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및 책 소개
집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있어 안락한 장소가 되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있어 집은 외로움과 상실의 장소일 수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는 외딴섬 같은 장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집이라는 장소는 그런 불가항력적인 수렴과 회귀의 장소이다.
작품 초반부에, 소에지마 가의 손자인 하지메의 등 뒤로 소실점이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시점에서는 소실점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고 상세한 내용이 나오게 되면서 왜 초반에 이런 메시지를 담은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소실점은 죽음을 뜻했다. 작가는 죽음을 소멸이 아닌 수렴으로 보았다. 큰 원이 소실점을 향해 작아지다가 점이 되고, 마침내 보이지도 않게 되어 사라지는 것을 죽음으로 표현했다. 번역된 제목이기는 하나, 제목의 '집'이 내포한 의미는 죽음으로의 소실점이었다. 작품의 후반부에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래도 옛날에는 다들 집에서 죽었다.
전체적인 내용 소개는 아래의 책 소개로 갈음한다.
깊은 감수성, 섬세한 어휘, 장중한 서사로 일본은 물론 한국 독자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 홋카이도에 위치한 가상의 작은 마을 ‘에다루’에 터를 잡고 사는 ‘소에지마’ 가족 3대와 그 곁을 지키는 네 마리의 홋카이도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할머니 ‘요네’의 탄생(1901년)부터 손자 ‘하지메’의 은퇴 후 귀향까지 약 백 년에 걸친 소에지마 가족의 작은 역사를 통해 작가는 20세기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드라마를 담담히 그려낸다. 각자의 자리에서 태어나 자라고, 세상을 만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마쓰이에 마사시는 자신만의 깊고 섬세한 관찰력으로 모두가 자신의 삶의 주인공임을 일깨운다.
(출처 : 책 소개,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387370)
작가의 이전 작품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과의 비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100%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 때문이다. 담담하면서도 세밀한, 짜임새 있는 서술과 수려한 문장력에 감탄하여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그다음이 바로 이 책이었다. 같은 작가의 소설이기는 하나 두 책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편의상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을 전자,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를 후자로 설명하고자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작품의 배경이 건축사무소인 탓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글 전체가 하나의 설계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단방향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서사를 보여주는 식이었다. 이야기의 주된 목표인 도서관 건축을 척도로 하여 0에서 100까지 차근차근 쌓아 올려 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에는 전자와 전체적인 얼개가 사뭇 달랐다. 글 자체가 24장으로 번호를 붙여 분절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병렬로 늘어놓은 느낌이었다.
작품에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병렬식 구성에 박차를 가했다. 요네의 산파 관련 지식, 하지메 아내의 뇌조 영상 촬영, 아유미의 천문학, 하지메의 음악에 대한 지식, 구도 이치이의 성경과 신학, 신지로의 낚시 등 각자의 분야가 상이하며 구분되어 있다.
등장인물과 시기에 따라 여러 블록을 만들어서 늘어놓은 것 같았던 이야기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분절된 여러 개의 이야기들은 종국에는 소에지마 아유미, 에미코 등 죽음을 기점으로 모여들었으며, 죽음으로 향하고 있는(치매를 겪고 있는) 가즈코와 도모요를 보여주면서 점차 모든 것이 하나로 모여들었다. 크게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이야기들을 스물몇 개쯤 쌓아가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었던 것 같다. 전자와 후자의 방식 중 어떤 방식이 더 훌륭한지를 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다른 두 개의 방식을 모두 능통하게 활용하고 풀어낸 작가의 역량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훗카이도견
작품의 주된 등장인물은 소에지마 가문 3대와 훗카이도견 4대이다. 작품의 원제목이 光の犬(빛의 개)이기도 한만큼 소에지마 가에서 키우는 훗카이도견들이 이야기에 꾸준히 등장한다. 4대에 거쳐 총 4마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타임라인을 잡아주기도 한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훗카이도견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개들을 산책시키고, 훗카이도견 대회에 내보내는 등 관련되어 큰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훗카이도견 자체가 이야기 전체의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훗카이도견 대회에서는 개를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혈통의 중요성이 더 크게 강조된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우수한 혈통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식의 설명이 나오며, 실제로 소에지마 가에서 키우는 훗카이도견들도 혈통서를 가지고 있다. 그 혈통서에는 부모와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 기록이 되어있다고 한다. 본인(1)-부모(2)-조부모(4)-증조부모(8)-고조부모(16)까지 본인으로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훗카이도견을 매개체로 하여 크게 두 가지를 보여준 것 같다. 혈통의 중요성을 통해 보여준 생의 이어짐, 소에지마가 혈통의 소실(수렴)이 그것이다. (생의 이어짐은 요네의 직업인 '산파'와 함께 생명의 탄생과 이어짐을 보여준다) 4대까지 이어지게 된 훗카이도견은 생명과 대의 이어짐을 보여주며, 끝내 이어지지 못하고 끊어지게 된 소에지마가의 혈통을 더 야속하게 하기도 했다. 결혼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린 아유미,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갖지 않은 하지메,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이혼하고 돌아온 신지로의 남매들. 소에지마 가에서 대를 이어간 것은 결국 훗카이도견뿐이었다.
소실점, 수렴
작품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자면 소실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이야기 구성 적으로도 한 곳으로 수렴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을 불편해하며 도쿄에 나가 살던 3대 하지메는 결국 가족들의 죽음과 간병을 위해 다시 고향인 에다루로 돌아온다. 학창 시절 서로 사랑했던 아유미와 구도 이치이는 각자 사랑을 찾아 서로의 삶을 찾았으나, 아유미의 입원과 죽음을 매개로 다시 모여들게 된다. 신지로의 남매 중 한 명인 에미코의 죽음으로 인해 가족들은 다시금 모여들게 되며, 다른 남매들인 가즈에와 도모요의 치매 증상으로 인해 환갑이 되어가도록 하지메는 그들을 돌본다. 생이 약해지고 꺼저가려할수록 점점 가족들은 모여들었고,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소실점을 향해 수렴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요코와 에미코
신지로의 아내인 도요코와 신지로의 남매 중 둘째인 에미코는 집에서 불편함을 가장 크게 겪은 인물들이다. 도요코는 신지로의 권위적인 태도와 이따금 보여주는 폭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옆집에 사는 신지로의 세 자매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 당시의 시대상이 반영되어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신지로는 아내보다 자매들을 우선시한다. 집 가운데에 눈이 쌓였을 때 본인 집 쪽이 아닌 누나들 집 쪽부터 청소를 하는 모습, 자기 혼자서만 옆집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고 오는 모습, 에미코가 입원했을 때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남자는 문병이 어려워 본인만이라도 문병을 갔다 오려고 하니 누나들에게 물어보고 안된다고 하는 신지로 등 작품 전반적으로 도요코는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작품 후반부에 신지로가 생사의 기로에 서서 추가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신지로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도요코의 태도가 납득이 간다. 평생을 대우받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들어주지도 않는 신지로와 함께 살았던 도요코에게 있어 집은 불편한 공간이었다.
에미코에게 있어서도 집은 불편한 공간이었다. 원래도 정신적으로 약했지만, 이혼당한 후 집에서만 지냈던 에미코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번민했다. 돈을 벌어오고 집안일을 척척 해내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보며 자신을 계속 깎아내리고 힐난했다. 특히 동생인 도모요가 에미코를 힘들게 했다. 빨래를 개는 것이 느리다고 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이 에미코가 가진 행복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즈에와 둘이서만 여행을 다니기도 하며 박탈감을 더 주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두 사람에게 서로의 존재는 소중했다. 불편함뿐인 소에지마 가 내에서 믿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는 서로에게 있어 서로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미코가 병원에 있을 때 문병조차 가지 못하게 한 (심지어 그럴듯한 이유도 아니고 누나들이 반대해서 거절한 신지로의 모습을 보면) 것을 보면 마음의 울림이 더 크다.
문장에 대한 감상
전체적인 문장의 템포가 짧은 편도 아닌데 서로 다른 주제의 이야기들을 엮어나가는 능력이 신기하다. 턴테이블-조산원-역아-천식... 이런 이야기들을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작가의 문장력과 역량이 대단하다. 단순히 스토리만 잘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문장력이 뒷받침되는 것이 이 작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기간 편집장을 맡으며 안목은 충분했을 것인데, 거기에 기본기까지 탄탄하니 이런 매끄러운 글들이 나오게 되는 것 같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인상 깊었던 부분들이 많았다. 상황 자체는 매우 평이하나, 이를 풀어내는 능력이 좋은 것 같다. 아래에 몇 가지만 인용해보며 글을 마친다.
목요일 마지막 강의가 끝나면 두 다리가 바닥에서 떠 있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계속하며 생긴 침전물이 어느새 등뼈 안에 가득 차, 떠오르는 몸이 무겁다.
할머니는 큰손녀인 아유미를 받고 나서 대략 삼 년 후에 돌아가셨다. 뇌내출혈이었다고 한다. 누나와 네 살 터울인 하지메는 아직 그림자도 없던 무렵이다.
홋카이도의 가을이라고 해도 햇볕에 따뜻해진 학교 건물의 온기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실에서 갈 곳을 잃고 잔뜩 팽창한 채 괴어 있었다.
철제문을 연다. 계단실의 온기가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 사이를 빠져나가 옥상의 공중으로 도망친다. 옥상은 훨씬 시원하고 대기도 건조했다.
이대로 간병이 계속되면 부모님의 몸 상태도 걱정이다. 하지메의 우려는 강폭이 넓어지고, 어두운 물은 소리도 없이 하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