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시작, 더 늦기 전에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함께 뛰어노는 곳

by KayYu

안녕! 거실에 놓인 이 녀석을 볼 때면 다른 어떤 물건을 바라볼 때와는 분명 다른 애증이 진하게 묻어있다. 아주 짧은 시간 곁눈질로 스쳐 지나가는 잔상만으로도 묘한 만족감과 포근함을 느끼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털며 지나갈 때, 작은 방에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모습과 한눈에 들어올 때,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고개를 들 때, 그리고 지금도 눈앞에 두고 글자를 끄적일 때가 그렇다. 마치 이불을 반쯤 걷어 차고 큰 대자로 다리를 벌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천진난만하는 척하는 능글맞은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와 같은 흐뭇함이다.

흐뭇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눈으로 찍었던 사진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생각을 더듬어본다.


첫 번째는 음악에 대한 동경이다. 피아노 음악은 나의 의욕을 한 껏 부풀게 해 주고 피아노는 내가 음악을 사랑한다는 증표가 된다. 팝송, 록, 클래식 등 장르에 편식하지 않고 두루두루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 모든 음악을 좋아했다. 심지어 리듬과 박자만 있다면 개구리울음소리마저도 오케스트라로 들렸다. - 나 미친 건가? - 음악은 실체가 없으니 눈에 보이지 않고 그래서 때로는 우주(Universe)와도 비교하지만 눈앞에 있는 악기는 음악이 내 옆에 있다는 바로 그 실체를 대신해 준다. 건반의 질감은 촉각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을 느끼도록 해 주고 그 소리는 이부자리 같은 우주공간으로 스르륵 당겨 들어가는 듯한 포근함을 가져다준다.


두 번째로는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애정이다. 울어대는 일렉트릭 기타, 심장을 쿵쾅쿵쾅 흔드는 드럼, 때로는 띠이~~~ 잉잉 청아한 가야금 소리에 넋을 잃기도 했다. 그리고 피아노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대표 악기이지 않은가? 음악이 있다면 악기도 반드시 있어야 하니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내가 좀 더 음악에 가까이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준다. 설사 음악으로 불리지 못하는 즉흥적으로 고안해 낸 선율일지라도 형용할 수 없는 나의 순간의 감정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소소한 장치가 되기도 한다.


번째는 다시 해 본다는 희망이다. 그 옛날 어릴 적 피아노를 잠시 접하고 흥미가 없어 그만두었다가 마흔 넘어서야 밀려오는 후회 섞인 아쉬움과 그리고 이제는 그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물론 속 시원하게 접으면서 신나했던 그 아이는 미래의 나에게 전혀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살아오면서 음악 외에도 여러 가지 취미거리를 즐겨왔다. 사진이 좋다며 카메라와 렌즈를 들춰보기도 했고, 하이파이 오디오를 잠시 스쳐 지나갔다가 은하수와 딥 스카이를 찍겠다며 망원경 카페를 들락날락하였지만 역시 돈이 최고라는 현실에 경악하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모두 그저 한 때 '좋아하는 것'의 하나로 남아 있을 뿐 어느 하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정복해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좋아하는 것과 취미는 분명 다른 의미였다. 나이가 들면 후회는 경험이라는 단어로 바뀐다는데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많은 취미의 탈을 쓴 그저 좋아하기만 했던 것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한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여러 가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어느 하나에 집중했더라면 지금 훨씬 더 진중한 취미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에서 올라온다. 그리고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이렇게 되뇌인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피아노가 필요해요.


거실에 있던 이 녀석을 딸내미 방으로 옮겼다. 제대로 해 보려면 분위기를 바꿔야 했다. 아빠한테 자기 방 뺏겼다고 투덜대는 아이의 뾰투룽했던 마음은 컵라면 하나에 후루룩 말아 드셔 버리고 통쾌히 허락해 주었다. 순간의 협상력을 발휘한 딸내미는 그 귀한 컵라면을 한 개가 아니라 무려 세 개를 획득하였다. 사실 거실에 있던 디지털 피아노를 아이 방을 탈취하면서까지 옮긴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음악 소리를 헤드폰으로 듣고 있는 본인이야 잘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실 불편하다. 소음 문제다. 디지털 피아노인데 소음 문제? 그렇다. 음악소리는 없고 달가닥 닥다다닥닥 대는 타건 소리만을 듣고 있는 것이 때로는 고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을까? 다행히 우리 가족은 그런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 것 같긴 한데 속 마음은 또 어쩐지 모르겠다. 가끔 아빠가 피아노 치고 있으면 뭔가 산만해져라고 살짝 징징대는 걸 봐서는 나름 공부든 놀이든 뭔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 타건 소리가 거슬리긴 하나보다. 그래서 주변이 조용해지는 밤이면 그 소리도 더욱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잠들 시간이 다가오면 연습도 그쯤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디지털피아노라 밤에 마음껏 두들길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더라는 의미다. 여하튼, 이제야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여러모로 방구석은 최적의 장소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의 속도는 느려졌지만 깊이는 깊어졌다. 피아노 소리는 그걸 응집하는 힘이 있었고 내가 살아오면서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지혜, 신념, 가치관이라 불리는 생각들도 부여잡고 여기 함께 끄적여본다.


이제 악보를 펴고 연습을 시작하자.

딸 아이의 무료 드로잉에 무한한 감사함을 전합니다. PS. 무료는 아니지, 만원 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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