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희망이라는 미약한 독
* '이상은 - 언젠가는'을 들으며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말은 얼핏 보기에는 희망차 보이지만, 그 실상은 공허한 메아리의 잔향에 가깝다. 달큼한 맛으로 사람들을 꾀는 희망이라는 끄나풀은 미약한 독처럼 사람을 죽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좀먹는다. 당시 막연한 희망을 벗 삼아 살아가던 나는 이 년간 그것이 독인 줄 알면서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라고는 없다고 나를 끊임없이 옭아맸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에게 너란 그런 존재였다.
너와 나 사이의 시간의 시작점은 어디였을까? 나름 골똘히 생각해 보더라도 그 원점이 어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시작을 모를 만큼 잔잔히 흐르던 둘 사이의 시간이 요동치고 그 폭을 넓혀가게 되었던 시점만큼은 그래도 기억한다. 당시에 나는 아직도 왜 학교에 남아있는지 모를 입대 전 4학년이었고 너는 막 학교에 발을 들인 1학년이었다. 그때의 나는 자기 앞가림에도 벅찼다. 유야무야 지내던 대학 시절의 종지부에 가까워졌음을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아직 나는 완성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미완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작점에 선 1학년과는 다른 류의, 게으름에 의한 미완의 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한 곳에서의 마이너스는 다른 곳에서의 플러스가 되기 마련이었고, 학업에서의 마이너스는 대학 생활과 인간관계에서의 플러스를 통해 어느 정도 상쇄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성실하게 게을렀던 셈이다. 여기까지 푸념 아닌 푸념은 각설하고 둘 사이의 시간을 얘기해 보자면,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던 쯤에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보다 너와의 거리가 조금은 가까워졌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그때의 너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이후의 시간으로 미루어 보건대 너도 그때는 어느 정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 않을지 조심스레 넘겨짚어본다.
그렇게 모래 한 톨, 조약돌 하나 크기만큼씩 좁아지던 둘 사이의 강폭은 어느 날 저녁 돌연 부쩍이나 좁아지게 되었었다. 여느 날처럼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고 기숙사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날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너와 내가 함께 있었던 시간은 더러 있었지만, 기숙사에 살다 보니 오롯이 둘만 남겨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날도 물론 둘만 남겨지지는 않았고, 택시 앞자리에는 후배 한 명이, 뒷자리에는 너와 내가 앉게 되었다. 어두운 창밖의 가로등과 붉은빛을 띠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보며 술에 취한 정신머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택시에 앉아있던 그날, 문득 네가 옆에 앉아있다는 생각을 하니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간신히 고개를 돌린 쪽에는 조금은 멍한듯한 표정의 네가 있었고, 택시 가운데 좌석 쪽에 놓인 너의 손이 보였다. 정말 평소라면 엄두도 못 냈겠지만, 말마따나 취기를 빌려 조심스레 네 손이 있는 곳으로 나의 손이 향했다. 그렇게 일순간 망설이던 손은 어느덧 너의 손과 포개어졌다. 취기는 빌렸지만 그 이상의 용기를 낼 만큼의 취기는 남아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손을 포개어 얹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바보 같지만 옆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었다. 그때의 너의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같은 방향으로 포개어져 있던 두 개의 손은 어느새 그 방향을 바꿔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닿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 떨어져 있던 손은 포개어지고, 뒤집어지고, 손가락을 오므리며 맞잡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손만 맞잡고 있었다. 앞에 후배가 그 장면을 보았을지, 못 봤을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 딴에는 그 이상은 티 내지 않기 위해 그렇게 손을 잡은 채로만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감정들로 꽉 차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그때의 침묵과 고요함은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둘이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이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인생의 타이밍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4학년 1학기, 즉 7학기를 다니던 중이었고 이제는 정말로 입대를 해야만 할 시기였기 때문이다. 닥쳐올 상황에 대해서는 서로가 알고 있었기에, 둘 사이의 관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리송했다. 아리송했다는 것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서 문제였던 시간들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는 모종의 확신도 있었다. 다만 차마 입 밖으로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확답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돌아서서 보면 용기와 결단이 부족한 자의 핑계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나에 대한 생각, 너에 대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머리를 싸맸었다. 좋아서 문제인 상황은 고역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고역이었다. 그렇게 이름 없는 관계를 보내던 둘을 시간은 그렇게 기다려주지 않았다. 1학기가 끝나고 입대를 해야 할 날이 정말로 몇 주 앞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좋든 싫든 온점이 아니라면 쉼표라도 찍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게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만났던 그날 저녁, 꾸역꾸역 막아오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버렸다. 한번 터져버린 감정은 멈추지 않았고, 좋아하는 감정, 상황에 대한 서러움, 미안함 등 오만가지 감정들이 홍수를 이루어 범람했다. 그것이 최선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더 나은 해결방법이 있었을 것이나 그때의 나에겐 그 이상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난리통 속에서도 결국 나는 입 밖으로 차마 만나보자는, 기다려달라는 말은 꺼내지 못했다. 감정은 격동했지만, 차마 그럴 용기까지는 나지 않았다. 2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무게감을 내가 견디지 못했다. 2년 후에 보자는, 돌아와서 보자는 기약 없는 희망에 기댄 말밖에는 건넬 수 없었다. 그때의 너는 크게 긍정도 거절도 하지 않았었다. 일순간 터져버린 요동치던 감정을 뒤로하고 나는 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받은 편지 한 통을 마지막으로 어느새 너와의 연락은 끊기게 되었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원치는 않았지만 그렇게 자연스레 둘 사이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언젠가, 미래에 다시 만나자는 말은 희망차보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몇 년 후의 내가, 네가 지금과 같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미래의 우리가 설령 기적적으로 만난다고 해도 헤어진 모습 그대로 만날 수는 없다. 지나간 순간만큼은 어떻게 하더라도 다시 오지 않기에 매 순간이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그 순간들을 부정하고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나은 선택지가 있어 그 순간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큰 욕심을 부려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이어졌다면 그 순간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을 것임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마음이 쓰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