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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3. 2022

[영화 감상문] 다크 워터스, 토드 헤인즈

과거의 너, 최근의 너희들, 지금 우리들로 확장되는 이야기

과거의 한 농부의 이야기가 21세기 초반의 미국을 거쳐 현재의 우리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타임라인 및 사건 영역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감독에게 한 방 먹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력하게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상대방에 대한 무력감. 소 190마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종국에는 인류의 99%로 확장되었다.

연도 및 장소를 소개할 때, 자막과 함께 라인이 그어져 있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일 수도 있겠지만, 시간 자막과 라인이 합해져 time line이 연상되었다. 영화 초반부까지는 사실 별 지각이 없었으나, 영화의 시점이 점점 현재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무의식적으로 time line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지독하게 이어져오고 있는 실화임을 나타내 주는 은연중의 표현 방식이 아니었을까 사견을 덧붙인다.

영화 전개가 전반적으로 단편적이다. 당연히 큰 틀에서의 기승전결은 존재하나, 세부 플롯을 보면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전개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 이후에는 연 단위로 내용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전개는 감독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의도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마치 뉴스에서 내용이 스쳐 지나가듯, 관객들은 단편 단편의 내용을 듣게 되면서 이야기에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쉽게 말해 남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는 관객과 이야기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벌려놓은 후 후반부에 갑자기 해당 내용은 남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인류 99%가 처한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다가오는 거대한 사실에 대한 무력감. 감독은 당시 웨스트 버지니아 사람들이 느꼈을 무력감을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고치 않게 찾아오는 재난이야 말로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전개가 매우 치밀하고 개연성이 완벽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사건을 접하게 되는 과정 및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하는 것이 다소 개연성이 약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마크 러팔로의 아내 역인 앤 해서웨이의 캐릭터가 너무 입체적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작중 마크 러팔로가 힘들어할 때마다 붙잡아 주는, 그에게 실망감을 표하며 불만을 성토하는 두 가지의 역할이 번갈아 나타난다. 캐릭터의 일관성이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적재적소에 이야기 전개를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해내기는 하나, 그 역할에 캐릭터가 너무 소모되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굉장히 명료하다. '지금까지 당신이 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영화의 종국에 실제 현실 상황과 매칭 시키는 전개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극명하게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이다'라고 명료하게 단언하는 영화는 많지 않다.

가버니움을 보고 나서, 영화가 단순히 영화가 아니고 현실 그 자체임을, 배우들로 생각했던 아이들이 실제 빈민들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었다. 작품과 현실의 경계가 깨지는
순간이 주는 자극이 굉장하다.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에도,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송강호와 이를 마주하였을 진범의 모습을 생각하면 제4의 벽이 깨지는 것의 충격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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