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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문] 추격자, 나홍진

각자의 목적을 이뤄내기 위해 끊임없이 뒤바뀌는 추격자와 사냥감의 입장

by 김주렁

0. 들어가기에 앞서


추격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립된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쫓고 쫓기는 대상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뒤바꾸면서도 추격이라는 방향성 자체를 작품 끝까지 이어나간다. 무질서하고 정제되지 않는 파괴적인 방향성을 지닌 추격이 기억에 남는다.


줄거리(출처 : 네이버 영화)
출장안마소(보도방)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 최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잇달아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낸다. 하지만 미진 마저도 연락이 두절되고…… 미진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영민’과 마주친 중호,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영민이 바로 그놈인 것을 직감하고 추격 끝에 그를 붙잡는다. 실종된 여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담담히 털어놓는 영민에 의해 경찰서는 발칵 뒤집어진다. 우왕좌왕하는 경찰들 앞에서 미진은 아직 살아 있을 거라며 태연하게 미소 짓는 영민. 그러나 영민을 잡아둘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공 세우기에 혈안이 된 경찰은 미진의 생사보다는 증거를 찾기에만 급급해하고, 미진이 살아 있다고 믿는 단 한 사람 중호는 미진을 찾아 나서는데……


1. 선역과 악역, 각자의 이해관계의 혼재 의도성


작품에는 크게 3개의 세력이 등장한다. 1) 보도방을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김윤성)와 오좆, 2) 중호가 데리고 있던 여자들을 포함해 다수의 살인을 저지른 영민(하정우), 3) 영민의 범행을 밝혀내고 증거를 찾아내고자 하는 경찰들이 그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쫓는다. 중호는 사라진 여자들을 찾기 위해 추적을 이어나가다 그 원흉이 영민임을 알게 되어 그를 쫓는다. 영민은 끊임없이 새로운 살인 대상을 찾고 있으며, 경찰들은 그런 영민을 우연히 붙잡은 후 그가 저지른 범죄의 증거들을 찾아 헤맨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의 평면적인 영화는 선역과 악역을 관객에게 제시하면서 관객이 몰입할 시선이 될 페르소나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제공한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라면 영민이 절대적인 악, 중호는 그 경중은 다르나 악, 경찰이 정의의 지팡이이자 선역일 것이나 이 영화는 중호와 경찰의 포지션이 다소 복합적이다.


중호는 절차나 과정 따위는 무시하고 미진(서영희)을 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전직 경찰로서 가진 능력이 이에 더해져 경찰보다 진실에 더 빨리 도달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중호를 옹호할 수는 없다. 애당초 중호는 보도방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감기가 걸려 몸이 안 좋은 미진을 미끼 삼아 사지로 내몬 것도 중호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호가 미진의 아이인 은지(김유정)를 끝까지 돌보는 것도 그의 입장을 한층 더 복잡하게 한다.


경찰의 경우 그 과정과 순서야 어찌 되었건 붙잡은 영민의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애당초 그들이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시장이 인분을 맞은 추태를 덮기 위한 미봉책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불충분한 정보와 중호의 말을 바탕으로 영민을 우선 체포한 후 범행의 증거를 찾고자 한다. 그런 과정에서 중호가 영민을 폭행하여 진술을 받아내는 것도 묵인하며, 결국에는 이런 문제들 때문에 검찰과의 마찰로 영민을 풀어주게 된다. 또한 미진이 탈출하여 동네 슈퍼에서 경찰에 신고한 후 담당 경찰들이 졸다가 늦게 출동하는 장면도 관객에게 제시된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인물상을 통해 작품은 관객에게 의도된 혼란을 제공하며, 그들이 몰입할 시선이자 페르소나를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작품의 주된 서술 시점은 중호가 맞겠으나, 어느 입장에 몰입해서 작품을 바라볼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해 추격당하는 인물과 추격하는 인물이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이 제시되면서 관객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의 주된 소재가 추격인 만큼, 이런 복합적이고 불명확한 인물상을 통해 관객의 시야와 심리를 불안정한 상태에 두어 관객이 느끼게 될 카타르시스를 배가시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사견을 남겨본다.


2. 사이코패스 무서움을 보여준 영민


사이코패스가 무서운 것은 일반인과의 공감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당연스레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그들에겐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진을 살해하려고 할 때의 모습,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살해 동기를 말하지 않는 모습, 사람을 팔았냐는 물음에 낮은 목소리로 죽였다고 말하는 모습 등을 보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영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런 그가 일상생활을 할 때는 다른 누구보다 순박한 인상을 짓고 있기에 거기에서 오는 충격이 더 크다. 하정우 씨의 연기력이 한몫했다.


타인과 공감할 수 없고, 공감을 원하지도 않는 영민이기에 조사 과정에서 분석가(이종구)가 그의 영역 내로 침투한 것이 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사람을 죽일 때도 별다른 기복이 없던 영민이지만 그의 살해 동기에 대한 분석가의 해석이 영민 혼자만의 세상을 깨버렸다. 본인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나름대로의 망상이 깨지고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 충격이 드러났던 이 장면이 관객 입장에서도 큰 충격이었다.


추가로 한 가지 이질감이 들었던 것은 영민이 예상보다 이른 타이밍에 붙잡히고 범행을 자백했다는 점이다. 영화의 제목이 추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영민은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을 경찰서에 붙잡힌 채로 보낸다. 하지만 영민에게 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경찰서에 잡혀있으면서도 차분했고, 실제로 경찰은 그의 범행에 대한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눈앞에 범인이 있지만 사건의 본질에 대해 추적할 수 없다는 답답함과 무력감이 느껴졌으며, 이를 보고 만족해할 영민의 모습이 공포스럽기도 했다.


3. 글을 정리하며


2008년 영화임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인 구성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하여 장면들 자체가 유명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인물 개개인에 대한 설정 등이 의도를 가지고 원하는 대로 잘 굴러간 것 같다.


후반부에 미진이 본인이 살해당할 뻔한 집에서 탈출하여 영민에게 마트에서 살해당하기 전까지는 미진의 시선에 몰입하여 작품을 보고 있었다. 첫 번째 죽음의 위기를 어떻게든 넘겨낸 미진이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미진이 이번에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억측을 하고 있었기에 영민이 몇 번이고 미진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이 주는 충격이 컸다. 인생은 그렇게까지 이상적이고 그럴듯한, 클리셰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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