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중순, 지인의 추천으로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읽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한참 호주로의 유학과 이민을 준비하고 있었던 때였고 그 지인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소설임을 감안하면 당시 기준으로 꽤나 정확하게 이민 프로세스를 담고 있었음은 물론이고 주인공 “계나”의 심정이 1인칭으로 이야기하듯 서술되어 있어서 술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당시의 나는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터라 계나에게 스스로를 투영하며 알지 알지, 내가 이 심정 잘 알지! 를 연방 외쳐대며 읽었더랬다.
대기업 직장인. 한때는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않나?' 하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던 나의 타이틀은 나를 매일 통근버스로 밀어 넣어 하루 2~3시간을 길 위에 버리게 했다. 퇴근 후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남지 않아 대충 음식을 시켜 먹으며 주말에는 부족한 잠을 몰아자느라 오후가 되어야 일어나는 매주, 그리고 일 년, 이년, 삼 년...
꽉 막힌 조직문화, 보고를 위한 보고, 일방적인 경영진의 결정과 그 안에서 부품이 되어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개인, 그리고 기혼자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머릿속이 고뇌로 가득 차 어찌할 바를 몰랐다.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님들은 더 답답한 시절을 겪어내고 그 자리에 서계시는 것이어서 어딘가 모르게 늘 피로해 보였다. 가정에 소홀하면 소홀한 대로, 가정에서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려 하면 하는 대로, 어느 쪽이든 피로해 보였다. 결혼을 하지 않고 차장, 부장급에 계시던 여성 선배님들에게는 언제나 "아~ 결혼 안 한 그분?"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따라붙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막다른 길인 것만 같은 느낌에 숨이 막혀왔다.
사실 내가 겪었던 조직사회는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다만 그 조직 안에서 바라보는 나에겐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릴 뿐이었다. 내가 이 조직에 있는 동안, 그 한 동안에는 무언가가 크게 바뀌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천천히 흘러가는 변화를 기다리기도 앞장서서 바꿔갈 자신도 없었던 나는 그만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해 버렸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싫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내가 느낀 감정은 복잡 다양했다. 여전히 나는 한국의 많은 점을 사랑했고 나와 내 가족, 친구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만든 추억을 사랑했다. 누군가 한국에 대해 안 좋은 말이라도 할라치면 내 안에 있는 애국심이 분연히 일어나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는 도망이었다. A라는 어려움을 직면하는 대신 B라는 어려움으로 치환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어려움에 경중이 어디 있으랴. 어디에서나 삶은 삶이고 감당해야 할 몫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떠나고서야 깨달았다.
브런치를 개설하면서부터 자기소개글에 적었던 ‘언젠가 편도 티켓을 끊어 떠나는 것이 꿈입니다.’는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사는 곳을 바꾼 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사이 나는 호주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졸업한 분야로 일을 시작한 지 3년 반이 되었으며 영주권을 취득했다.
여기에서의 삶이 정말 내 삶이라고 느껴지는 지금, 그때의 내가 견디기 버거워 도망치듯 버리고 온 것들을 반추해 본다. 반대로 그 결과로 내가 손에 쥐게 된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2017년 8월,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작성했던 글처럼, 나는 여전히 아주 긴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먼 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아 별 일 아닌 소시민의 생각들을 쏟아낼 시간과 여유를 찾아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자발적으로 그 어딘가 어중간하게 가운데 끼어있기를 선택한 내가 적어 내려갈 별 것 아닌 이방인의 일지이자 소시민의 일기가 될 것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