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지옥이라고 극단적으로 썼지만 어쨌든 호주사회는, 그리고 서양 문화권에 놓인 사회는 조금쯤 모두가 외향적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향적이어야만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이 훨씬 많은 사회라고 해야 할까. 기회를 찾으면 찾을수록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사회라서 가만히 있으면 정말로 가마니가 되어버린다. 참고로 나는 외향인들, 혹은 사회적으로 외향인인 척을 할 수 있는 가짜 내향인들 사이에서 절반쯤은 가마니인 상태이다. 나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내향인이자 가짜 내향인들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향계의 성골, 내향계의 조상, 내향계의 거목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왜 내향인이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때는 바야흐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대체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공명심에 가득 차 있던 한 초등학생이 있었다. 당연히 내 이야기다. 나대기를 좋아해서 학급에서 반장 부반장을 놓치지 않고 쭉 지내다가 5학년 무렵 전교 학생회 선거에 나가 덜컥 당선되어 전교 부회장이 되고 말았다. 이제와 생각하니 학교 측과 학부모회 측에서 밀어준 후보가 있었는데 극적이게도 한 표가 무효표가 나오면서 한 표 차이로 내가 당선되게 된 것이었다. 아무 빽도 없는 주제에 어지간히 입을 잘 털기는 했었나 보다. 아무튼 이 선거는 각 학급 반장, 부반장들만 투표권이 있었는데 어른들의 바람과는 달리 제법 순수했던 아이들이 정말 나의 연설만을 듣고 나를 뽑아준 것이었다.
그 당시의 신흥 학군지였던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그야말로 낭만이 넘쳐서 촌지가 실존하고 학부모회의 힘이 대단히 강한 곳이었다. 반장, 부반장의 부모님이 운동회 때나 행사 때마다 반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돌리곤 했고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에 더해 당시 부모님이 하시던 요식업이 잘 되고 있던 터라 소풍이나 행사날마다 학년 선생님들의 점심 식사를 싹 돌리곤 하셨다고 들었다. 그러다 IMF를 거치고 그 이후에도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수록 가세가 기울었는데, 이 나대는 딸자식이 덜컥 전교 부회장이 되어버린 거다.
당선되고 난 후 학교의 요구는 제법 노골적이었다. 특정 품목까지 정해주며 "기부"를 독려한 것. 나야 그저 어리고 망충한 초딩이었던지라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꽤 고가의 품목이었다. 아마도 디지털 피아노였던가...?
기부는커녕 햄버거조차 돌릴 수 없게 되어버린 부모님은 학교의 요구를 피해 다니며 무시했다고 한다. 학교 측에선 끈질기게 연락을 시도하다가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더 이상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고 하니 어느쯤엔가 포기하게 된 모양이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학생회에서 배제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초등학교 전교학생회라고 해봐야 특별히 하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 기억은 이상하게도 과거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휘발되어서 잘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당시에는 꽤 속상하지 않았을까?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에게 '나대는 것 = 돈 드는 것'이라는 공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그 시기를 기준으로 남은 학창 시절 내내 더 이상 반장선거 따위에는 나가지 않게 된다. 어딘가 중간자리에 섞여 나서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학생 1로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연스럽게도 아주 외향적이었던 성격이 급격히 내향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때나마 외향적이었던 성격은 오래된 상처자국처럼 남아서 나는 소극적 관종끼를 가진,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만 광대짓을 하는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된다.
이 성향은 이후에도 쭉 이어져서 존재감 없이 섞여 지내기를 자처해 왔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눈에 띌 기회가 있음에도 스스로 걷어차기까지 했다. 회사에 입사한 첫 해, 신입사원 연수에서 팀별로 연극을 했을 때 얼레벌레 주인공 역할 중에 하나를 맡은 (정확히는 맡아짐 당한 것을..) 계기로 좋은 인상을 남겼는지 그 해의 전 계열사 신입사원 수련회 TF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었다. 조금 고민했지만 내향 자아가 발동하여 거절하게 된다. 물론 스스로 그 정도 끼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TF가 되면 부서 일을 하지 않고 그 TF 쪽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부서에 눈치도 보이고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도 작용을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디 가서 누군가의 눈에 띄고, 또 부서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위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내향 자아에 올라타기 시작하니 점점 더 가속도가 붙었다. 나는 점점 더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고, 늘 만나던 사람들과만 만나는 집순이 내향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런 자아를 들고 호주까지 오기에 이르고 만다.
그런데 호주에 오니 웬걸, 사람들이 그냥 나에게 막 말을 거는 거다. 스몰토크의 지옥이 시작된 것이다. 대학원 교재를 사러 들어간 서점에서 일하시던 호주 할머니 점원의 입에서는 "Love" "Darling" 등의 단어가 나를 지칭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고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입꼬리를 최대한 올려볼 뿐이었다. 미소 비슷하게 보이기를 기대하면서. 이뿐만일까. 집을 구하기 전 에어비앤비에 묵었을 때, 처음으로 중고차를 사러 갔을 때, 마트에서 어떤 물건을 살지 고민하면서 서 있을 때, 심지어는 그냥 가만히 버스에 앉아있을 때까지도 사람들은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건네왔다. 내향인 죽네 죽어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들의 다정함이 싫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도 스몰토크를 하긴 했던 것 같다. 대체적으로 차장, 부장님들의 "요즘 어때? 잘 지내나?"와 같은 말로 시작되는 스몰토크 말이다. 조금 더 나이대가 가까운 과장님 이하 직급에서는 주말에 본 영화 이야기나 자녀이야기 같은 조금 더 캐주얼한 소재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같은 부서 사람들 사이에서나 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호주에선 스몰토크가 아무와, 불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호주에서 회사를 다닌 지 몇 년이 된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런 스몰토크에 익숙해졌다. 생판 남과도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는 30초 동안 뭐라도 떠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내 경우 오히려 아예 모르는 사람과의 스몰토크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쨌든 흔한 레퍼토리로 대충 때울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아는 사람과의 스몰토크가 더 힘들다. 매번 똑같은 날씨 얘기, 주말 계획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심지어 나는 특별한 주말 계획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 이런 주제가 나오면 말문이 턱 막힌다. 그래도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기술을 익힌 게 있다면 정말 사소한 얘기라도 일단 꺼내고 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차피 주말 내내 집에 처박혀 있을 생각이라도 "잔디밭 좀 깎고 물 주려고" 같은 적당한 말을 둘러댄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대응의 최대 단점은 한몇 주가 지나서 그 사람이 뜬금없이 "그때 잔디밭은 잘 깎았어?"라고 물어보는 때가 생긴다는 것이다. 정말 최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바보처럼 3초간 말을 잊고 서 있다가 "아, 잘... 잘랐지. 잔디밭이 죽은 부분이 있어서 지금 해결하는 중인데... 잘 모르겠네."라고 억지로 몇 마디를 쥐어짜 낼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도 잔디밭 죽은 부분이 있어. 비료 사다가 붓고 하는 중이야."라고 말하고 마침 로비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와 나는 "그럼 다음에 만나, 좋은 하루 보내" 하고서 손을 흔들고 각자의 갈 길로 흩어졌지만 이제 나는 그의 잔디밭에도 죽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스몰토크는 그 사람과 정말 친목을 쌓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사회적인 가면을 얼마나 잘 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이야기하겠지만 호주는 워낙 네트워킹이 중요한 사회라 사회적으로 어색한 사람보다는 어떤 사람들 사이에 떨궈놔도 잘 섞일 수 있는, 한강 물도 팔 수 있을 봉이 김선달 같은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정말로 외향적이기는 한 건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다. 저 사람들도 사실은 외향인의 껍데기를 쓴 내향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상황이 이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나 같은 내향인에게는 고군분투다. 나의 소중한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이 회사에 계속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어떻게든 가느다란 사회성의 끈을 사람들과 이어 붙이고 있다. 사실은 어디에 내놔도 어색한 사람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