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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류(流), 히가시야마 아키라

대를 계승하듯 핏줄을 따라 이어지는 복수와 원한의 굴레, 사건의 양면성

by 김주렁

0. 서론


한동안 독서를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 않다가 상당히 오랜만에 책을 펼쳤다. 장르나 스토리에 흥미가 가서 읽게 된 책이었는데, 이야기의 순서나 설명이 그리 친절한 편은 아니었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그 의도와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1층부터 순차적으로 쌓아나가는 블록이라기보다는 손에 집히는 순서대로 빈칸을 채워가는 퍼즐 형태의 구성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순간에야 어느 정도 정리되고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전체적인 구성과 기억에 남았던 소재 위주로 감상을 남긴다.


1. 피해와 가해의 양면성. 세습되는 원한과 앙갚음


히가시야마 아키라 작가의 '류(流)'라는 작품에서는 숱한 살인과 폭행, 이에 수반되는 복수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그중 이야기 시초이자 원점이 되는 사건은, 주인공인 예치우성의 할아버지(예준림)가 과거 전쟁 시대에 왕커창과 그의 일가를 몰살한 사건이다. 이 동일한 역사이자 사건은 각 일가에 전혀 다른 방식과 입장으로 전해진다. 예준린의 후손들에게 예준린은 일본과 결탁하여 매국행위를 범한 무리를 처벌한 응당하고 자랑스러운 행위를 한 인물이나, 왕커창의 후손들에겐 무자비한 살육 행위를 통해 일가를 모두 죽인 살인마일 뿐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자석의 양극과 같아서 어느 한쪽이 피해자라면 다른 한쪽은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피해자, 상대방은 자연스레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살인과 복수의 굴레는 세대를 넘어 그들의 손자 세대까지 이어진다. 작품의 제목이 '흐를 류'를 쓰는 것은 이런 복수와 앙갚음의 세습을 을 것이다.


2. 복수하고 싶은 욕구와 복수당하고 싶은 욕구의 울질, 악행을 통한 선행이라는 변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굴레


죄를 저지른 사람은 복수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복수에 칼을 가는 사람은 한시 빨리 복수를 통해 억울함과 분노를 풀고 싶어 할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작품 내 등장하는 복수에는 이런 점들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 왕커창을 죽인 예준린은 왕커창의 아들(위우원 = 왕쥬에)을 양자로 거두며, 왕쥬에는 예준린을 죽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된 예준린의 손자 예치우성은 왕쥬에를 죽이기 위해 중국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복수당하는 사람의 입장인 예준린과 왕쥬에는 본인의 앞에 등장한 상대방을 보고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응당 일어날 일이었음을 아는 양 초연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마치 언젠가는 복수를 당했어야만 한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은 그들의 태도는 의아함을 불러일으켰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은 아니나, 결국 모두 누군가에겐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절대악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각자의 상황, 각자가 짊어진 책임감에 따라 그들은 악인이 됨으로써 누군가에겐 선역이 된다. 이런 선악의 연쇄와 흐름의 혼재가 작품에 전반적으로 깔려있었다.


3. 결론을 내릴 수 없음이 결론인 이야기


작품 내에는 개개인의 정체성이자 소속을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가장 좁게는 예준린 일가, 같은 마을 사람들, 예준린의 의형제들 같은 곳에서 시작하여 국민당, 공산당과 같은 더 큰 단위, 나아가 중국, 대만, 일본 등 각 나라 소속까지 한 개인이 다양한 소속이자 환경, 제약에 구속되어 있다. (치우성과 마오마오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도 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 모든 개개인과 집단의 관계가 혼재된 사건들에서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노루가 풀을 뜯어먹는 것은 풀 입장에서는 살생극이나 노루 입장에서는 행복한 식사시간이다. 자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한 사건은 구국을 위한 자랑스러운 행동이 되기도, 무자비한 살육에 의한 궤멸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악이고 틀린 것이라고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런 판단조차도 결과론적으로 추후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세상은 흐른다. 한 부모의 자식은 또다시 부모가 되고 다시 자식을 낳는다. 작은 분노의 불씨는 여러 사람의 입과 마음을 거쳐 커다란 화마로 변모한다. 예준린과 위우원은 어쩌면 본인들의 죽음으로 분노의 굴레를 끊고자 했던 건 아닐지 이전에 느꼈던 의아함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생각해 보게 된다.


모든 이야기가 교훈적이고 유의미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은 이야기보다 더 가혹하고 무의미한 경우도 많다.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는 독자에게 명확한 답을 제공해주지는 않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답이 언제나 명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역으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 같다.


4. 감상을 마무리하며


글이 전체적으로 날 것 같은 분위기이기도 했고, 시계열이 뒤섞여있기도 하고 이따금 환청이나 헛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구성이라면 글이 자칫 번잡해 보이기 쉽겠으나, 이런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도 글을 탄탄하고 몰입감 있게 잘 써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인 문장력 자체도, 의도에 맞게 적당히 절제된 문체도 좋았던 것 같다.


기본적인 소재가 복수임에도 글 전체적인 분위기가 격정적이지 않다. 일순간 타올라 재가돼버리는 화마가 아니고 오랜 시간 은근히 졸여내는 분노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의 농도가 옅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인 할아버지가 죽게 된 원흉을 알게 된 이후에도 치우성은 차분히 필요한 일들을 정리해 나갔고, 마침내 사건의 진상에 도달했으니 말이다. 그런 점이 작품을 격정적인 일부분만 강조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몰입도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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