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단어로 소설 써보기] 9.퍼즐, 숟가락, 홈페이지

부제 : 숟가락을 팝니다

by 김주렁

오후 2시 24분. 사무실 사람들의 한숨과 하품이 모여 공기가 무겁다. 그 무게에 눌려 어깨와 눈꺼풀이 서서히 침잠하던 무렵,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체 서류에 도장을 찍고 탕비실로 향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직장인에겐 커피타임, 물 타임이 유일한 희망이다.


차에 휘발유를 급유하듯 텀블러에 에스프레소 투샷을 내린다. 콸콸 나오지도 않고 쪼르르 나오는 것이 내 월급 같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담았다. 딱히 봐야 할 것은 없지만 SNS, 뉴스, 쇼핑몰을 번갈아 들어가며 스마트폰과 나만의 루틴을 착실히 지켜나가던 중 중고거래 홈페이지 게시글 하나 시선이 잠시 머문다.


"숟가락을 팝니다."


게시글 내용은 별게 없었다. 수저 두 짝에 삼천 원이라는 가격과 함께 각기 다른 두 개의 숟가락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중고거래로 안 파는 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숟가락까지?'라는 생각에 잠시 의아했지만 그뿐이었다. 스마트폰을 잠시 더 뒤적거린 후에 텀블러를 손에 쥐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 말했듯이 스토리텔링을 베이스로 해서 자료 작성할 수 있도록 합시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회의가 끝남을 기뻐하며 으레상 치는 박수 소리에 잠이 깬다. 다들 주섬주섬 노트와 펜을 들고 자리로 돌아간다.

"기연 씨. 아까 팀장님이 말씀하신 자료 내일까지 해줄 수 있죠?"

"아... 네네. 혹시 어떤 거 내일까지 드리면 될까요 대리님?"

"업체에 줄 제품 소개자료요. 내일까지 저한테 주시면 제가 확인하고 팀장님께 보낼게요."

"네 대리님!"

회사를 다니며 배운 최고의 역량은 능청스러움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지금의 걱정은 내일 오전에게 인수인계하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스토리텔링. 요즘은 간식을 사러가는 과정도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해보라고 할 판국이다. 자리에 앉아 엑셀을 켜고 빈칸을 그려본다.


불현듯 숟가락이 머리를 스친다. 머리는 농땡이 피울 찬스를 놓치지 않고 그 생각을 계속 상기시킨다. 각기 다른 숟가락 두 짝을 팔게 된 사람의 스토리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하더라도 일보다는 재밌을 것 같아서 본인의 진위야 어떻든 간에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렇다면 숟가락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 나가야 한다. 숟가락은 밥을 먹기 위한 도구로, 의식주 중에서 식생활에 필요한 도구이다. 요즈음에는 신분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도 쓰이나, 너무 파생적 의미이므로 제외하기로 한다. 그러면 숟가락을 판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생을 포기하거나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는 뜻이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한 부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과거의 생활이 어땠는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은 고시원 동네의 원룸에 있다. 방에는 아직 미처 풀지 못한 짐들이 두세 박스 정도 쌓여있다. 아마도 원치 않은 이사를 오게 된 듯하다. 그들은 모종의 이유로(머릿속 상상에서 이렇게까지 디테일한 것까지 구상하지는 않았다.)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고, 원룸에 앉아 얼마 챙겨 오지도 못한 짐을 풀며 그나마 쓸만한 것들은 챙기고 팔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팔아볼 요량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기념으로 챙겨준 수저 두 세트가 눈에 들어온다. 회사 행사, 개업 기념품으로 받아와서 구석에 담아뒀던 것들이다. 방바닥에 앉아 수저를 보고 있자니 서로 헛웃음이 나온다.
"팔자"
"우리 수저 젓가락도 못 챙겨 왔잖아. 밥은 뭘로 먹으려고?"
"젓가락만 있으면 되지."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내는 주섬주섬 수저 두 짝을 빼서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어 싱크대에 넣는다.


내가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너무 자극적이고 비관적인 상황을 위해 억지로 맞지 않는 퍼즐을 욱여넣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한껏 농땡이를 부린 것 같아 마음은 편안했다. 그런데 누군가의 슬픔을 상상하고 편안해지는 나 자신을 보니 속이 메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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