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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3. 2022

[독후감]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기억과 인지에 대해서 로맨스 소설을 도구로 굉장히 쉽게 풀어낸 수업교재

영상이나 그림이 아니고, 글이기에 이야기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이렇게나 효과적일 수 있었다.

기억과 인지에 대해서 로맨스 소설을 도구로 굉장히 쉽게 풀어낸 수업교재 같기도 하다.

이야기의 각 챕터는 철저하게 1인칭으로 서술된다. 챕터가 바뀌면 갑자기 화자가 바뀐다.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시점을 정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단순히 로맨스 소설이라고만 이야기하기에는 그 구성이 치밀하다.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을 통해서만 기억과 사실이 전달된다는 주인공의 경험을 독자에게까지 자연스럽게 확장해냈다.

이야기에 있어 반전이 하나의 무기로 활용되는 것은, 갑자기 이야기를 비트는 것이 독자에게 있어 혼란을 줌과 동시에 자신이 놓친 이야기의 흐름을 붙잡기 위해 이야기에 다시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급작스러운 이야기의 반전은 어느 정도 효과가 보장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매우 담담하고 태연자약하게 반전을 끼워놓았다.

(스포일러. 갑자기 히노의 일기장에 도루와의 추억이 이름만 이즈미로 바뀌어 있다. 심지어 이야기의 끝 시점도 아니고 3/4쯤에 대뜸 아무 일도 아닌 양 도루의 일기장이 등장한다. 독자는 이 시점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면서 혼란을 겪는다. 분명히 아는 이야기인데 이름 하나만 다른 이야기. 거기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앞전의 심장이 아프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가미야가 죽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이야기 플롯 자체가 그렇게 놀라웠다기보다는 이 담담한 전개에 되려 놀랐다. 어찌 보면 이야기의 가장 큰 변곡점이 될 내용을 작가는 일말의 들뜸도 없이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리고 이 부분이 작가가 우리에게 도루의 시점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가 앞 이야기를 모르고 이 부분만 읽는다면 청춘의 여자아이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도 잔인하고 무서우면서도, 이 경험을 통해 도루에게 다시금 몰입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서술 트릭을 좋아해서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구성 방식뿐만 아니라 이야기 자체도 감동적이었다. 항상 나보다는 너를 배려하는 마음이 어떤 면에서 보면 너무 이상적인 캐릭터들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덕분에 더 현실감이 없어졌고 더욱더 사실과 기억을 혼동되게 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반전이 빠르게 등장한 것도 인상 깊었다. 반전 이후 바로 이야기가 끝나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반전 이후 일상을 풀어내 주니 그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쉽게 잊지 말고 찬찬히 정리하면서 기억해달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구성이 아닐지 감히 추측해본다.

대화체나 수첩 내용이 문어체나 전형적인 소설 문체라기보다는 일상을 그대로 빼다 박아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책 자체가 도루의 수첩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우리는 소설에 대해 책이 보여주는 시점밖에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소설이 1인칭이라 그 효과가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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