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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4. 2022

[독후감]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사람, 기계, 인종 등 서로 다른 존재들 간의 고민과 갈등들

총 7개의 소설이 포함된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이다. 작가는 SF를 근간으로 하여 사람 혹은 집단(혹은 인종과 기계) 사이의 갈등과 견해 차이에 대한 시각을 잘 풀어낸다. 말도 안 되는 기술력을 가진 세상에서도 결국 갈등하고 번민하는 주체는 사람이다. 이 점이 작가의 소설이 흥미로운 이유인 것 같다.




최후의 라이오니


유기물과 로봇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면서,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불멸인의 과거를 통해, 완전무결한 존재의 위험성에 대해 보여준 것 같다. 본인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결함이나 위험에 대한 가정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완벽하다는 대전제 하에 이 사고방식은 문제가 없으나, 대전제가 틀어지고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 존재는 trouble shooting이 불가하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해지기 위한 방식을 찾아 헤맨다. 평생을 무균실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예방접종이나 항체는 일절 필요 없는 물질들일 것이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함에 대해 추구할 수 있다.


죽음과 멸망에 대한 공포도 일종의 면역작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개체는 눈앞에 당면한 위험을 인지할 수 없으며, 사소한 위험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돌연변이에 의한 결함으로 분류되나, 다시 생각해보면 생존에 적합한 방식은 주인공의 사고방식이다. 로몬들의 사고방식은 복제품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물론 그것이 본래의 의도이나, 이 경우에는 적자생존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주인공을 만들어낸 주형, 라이오니가 생존에 적합한 진화를 이뤄냈다고 볼 수 있다.


대전제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에 대한 글이었다.




마리의 춤


파편화된 세계, 모그

차단된 감각으로 인한 추상적인 근원 세계에 대한 갈망


사람이 감각을 인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어느 한 감각이 단절되면, 남은 감각들은 더 예리해진다. 리소스의 분배인 셈이다.

이야기 속에서 모그들은 시각을 차단당했다. 대신 그들은 그 외의 감각들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예민해졌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소수자, 약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나, 이를 타개하는 방법에 작가의 SF 요소가 활용되었다. 실재하고 구체화된 세상 이전의 추상화된 세계를 통한 세계의 인식. 확실히 이런 추상적인 부분에는 일반인들보다 모그들에게 우위가 있다. 추상-실재를 일직선으로 놓았을 때, 모그는 추상에 더 가까워진 존재들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후천적 모그에 대한 이해가 된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아닌, 근원적인 존재인 이데아에 대한 갈망이 마리를 포함한 모그들에게 있었던 것 같다. 진화의 방향만 바뀌었을 뿐, 실체화된 구체적 지식을 탐닉하는 일반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진화 방식이다.




로라


환상통, 잘못된 설계도


순응하는 삶의 어려움. 로라는 잘못된 지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제3의 팔을 이식한다. 그런 로라를 받아들이고 순응한 화자야 말로 본인 인생의 잘못된 지도를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한다.


증명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순응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다.




숨그림자


분위기, 공기의 실체화.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책에 수록된 「감정의 물성」 이야기와 맥락이 비슷한 것 같다.


냄새를 번역한다기보다는, 냄새 원인 물질에 새로운 의미를 담아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로 보아야 하겠다.

고립된 사회에 등장한 이방인에 대한 견제와 배척.

숨그림자는, 호흡에서 나온 물질에 생긴 그림자를 뜻하는 것일까? 물질이 추상적인 존재라면, 그를 바탕으로 생긴 그림자는 구체적 의미를 뜻하는 것 같다. 물론 단순히 숨다+그림자의 의미일 수도 있겠다.



오래된 협약


"신도 금기도 없지. 오직 약속만이 있단다."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대전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사실 기반의 과학보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종교이다. 행성의 사람들에게 모든 사실을 알린다 한들 해결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수명이 25년일 뿐, 이 행성의 이야기는 지구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과 세계의 탄생과 죽음은 종교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세상을 벗어나서 관측할 수 없기 때문에, 완벽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최소한의 타협점을 찾을 뿐이다. 단순한 물리법칙 등은 과학이 규명할 수 있으나, 생명 탄생에 대해서는 완벽한 설명이 불가하다. 종교는 그 이유를 가상으로 만들어낸다.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 생명을 탄생시켰다고 말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
이 작품에서 종교는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기능하기 위한 조직이다. 사제를 뽑는 과정에서부터 독성 물질에 내성을 지닌 사람을 뽑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이 계획된 일임을 알 수 있다.
협약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 사실상 행성의 신 역할을 하는 오브와의 협약에 의한 공생(사실상은 오브의 희생)이 이 행성과 인류의 타협점이었다.



인지 공간


유한한 공간에 무한정으로 정보를 담아낼 수는 없다. 완전무결해 보이는 시스템은 존재할 수 있으나, 그것을 증명해낼 수 있을까? 인지공간이 정말로 완전했더라도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의 뇌가 유한하기 때문에 모든 지식을 담아내어 활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효율적인 선택은 될 수 있겠으나, 모든 상황을 담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브의 스피어가 적절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인지공간은 아카이브와 자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개개인 및 전문 분야는 별도의 스피어로 구성했어야 했다. 작품의 인지 공간은 합리적인 선택에 불과했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되면, 인지공간의 의미가 퇴색된다. 적당히 필요한 지식만 저장하여 활용하고, 필요가 사라진 지식은 잊혀진다고 한다면 사실 인류의 뇌와 다를 것이 없다.



캐빈 방정식


SF 소설에서 너무 비과학적인 귀신 이야기가 나오지만, 막상 장소는 울산으로 너무 구체적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는 것은 수많은 감각과 생각과 인지들이 align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코딩이나 영상 편집을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으나, 막상 나 자신에 이 상황을 빗대어 생각해보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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