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토 Oct 30. 2024

해외 이직기 - 나와 경쟁한 사람들

호주에서 어쩌다 보니 얼렁뚱땅 이직을 하게 되었다. 말은 얼렁 뚱땅이라고 하였지만 사실 오랫동안 생각하고 계획해 오던 일이기는 했다. 다만 이력서를 고작 열몇 군데에 제출했는데도 아주 운이 좋아 지금의 회사에 덜컥 이직을 하게 된 것이라, 준비한 것에 비해서는 조금 얼렁 뚱땅이긴 했다. 새 회사를 다닌 지는 이제 4개월이 막 넘어가고 있다. 그러던 와중, 최근 팀리더 및 팀원들과 모닝커피를 마시는 중에 내가 인터뷰를 봤을 당시 같이 지원했었던 다른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 Linkedin vs. Reality


듣자 하니 나는 면접을 본 순서로 치면 꽤나 뒤였던 모양이다. 그 말인즉슨 나는 이력서 상 상당히 후순위였다는 뜻. 내 앞에 나름 많은 지원자들이 면접을 보았다고 한다. 어찌 됐든 내 순서까지 차례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그들이 잘 해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레주메에서 이미 거르고 거른 지원자들에게만 면접의 기회가 주어진 것일 텐데도 말이다.

서류상으로는 완벽해 보였던 첫 번째 면접자의 면접이 끝나자마자 내 팀리더는 "아, 우리 망했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레주메에서는 정말 흠잡을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정말 perfect fit이라고 생각했던 지원자가 실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빈 깡통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도 제법 있는 모양인지 오죽했으면 위와 같은 밈도 있다. 각종 이력이 뻥튀기마냥 부풀려진 지원자들. 사실 오른쪽 프로필도 자세히 읽어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지원자는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을 거의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했다. 혹은 딴소리를 하거나. 1순위 후보였던 사람이 이렇게 엉망진창인데 그다음 순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떨까 싶어 팀리더는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해졌었다고 한다. 그는 최악의 지원자였다. 그다음 지원자가 나타날 때까지는.


2. 피노키오형 지원자


다음 지원자는 묻는 질문에 답을 잘하지 못했고 심지어 흥미마저 없어 보였다고 했다. 이 포지션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지원했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질문이 있는지 물어봤을 때 그가 했던 질문은 단 하나였다고 한다.

"내 비자가 몇 월 며칠에 만료되는데 혹시 스폰서 해줄 수 있나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지원자가 서류상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지원서를 낼 때 웹에서 어카운트를 만들고 여러 가지 사항을 체크하는 과정이 있는데 그중에 비자 상태에 대해 체크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때 이 지원자는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썼던 것.

지원자가 너무 능력이 좋고 마음에 들어도 비자 스폰서십을 해줄까 말까 하는 와중에 면접은 대충 봐놓고 대뜸 스폰서를 해달라? 거기다가 서류상 거짓말까지 하면서?

회사에서 헤드 카운트를 내줄 때는 어느 정도의 버짓이 정해져 있을 것이고 비자 스폰서십이라는 건 이 버짓을 넘어서는 비용이 발생함은 물론 각종 서류까지 제출하여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도 추가적인 승인을 얻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는 별개로 이런 연유로 영주권이 없는 학생이 취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보통 비자 상태로 이미 스크리닝에서 걸러지는 경우가 많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작은 회사에서부터 출발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소규모 회사는 사람은 급하고, 그러면서도 연봉은 적게 주고 싶고, 복지혜택도 없기에 경력이 있는 로컬들에겐 메리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영주비자가 없는 사람에게도 기회가 돌아오는 경우가 있기도 한 것 같다. 물론 이런 소규모 회사라고 해서 마냥 스폰서십을 쉽게 해주는 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처음 일했던 회사에도 유학생 출신의 직원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 중 누구에게도 스폰서십을 주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비자 스폰서십 비용이 발생하고 회사의 수익에 대한 증빙 및 왜 이 사람을 뽑아야만 하는지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어찌 되었든 이러한 이유로 이 지원자도 최악의 지원자 중 하나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3. 메뚜기형 지원자


뒤이은 지원자 한 사람은 경력이 화려했다고 한다. 어떻게 화려하냐면 가장 긴 경력이 3개월일 정도로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보통 에이전시를 통해 파견직(계약직)으로 재직한 경우이다. 앞서 설명한 이유로 취업이 쉽지 않은 학생비자 및 졸업생비자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 에이전시를 통해서 보다 쉽게 계약직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물론 호주인들이 에이전시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 장단점이 확실하다. 장점은 우선 원하는 직무로 호주 내에서의 경력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고 단점은 메뚜기 같은 이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이런 짧은 경력을 비선호하는데 우선 그 어떤 곳에서도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걸쩍지근하고 또 각 회사에서의 너무나 짧은 경력으로 인해 연차에 비해 배운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판단해서 인 것 같다. 계약직이라고 하더라도 비교적 긴 기간 연장이 되어 일을 한 경우는 그래도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인데 이 지원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이 지원자는 자신의 포지션을 죄다 시니어급, 매니저급, 무슨무슨 "finance manager"라고 적었다는데, 고작 3개월씩 메뚜기를 하며 뛰어다닌 비교적 젊은 지원자가 "매니저"직급으로 일했을 리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일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이러한 이유로 이 지원자 역시 아웃.


4. 노쇼


'노쇼'라고 하면 면접날 불참했나? 싶겠지만 이 경우는 채용이 확정되고 출근을 안 한 경우이다. 우리 팀은 아니고 바로 옆 부서에서 일어난 일이다. 옆 부서라고는 해도 조직도를 타고 올라가면 같은 리더의 아래에 있어 넓게 보면 같은 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서에서 일어난 일이라 나도 사연을 듣게 되었다.

내가 면접을 보던 당시 그쪽 팀에도 헤드카운트가 하나 나서 면접을 진행했었다고 한다. 여럿을 본 후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있어 이후의 건강검진 및 레퍼런스 체크 등을 다 마치고 오퍼에 사인도 하여 정말 출근날 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어느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기로 해서 자리 세팅도 마치고 랩탑과 모니터 등 셋업도 다 되어 있었는데 웬걸?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전날인 일요일에 HR 담당자에게 다른 회사에 오퍼를 받게 되어 이 포지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문자로 통보를 했다고 한다. 더 좋은 오퍼를 따라가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으나 출근하기로 한 날 바로 전날, 그것도 일요일에 문자로 통보를 한다니, 이건 회사 입장에서는 날벼락이다. 그리고 사실 다른 회사의 오퍼도 일요일에 받았을 리가 없고 분명히 더 이전에 받았을 것인데, 바로 전날까지 혼자 저울질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통보를 한 것이다.

그쪽 팀에서도 난리가 나서 인터뷰 본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 없냐고 우리 팀 쪽에 물었다고 하는데 위와 같은 지원자들 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팀리더도 난감했다고 한다. 정말 없어서 리스트를 줄 수가 없었다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면접 후일담을 들으며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로 내 이력서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것. 후순위로 면접을 보았다는 게 이력서 상으로 볼 때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테니 말이다.

두 번째로는 실제가 아무리 거지 같아도 이력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면접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세 번째로는 그렇게 면접의 기회가 주어져도 결국은 채용이 안된다는 것. 물론 면접에서도 그럴싸하게 입을 털어서(?) 채용이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고 있던 나에게 이런 후일담이 주는 충격은 꽤나 컸다. 숱한 해외 면접 후기를 읽으며 나는 주눅 들지 않으리라, 당당하게 내 경력을 어필하리라 다짐해 보았지만 그다지 소용이 없었나 보다. 내 이력서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내가 셀프 브랜딩이 자만처럼 느껴지는 소심한 사람이라 그렇다. 해외에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곳에 살 것 같은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일같이 쪼그라드는 마음을 안고 출근하고 퇴근하는, 지나치게 주변의 눈치를 보는 나라는 소시민.

이렇게 여러 가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보니 앞으로의 내 회사생활이 더더욱 구만리 같다. 한국에 그냥 있었다면 이미 과장급이었을 텐데 (실제로 내 첫 회사 동기들은 죄다 과장님이 되었다) 이제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는 게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눈앞이 캄캄하다.

우선은 당연히 지금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는 눈앞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내 레주메를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커리어를 어떻게 쌓아나가야 할지, 어떻게 하면 덜 쪼그라드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된다.

해외에 나온다고, 취직해서 밥벌이를 한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민은 나날이 늘어갈 뿐이다. 상대적으로 커리어를 늦게 출발한 사람임이 티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얼굴에 팩이나 부득부득 얹어볼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