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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렁 Mar 03. 2022

[독후감] 야경, 요네자와 호노부

상대방의 시야 안에 숨긴다. 어떻게까지 숨길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

야경  

치밀하게 개연성을 부여하면서도 그 과정을 적당한 수준에서 잘 숨겨놓은 글이었다. 화자인 경찰서장이 가와토 순경에게 노골적으로 내비친 불신과 불만은 이야기의 시선을 경찰다운 경찰에 머물게 했다. 그래서 가와토 순경의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행동들(추후 개연성의 근거가 되는 내용들)이 이야기의 복선으로 의심받기보다는 소장의 비뚤어진 관점과 신념에 의한 억측으로 치부되었다. 상황은 동일하나, 시점이 소장에게 집중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전에 자살한 미키 순경의 이야기도 이를 더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전체 이야기의 화자가 소장이다 보니, 화자가 자신을 억지로 안 좋은 이미지로 몰고갈 것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화자가 다른 순경이었다면, 그의 이런 속내와 행동이 미심쩍을 수 있었겠으나 화자가 소장이었기 때문에 과장이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정말 사소한 에피소드로 개연성을 이어나간 것이 인상 깊다. 자전거 물품함의 자물쇠를 잠그기 위해 규정도 어기고 혼자 순찰을 나가겠다고 했던 가와토의 행동이 그의 신념과 의지를 정확하게 투영했다. 자동차에서 튀긴 돌, 자전거 물품함의 자물쇠에서 총격까지 이어진 전개가 개별 상황만을 놓고 보면 매끄럽지 않으나, 전체 맥락 및 그의 형의 진술과 연결되면서 상황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빙과 시리즈를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1) 하나의 트릭을 완결시키기 위한 치밀한 준비과정 2) 동일한 사건, 의미를 각기 다른 시점 및 관점에서 바라볼 때 나올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이다. 빙과라는 단어의 이중성, 만인의 사각에서의 화자와 시점을 활용한, 동일한 상황에 대한 전혀 다른 해석이 인상 깊었다. 야경 또한 이런 치밀함과 시점 활용이 두드러졌다고 생각한다.

사인숙

살아있는 사와코.라는 표현이 일상적인 표현이 맞는지..?

선입견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을 정말 잘 활용했다. 유서 한 장은 사건의 단서가 아니고 눈을 가리는 암막이 되었다. 사인숙이라는 직유, 매년 몇 명씩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여인숙에 온 모든 투숙객이 자살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 통의 이름 없는 유서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유서를 쓴 한 명일 거라고 단정 짓게 다른 가능성을 배제시켜버렸다. 2년 전 화자가 본인의 상식을 바탕으로 사실을 오도하여 사와코에게 잘못된 조언을 건넨 것이 이야기의 주요 트릭이었다. 논리적인  판단에 근거를 둔 화자의 판단은 비정상적인 현실을 읽어낼 수 없었다. 논리적인 사고가 눈을 멀게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른 소재들을 활용해서 본질을 약화시키기도 했다. 사와코와의 이년 전 과거, 소금구이와 튀김, 객실의 이름, 가방의 유무 등 너무 많은 정보는 되레 눈을 멀게 하기 마련이다.


석류

혈육이라는 점을 얼마나 잔인하게 이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잔혹동화 같았다. 페르세포네와 어머니와 첫째 딸과 둘째 딸의 지독한 반복. 이야기의 주된 화자가 어머니이기 때문에 딸들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알 수 없었던 점이 의심 가긴 했지만, 본인이 환생했다고 생각할 만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버지를 걱정하고 연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가정에 소홀함에도 이혼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은 자신만의 마음이 아니었다. 딸들, 혈육들도 결국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대학 동기들-어머니, 어머니-첫째 딸, 첫째 딸-둘째 딸로 비극의 고리가 이어질 뿐이었다.


만등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귀감을 주는 글이었다. 글의 첫 장에서 사건에 연루된 인물과 대략적인 결말은 모두 알 수 있었다. 남은 것은 이 이야기를 끝까지 흡인력 있게 끌고 갈 수 있는지, 마지막 숨겨놓은 하나의 반전은 무엇 인지다. 화자의 부하 직원이 한 명씩 다치는 것은 살인이라는 큰 사건의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다. 그리고 화자에게는 동시에 절박함과 책임감을 가중시켰다. 애국심과 애사심에 이미 열정적이던 화자는 졸지에 팔 한쪽을 잃고 온 몸이 멍들 때까지 얻어맞은 부하직원들의 유지까지 강제로 이어받게 되었다. 화자의 급진적이고 직진성 있는(무르지 않는) 성격을 충분히 긴 시간을 가지고 묘사했다.
그는 그의 일에 너무도 능숙했다. 그랬던 나머지, 마을에서 처음 만난 경쟁회사의 직원도 그만큼이나 요령 있는 사람일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것이 그가 저지른 첫 번째 오판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화자의 대처는 그 방식은 잘못되었을지언정 정론이었고 냉정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콜레라라는 자연재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치려고 해도 본인의 과오와 업보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점이 키 메시지였던 것 같다. 이야기의 제목인 만등도 참회를 위해 밝힌 등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 팔을 잃은 첫 번째 부하직원의 일화가 전체 이야기의 요약본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본인의 과오 혹은 오판, 속단에 의한 인과관계가 명확한 인재.
나비효과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겠다. 영국에서 식견이 넓어진 마을의 장로, 이로 인한 부하 직원의 교섭 실패 및 귀국, 어쩔 수 없이 프랑스 회사에 취직하여 그곳에서 마주친 화자와 모리시타. 끓이지 않은 차이와 아픈 아이, 일본행 비행기에서 화자의 고열과 음성 판정, 찾아간 업체에서의 콜레라 언급 등 어느 하나만 어긋났더라도 완결되지 못할 이야기였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는 인과가 있겠으나, 이 단편은 꼬리물기와 나비효과에 대해 지독하게 철저했던 것 같다.


문지기

시선 분산 및 복선 회수가 정석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다.

문지기라는 글의 제목과 관문이 연결되어 초점이 자연스레 관문으로 집중되었다.

숨기고자 하는 부분 및 내용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쉽다.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눈앞에서 모든 사실을 보여주면서 속이고 숨기기는 쉽지 않다. 이 글은 사각이 없다고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훌륭하게 이야기의 핵심을 숨겼다. 사고가 날 만큼 위험하지 않은 도로, 휴게소 내에 있는 사당, 물건을 걷어찼던 사람, 관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조사를 하러 온 학생, 이야기를 듣고 있냐고 계속 되묻는 할머니, 병원에서 약을 관리했던 할머니, 맛이 다른 두 잔 째의 커피, 색깔이 있는 음료를 주었던 할머니의 과거 기억(보통이라면 종류를 기억할 것이다. 굳이 색 여부만을 기억할 이유는 없다. 화자 또한 이 부분에서 의심을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괴담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상정을 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괴담적인 상황을 찾아내야만 했던 화자는 의도적으로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배제했다. 설령 합리적인 사고의 이유 및 원인이 있다고 해도 그의 입장에서는 없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이야기의 7할~8할 정도 시점이 되면 이미 결론은 자명해진다. 남은 2할은 화자와 독자가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원하지 않았던 진실이다. 거대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무기력한 화자에게 공감하며, 바꿀 수 없는 미래를 강제로 순응해야만 하는 입장에 숨이 턱 막힌다. 절대적인 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에 압도되며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만원

날짜를 정(定)하여 불보살(佛菩薩)에게 기원(祈願)할 때 그 날짜가 참.


사고의 방향, 우선순위가 통상적인 경우와 다를 경우, 상식선에서의 전제조건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의 이야기였다.

보통의 상식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생계와 빚이다. 그런데 사채업자 살인은 빚을 줄여주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모순이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전제가 아니라 결론을 바꾼다. 살인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전제가 틀렸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가보였던 묵화 족자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빚이 줄어들고, 남편이 죽고 하는 이야기는 모두 부수적인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가세가 기울어 물건까지 차압당할 위태로운 상황. 보통이라면 이 경우 위태로운 상황에 방점이 찍히지만, 다에코 씨는 물건이 차압당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어떻게 하면 족자를 압류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시작한 생각이기 때문에 살인과 감옥살이도 크게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통상적인 사고가 언제나 정답인 것은 아니다. 사회보편적인 논리는 절대적이라기보다는 구성원 간의 암묵적인 합의에 가깝다. 당장의 생계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 중에서, 사회의 선택은 전자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만도 없다. 사과와 배 중에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상의 A 나라에서는 사과가 신의 열매이며 배는 악마의 과일이라고 인식되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앞의 사례도 내용만 다를 뿐 같은 얼개의 논리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회화에 의한 암묵적인 약속에 의한 것이다.



총평

모든 것을 눈앞에 보여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숨기는, 마술 같은 이야기 구성이었다. 다만, 갑자기 주머니에서 비둘기가 나오는 뜬금없는 마술이 아니다. 치밀하게 판이 짜인 카드마술의 느낌이다. 지속적으로 다른 카드 마술을 하면서 특정 카드나 숫자를 보여줌으로써 복선을 쌓고, 마지막에 그 복선을 모아 최종 prestige를 펼쳐낸다.

치밀하게 설계된 상황과 배경, 논거를 바탕으로 한 반전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빙과의 작가여서 골랐던 책이지만,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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