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학원비

그때 정말 가기 싫었는데

by KayYu

피아노 혹은 피아노 음악 좋아하시나요? 혹시 고개를 끄덕였다면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아마 어린 시절 한 번쯤 피아노 앞에 앉았거나 학원 앞을 기웃거렸을 것 같고 우연히 지나가다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것 같네요. 어렴풋한 기억에 엄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을 따라갔을 수 있고 투덜거리며 질질 끌려 간 아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렷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피아노를 배웠고,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다시 배워보고 싶은 마음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비슷한 추억을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분명 서로 통할 수 있는 이유가 생겼네요. 우리는 그걸 공감이라 부르지요.


피아노 연습을 하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대한 한 가지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그때가 언제였더라? 국민학교 2학년, 3학년 즈음이었을까? 초등학교도 아니었다. 학원비를 내야 할 때가 되면 엄마는 봉투에 짧지만 정성스럽게 '선생님 지도 감사합니다'라고 써서 학원 가방에 넣어주셨고 나는 그걸 선생님께 건네 드리면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영혼을 팔았기에 나는 그렇게 대담한 일을 벌였을까? 엄마가 주신 그 피아노 학원비를 학원 아래층에 있는 오락실과 문방구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결국 모두 다 까먹어버리고 한 달 동안이나 학원에 들어가지 못 가고 숨어 지내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피아노 학원을 안 가니 선생님께 혼날 일도 없어 속으로 '야호'를 불렀고 이제 막 오락실의 맛을 알아버린 그 국민학생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야무지게도 아무 대책 없었던 아이였던 것 같다. 학원비 봉투를 열어보았던 어린아이는 그때까지 만져볼 수 없었던 파란색 만 원짜리 지폐를 꺼냈고 기껏 한 판에 오 십원도 되지 않았던 오락과 군것질을 하고도 여러 장의 천 원짜리와 동전이 한 움큼 쥘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흥분에 가슴이 퐁당퐁당 두근거렸으니 그 대범했던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렇게 학원비는 오락기 속으로, 문방구 아주머니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지는 걸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긴장한 채로 학원 다녀오겠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는 절대 들어갈 수도 없는 학원 앞을 서성거렸다. 처음 그 돈을 쓰기 시작할 때는 꽤 큰돈이었는데 조금씩 봉투가 얇아져가더니 어느샌가 텅 비어 버렸네? 정말 순식간이었고 쓰면서도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다시 채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건 이미 늦어버린 것 같아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


햇빛이 내리쬐는 따스한 날씨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불안함, 외로움, 두려움은 그 이후로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신나는 오락실과 달콤한 군것질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학원 건물 2층에서 착잡하게 창 밖의 사람들을 내다보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들어가지 못할 학원인데 왜 2층까지 올라가서 서성이었을까? 다른 더 멀리 도망갈 길도, 장소도 없었던 건 아니었는지 지금에서야 기억을 더듬어 본다. 대범하기만 한 바보였음이 틀림없다. 그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니 얼마나 오락실에 가고 싶었을지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 처량하기도 하다. 그렇게 한 달을 마음 졸이며 지내다가 다시 봉투에 받은 다음 달 학원비로 다시 학원 문을 열었지만 왜 한 달 동안 학원을 그만두었는지 학원 선생님께 어떻게 얘기했는지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저 완전범죄를 성공한 것에 흥분하느라 뭐라 둘러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으니 기억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르고.


내가 갑자기 왜 그 얘기를 나에게 꺼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피아노를 그때 더 배우지 못했던 것을 분명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느낀다. 흙장난을 하다가 손만 털고 학원에 뛰어온 날, 선생님이 손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자며 모두들 손을 앞으로 내어보라고 할 때, 쭈뼛쭈뼛 흙먼지에 뒤덮인 손을 마지못해 꺼내고 옆 친구와 비교되는 내 손이 그땐 너무 창피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피아노가 싫었다는 기억은 없지만, 항상 담벼락을 넘고 운동장 흙과 돌멩이를 친구 삼아 놀았고 불장난의 그을음이 익숙했던 그 손으로 새하얀 건반에 그대로 올릴 수 없다는 건 피아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걸 그날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아즈라 한 기억이긴 하지만 그때 나는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보다도 피아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피아노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하면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고.


피아노 학원에 대한 다른 기억은 너무 희미하다. 언제부터 다녔는지,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갔던 것인지, 엄마 손에 이끌려 질질 끌려갔는지 그런 기억은 더더욱 없다. 그런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고학년 누나가 연습하는 멋진 곡, 나중에 잘해서 나도 꼭 쳐보고 싶다는 곡이 '은파'라는 곡이었다는 것을 악보를 몰래 훔쳐보고 알아냈다는 그 순간은 신기하게도 사진처럼 남아있다. 왼손을 오른손으로 넘겨야 하는 고양이 춤 곡은 뭔가 꽤 잘 치는 고수처럼 보이게 해 줘서 좋았고, 도~미~솔에 이어지던 선율과 현란한 아르페지오로 마음 들뜨게 만들었던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545. 그 곡이 K.545 였다는 것도 성인이 된 후 다시 클래식을 듣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곤 더 이상 피아노 학원에 대한 기억은 없다. 여기까지다. 허전하면서 아쉽기도 한 추억이다. 그때 손가락 벌리는 연습을 하던 아이의 손은 이제 더 이상 벌릴 필요가 없을 만큼 넓어졌다.


그런 아쉬움 진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추억을 지금 아이들에게 주입할 순 없지만 어른이 된 지금 아이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것이 있다면 악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거쳐야 할 필수과목으로 태권도와 피아노를 손꼽는다. 물론 그것도 국영수에 빠져들어야 할 나이에 이르면 가차 없이 학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리고, 거금을 들여 장만했던 피아노는 슬슬 장식장이 되어가는 시점도 딱 그때인 듯하다. 게다가 피아노는 그렇게 방치하던 것과 달리 또 어떤 아쉬움에 선뜻 팔지도 못하고 이사를 할 때마다 거실에서 아이방으로 밀려나고, 어둑한 빈 방으로 밀려난다. 나조차도 여느 다른 엄마 아빠들과 비슷하게 교과 수업의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지 않을 자신은 없다.


한 때 학원비로 오락실과 군것질로 탕진했던 내가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나가서 뛰어놀고 싶은데 하기 싫은 피아노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마음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시키다 보면 재미가 붙지 않을까? 그래서 나중에 성년이 되었을 때 제대로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까? 음악의 즐거움에 큰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그런데 자칫 피아노가 싫고 그래서 음악 그 자체도 싫어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들만 오락가락한다. 여하튼 전공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악기 하나를 다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나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아이들은 국영수가 태권도, 피아노를 밀어내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 그리고 단호하게 피아노를 먼저 밀어내어 버렸다. 이럴 땐 또 단호하단 말이야.


계좌이체는 더 이상 학원비를 쌈짓돈으로 챙길 수 없게 만들었고 단 하루라도 예고 없이 출석하지 않는 날이면 곧장 엄마에게 확인 전화가 오는 세상이니 그 옛날처럼 숨어있을 기회마저 없어졌지만 도망가고 싶은 마음까지 없어진 것 아닐 것 같다. 피아노 한 달 학원비를 들고 오락실을 갔던 아이가 지금 아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또 그렇지 않음에 왠지 마음 한편이 무뎌진다. 말을 물가에 끌고 갈 수는 있어도,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있어도, 억지로 물에 입을 댈 수는 있어도, 말이 물을 먹지 않으면 결국 먹일 수는 없다.


그토록 음악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엄마의 아들은 그 학원비를 들고 오락실을 갔으니 엄마의 마음과 지금 나의 마음, 그때 그 아이의 마음과 지금 나의 아이들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나의 두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기억하는 어릴 적 모습에 피아노 연습하느라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 아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아빠와 함께 치는 피아노가 아니라 아빠와 함께 하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 훨씬 더 친구들에게도 자랑일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 어린아이였던 나와 성인이 된 지금의 나 둘이 서로 공감하고 있고 어린 시절의 그 기회 덕분에 지금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게 된 것만큼은 의심할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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