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던 시인.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우물을 파고 들어갔다.  

미워하면서도 버릴 수 없어 자꾸 돌아가던 가여운 자아는 그 성찰의 과정을 통해 그리워지고 추억처럼 담기며 시인은 앞으로 나아간다. 별로 돌아간다.  


세월이 간직된 낡은 벽의 질감은 시인의 인생을 건축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한 편의 시다. 

닫힌  공간의 어둠과 열린 공간의 빛의 대비를 통해 삶과 죽음 사이 놓인 존재의 떨림이 더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어떠한 전시물보다도 더, 빈 공간은 거울처럼 시인의 마음을 비친다. 

그리고 시간과  기억이 퇴적된 공간을 따라가며 시인의 우물에 비친 모습이 나의 우물로 투사되는 순간, 공간의  시와 시 속의 공간은 관람자의 마음으로 침투한다.  


한때, 내 손바닥 안에 깊은 우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다가오거나 멀어질 때 눈물처럼 차오르던 손바닥. 그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고, 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싶을 때 그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잠을 잘 때마다 습관처럼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고, 내 작은 아이는 그 모습이 슬퍼 보인다며 가만히 손을 내려주어 내 눈을 바라봤다.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부는 곳. 그곳에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 나는 늘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제는 아직도 여전히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고맙다. 

결국 우물을  찾아갈 수 있어서, 아직 우물이 거기에 있고 추억의 내가 거기 있어서 고맙다.  

계속 부끄러워하고, 더 용기를 내어 하루하루를 걸어야 할 것 같다. 

땅 밑에 숨어 있는 깊은  우물을 찾는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그 안에 비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청명하게, 나답게  살고 싶다.


Resource from Leeon Architects (https://leeonarchitects.com/)




#더 나누고 싶은 것: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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