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단어로 소설 써보기] 10.담배, 냉장고, 온라인
부제 : 냉장고가 있어야 할 곳.
살을 에는 듯한 날 선 바람이 손끝을 스치는 설원. 머리 위에는 눈보라에 가려져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햇빛이 이따금 잔광을 내비친다. 눈앞에는 유려한 곡선으로 그려진 눈 언덕이 자태를 뽐내고, 뒤에는 눈과 얼음이 지평선을 뒤덮고 있다. 그런데 저 앞 어드메에 냉장고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백색의 직육면체가 곡선뿐인 이 지면에서 유일하게 각을 세우고 있다. 확실히 자연의 것이 아닌 각진 면에 이끌려 냉장고 앞에 선다. 영하 19도와 영상 2도라는 숫자가 불규칙한 템포로 각 칸에서 점멸한다. 오늘의 기온은 영하 34도. 평소라면 차갑게 느꼈을 냉장고 위의 숫자에서 온기를 느끼고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분명 냉기를 전했어야 할 냉장고이지만, 놓인 장소에 의해 본연의 가치가 소실되고 만다.
냉장고가 발을 붙이고 있는 곳이 설원이던, 정글이던, 아늑한 벽돌집 부엌 한편이든 간에 그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바뀌는 것은 그것의 가치이자 효용이다. 한낱 냉장고도 그것을 감싼 환경에 따라 이렇게 효용이 달라지는 마당에 사람은 어떻겠는가? 요즘의 나는 설원의 냉장고, 열대우림의 핫팩과 다를 것 없는 이물감이 드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껏 냉장고로 일장연설을 토해낸 지금은 때마침 겨울의 5부 능선을 지날 무렵이다. 새벽 6시 20분에 울리는 알람을 두세 번 듣고 무시하기를 반복하다가 30분이 넘어서야 손가락 말단부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대강 씻고 면도를 하고 나서 지갑이며 차키며 하는 것들을 주섬주섬 패딩 주머니에 욱여넣으며 문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겨울이라는 것을 까먹기라도 할까 봐 걱정인지 새벽의 거리는 온몸으로 겨울임을 외친다. 보도블록에는 채 얼다 만 희끄무레한 얼음이 묻어있고, 차에 맺힌 이슬이 매끄럽게 얼어 표면을 감싸고 있다. 출근할 생각에 지레 겁을 집어먹은 허파는 입 밖으로 한숨을 내뱉는다. 담배연기도 아닌 것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와 공중으로 흩뿌려진다. 마치 나의 여생이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것만 같다.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유달리 날이 좀 춥죠?"
사무실에 들어서서 손 끝이 채 해동되기도 전에 말을 건넨 사람은 지우 씨였다.
"네. 집 앞에 대놓은 차도 이슬이 붙었다가 다 얼었더라고요. 좋은 아침입니다."
거짓말이다. 나도 지우 씨에게도 좋은 아침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으레 그랬듯 사회적 합의에 의한 대화를 성공적으로 마첬음에 안도하며 자리에 앉는다. 인체공학을 생각한 훌륭한 의자이지만 형틀에 앉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무겁다.
자연과학을 꿈꾸던 학생은 어느샌가 공대생이 되어 있었고, 역학의 언어를 4년간 배운 공대생은 어느샌가 회사에 취직하여 온라인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줏대며 취향, 신념 같은 말은 어느새 설 자리를 잃어버린 후였다. 나의 지나친 적응력과 포용력은 점점 나를 이 세상에 희석시켜 옅어지게 할 뿐이었다.
나는 이대로 괜찮을까? 설원의 냉장고처럼 적당히 아무 데나 갔다 놓아진 인생을 살아나가더라도 후회하고 번민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의자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10분가량뿐이다. 형틀에서 주리를 틀리는 듯한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남는 것은 다시금 세상에 희석되어버린 나뿐이다. 고통스러울 때에야 자기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얄궂지만 어찌할 방도도, 의지도 나에게는 없다. 어색한 위치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는 오늘도 적당한 생을 종용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